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한국의 표현들이 아름다워졌다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한마디가 그동안 의심하고 경계했던 연인의 마음을 누그려 뜨려 사랑의 문을 열게끔 만든다. "우리 헤어지자"는 한마디는 삶의 의미를 무력화시켜 마치 코비드에 걸린 사람처럼 몇 날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사랑앓이로 침실에 가두어 버린다. 표현이 구두이건 문자이건 우리에게 전달되는 힘은 대단하다. 오랜만에 찾은 고국에서의 달라진 표현들이 나를 이방인으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거리에서 마주친 간판부터가 예전과는 다르다. 마을버스를 타고 골목길을 돌아서니 "더 깎아 줄까"라는 간판 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안 깎아도 제일 싸다는 곳" 정도는 아닐까 싶다. 시장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중국식당은 "짬뽕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짬뽕맛에 인생을 걸었으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었을까? 조만간에 꼭 들러봐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지하철역 근처에는 "누구나가 홀딱 반한 치킨"인데 멀리서 보면 시야에는 "누나가 반한 치킨"이다. 거리의 간판들은 재치와 익살스러움이 넘친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아이디어들이 빛난다.
식당을 들러도 사람들은 벽에 붙어있는 내용들을 그냥 지나치지만 나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와 어떤 내용들인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주인장이 써서 붙여놓은 벽보내용을 읽다가 "코탱 하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에게 저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코를 땡 하고 풀지 말라"는 뜻이란다. 코를 푸는 게 문제 될 게 있냐고 따져 물었다. 더러운 코를 소리 내서 푼다고 손님들 간에 크게 싸웠던 일이 있었다 한다. 이게 문화의 차이다. 미국에서는 식당에서 손님들이 주저하지 않고 코를 푼다. 이민초기에 이 모습을 보고 이런 고급식당에서 결례가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한다. 어느덧 이런 문화에 익숙해져 이제는 한국의 것이 이상하게 들리니 말이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 서면 눈높이에 맞춰 마주친 표현 "멋진 남자가 머물다간 자리는 떠난 뒤에도 멋집니다" 나도 모르게 한걸음 다가서진다. 멋진 남자가 되고 싶었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유사한 문구들이 있다. "One step forward" 그러나 이런 표현들이 나를 한 발짝 앞으로 끌어 주지는 못했다. 너무 흔한고 진부한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표현은 때로는 감동을 , 자극을 주기도 한다. 신선한 표현에 나도 모르게 반응한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또 다른 표현 “남자가 흘려서는 안 되는 두 가지. 하나는 눈물이요 다른 하나는 이것 입니다” 어릴 적 어르신들로부터 사내가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눈물을 오늘 화장실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성인이 돼 한국으로 돌아오니 이제는 “변기밖으로 흘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다시금 한 발짝 변기 쪽으로 다가선다.
T.V. 를 보다가 생소한 단어들을 접하면 전화기를 켜고 무슨 뜻인지 확인하는 경우도 많아진다. 아니 이제는 전화기 메모지에 기록하였다가 틈나로대로 반복학습을 하기도 한다. 언어는 끊임없이 탄생하고 소멸한다. 요즘 한국에서 마주친 새로운 단어들은 흥미롭기도 하고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아이디어들이 나왔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영어의 합성어 "워라벨, work+life+balance), 한국어와 영어의 합성어 "디지털 단식"이나 "갓생"은 재치가 돋보인다.
디지털 산업의 발전으로 도약하고 있는 고국이 언어도 급성장하고 있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어 나는 여느 관광지 못지않게 하루하루가 지루하지 않다.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이삿짐트럭에 쓰여있는 표현 "행복을 나르는 사람들". 시내버스 광고판에 "9번 9워 9하기 힘든 XXX 죽염 (아홉번 구워 구하기 힘든 XXX 죽염)" 사진 한컷을 카메라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