살면서 우리에겐 선택과 필수가 있다. 그렇다면 운전은 선택일까 아니면 필수일까?
한국에서 살 때만 해도 운전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줄 알았다. 왜냐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가용을 운전하면서 회사 출퇴근도 하고, 친지들도 만나러 다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살아가는 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운전이 필수인 미국에 와보니 마치 대학수능에서 필수인 국. 영. 수 를 포기하면 대학 선택에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듯이 생활의 필수인 운전이 자유롭지 못해, 특히 프리웨이 운전을 못해 생활에 큰 불편 내지 제약을 받고 사는 우리 이민자들을 봐왔다 그들의 대부분은 이민 일세 여성분 들이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식사도 하고 그동안의 궁금했던 얘기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싶어 정해진 약속 장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프리웨이 운전을 못해 주위에 신세를 지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가 하면 차량이 크게 붐비고 도로 연결구조가 복잡한 시내(다운타운) 진입을 못해 생활에 제약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그들이 안타까워 보였다.
미국 에서는 운전이 사회생활의 시작이요 홀로 서기를 위한 첫 발걸음 인지라 고등학교 일 학년 16세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운전을 시작한다. 부모 잘 만나 일찍이 운전 면허증을 따 가지고 자기 차로 등하교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우쭐대기라도 하면 감수성이 예민한 이 학생들에게 운전은 호기심을 자극 하기에 충분하다.
큰 아들이 고등학교 이 학년을 마칠 때까지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따고 싶다는 말이 없어 우리는 서로 운전에 대해 일체 언급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3학년 2학기를 마치더니
“왜? 운전 면허증을 따라고 하지 않는 거야? 나를 못 믿어워서 그러는 거야?”
하고 따질 땐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운전이 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첫걸음이자 필수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운전 면허증을 따자마자 프리웨이에서 과속을 해 생명을 잃은 경우도 있고, 평생 동안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상을 입는 등 크고 작은 사고로 부모들이 불안에 떠는 사례를 봐 왔기에 가능하면 늦게 운전을 시작했으면 하는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전 면허증을 따자마자 이 젊은이 (큰 아들)는
@ 밤늦게 까지 술 마신 사람들을 집에까지 데려다주는 사회 봉사 활동을 하고
@ 하루 영업을 마친 음식점에서 남겨진 음식물을 수거해 홈리스들에게 갖다 주는 일을 하면서
삶의 현장으로 바로 뛰어든다. 운전이 가능해지니 마치 벌레에서 나방으로 탈바꿈하듯 행동반경이 엄청나게 달라지면서 오늘을 기다렸다는 듯 힘찬 출발을 하는 젊은이를 보고서 믿음과 박수를 보냈다.
이 년이 지나니까 이제는 둘째 아들이 운전을 기다리고 있다. 첫째로부터 신뢰를 받아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갖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이 남아 있었다. 운전에 안달이 난 그 나이에 어떻게 하면 운전에 질리게 만들 수는 없을까 궁리를 하던 차에 전 가족이 San Francisco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L.A. 에서 San Francisco까지의 거리는 650 킬로미터 운전 거리다. 갈 때는 내가 운전을 했고 돌아올 때는 운전 면허증을 딴지 갓 일주일이 지난 둘째에게 운전을 해볼 용의가 있냐고 물었더니 자존심 때문인지 기꺼이 운전을 하겠단다. 운전면허증을 받은 후 첫 프리웨이 운전이다. 그것도 시속 120-130 킬로로 8시간 운전은 어느 누구 에게도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차에 동승한 우리 가족 모두에게도 하나의 모험이었다. L.A. 에 접근할 때쯤 되니 날이 어두워져 야간 프리웨이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돼 운전을 교대하자고 제의했더니 집에까지 갈 수 있단다. 집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 가족은 염려와 긴장으로 하루를 보내긴 했지만 초보 운전자의 침착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러나 다음날 그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어제 운전을 하면서 팔과 어깨에 얼마나 힘을 줬는지 움직일 수 없단다.
“그래, 운전이 네가 생각한 만큼 즐거운 것만은 아니란다.”
반면에 나는 운전을 즐기는 편이다. 대도시 권역에 프리웨이는 편도가 4-6차선, 반대편까지 함하면 8-12 차선인 넓디넓은 도로가 거미줄처럼 깔려있다. 신호등이 없어 신나게 달리는 차량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경 꺼리다. 미국산 픽업트럭 Ford F150 이나 Toyoda Tundra로 (큰 차로) 시속 110-130킬로 속도로 프리웨이를 질주하면 그 기분은 상큼하다.
그런 연유로 20년 전에 집에서 100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래드랜드 라는 동내에다 사업장을 오픈했다. 주위에 사람들이 왜 그리 먼 곳까지 찾아 갔느냐고들 묻지만 밥벌이가 된다면 이보다 더 먼 곳까지 출퇴근할 수 있는 에너지와 의욕이 넘치는 시절. 하루 200 킬로미터 운전은 내가 비즈니스를 찾는데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운전을 해본 경험이 없는 내가 마국으로 건너와 이토록 자동차 운전을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나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에 200 킬로미터 20 년 동안 달린 거리의 합산은 1,305,000 킬로미터. 지구를 32 바퀴 돈 거리이자, 서울에서 부산까지 2,000번을 왕복 주행한 거리다.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퇴근길에 차선이 합쳐지는 곳에서 앞서가던 차가 대여섯 대의 차량이 들어갈 만큼 빈 공간을 두고 가기에 새치기하려고 갓길을 달리다 미국에서 융통성이 없기로 소문난 고속도로 교통순경 (highway patrol) 에게 딱 걸렸다. 미국에 고속도로 교통순경은 언제나 위협적이다. 뒤에서 접근할 때 보면 항시 오른손에는 총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정지 명령 후 차 안에서 필요 이상으로 움직이다 총에 맞아 죽는 경우도 있다. 창문을 내리고 손은 운전대에 얹혀놓고 있으니 운전 면허증과 보험증을 달라기에 호주머니에 있는데 꺼내도 되겠냐고 묻고 나서 건네줬다.
자기차로 돌아가 3-4분 후에 내게 오더니만 “이번에는 구두경고 (verbal warning)” 를 줄 터이니 다음부터는 조심하란다. 내 신원을 조회해보니 지난 30 년 동안 교통위반이 한건도 없는 착한 운전자임을 확인하고 구두경고를 줬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도 그 지점을 지나칠 때면
“그래 사람들이 나 같이 갓길로 앞차를 새치기 할 줄 몰라서 뒤에서 기다렸던 것은 아닐 거야. 그들도 모두 착한 운전자가 돼가 위해,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줄을 섰던 거야.”
하고 나 자신에게 타이르면서 오늘도 여유 있는 운전자가 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