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다는 감각이 주는 불안과 초조함에 대하여
여느 때와 같이 금요일 저녁, 고속버스를 탔다. 신혼집이 있는 세종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내 금요일 밤의 무시무시한 교통체증 속에서 옴짝달싹조차 못하는 버스 안에 갇혀 꼬박 2시간을 말그대로 '숨죽이고' 있었다. 살짝만 스쳐도 버스 한 채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것만 같은 폭탄을 품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다가 멈추고 이내 움직이다가 다시 서성이는 버스 안에서 내 마음의 폭탄은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꿈뻑꿈뻑 감았다 떴다, 핸드폰을 켰다 껐다, 앞을 봤다 뒤를 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죽을 맛이었다. 너무 산만했던 나머지 누군가에겐 화장실이 급한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마음과 달리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중경삼림이랄까, 화양연화랄까, 그런 류의 영화 속 한 장면과도 같았다. 버스가 움찔거릴 때마다 매끈한 천장 등에는 버스 앞에 멈춰 선 차들의 빨간 백라이트가 비쳤고 버스가 속도를 내면 그 불빛들이 마치 하늘로 치솟는 폭죽처럼 구불구불 내게로 다가오다가 스르륵 팡!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커튼 사이로는 늦은 저녁까지 집에 가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억울한 형광등빛이 섬광처럼 번쩍거리며 내 눈을 부시게 했다. 앞 좌석에는 듬성듬성, 밝기를 낮추고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쩜 이렇게 태평스럽게 잠을 잘 수 있을까, 야속할 정도로 코까지 골면서 숙면을 취하는 이도 있었다. 버스의 입구 위쪽에 부착된 TV에는 전개가 빤해 보이는 저녁 드라마가 한창이었고 터널을 지날 때마다 신호가 끊겨 출연 배우들의 표정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박제되곤 했다.
나는 끊임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느라 바쁜 와중이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가, 카톡 메시지가 왔는지 확인하다가, 유튜브에 뭐 재밌는 거 없나 들춰봤다가, 음악이라도 들어볼까 하고 음악앱에 들어갔다가, 밀리의 서재로 읽을 만한 책을 서재에 담았다가, 네이버 지도를 켜고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고, 다시 인스타그램에, 다시 카톡으로, 어? 다시 유튜브로. 나 왜 이렇게 산만하지, 하면서 내 머리 속보다 더 산만한 핑크 팬서리스의 음악을 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멜로디를 듣노라면 아, 이 세상에 나만 초조하고 산만한 게 아니구나,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왜 이렇게 초조한 사람일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초조하게 만드는 것일까. 쿵쾅거리는 비트를 헤집고 흐느적거리는 핑크팬서리스의 목소리가 튀어 오른다. 순간 내 안에서도 생각이 튀어 오른다. 통제감. 통제하고 싶은 욕구. 그러나 통제하지 못하는 감각. 아, 이것 때문에 이렇게 초조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앉아 있는 바로 이 순간의 버스 안에서도, 그러니까 회사 밖에서도, 그리고 회사 안에서도 나는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어떠한 일에 직접적으로 혹은 아주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대세에 영향을 주거나 어떠한 일을 할 때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기꺼이'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본다. 지금은 절대로 이해가 되거나 기꺼이 견디고 싶은 순간이 아니었다. 개입할 수 있는 순간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 회사에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어디에서도 무언가를 통제할 수 없다는 감각이 내 목을 끝까지 조르는 것이었구나, 요 며칠을 되돌아보며 한숨을 푹푹 쉬어본다. 그럼에도 줄지 않는 도착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결국 눈물이 고였다.
이 재해 같은 감각을 나는 앞으로 어떻게 품고 살아야 할까.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상의를 해도 뾰족한 수가 나오질 않는다. 선생님은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교과서 같은 대답만 늘어놓을 뿐이다. 한편 나를 아끼는 선배가 나의 이런 상태를 옆에서 지켜보고 스토아 철학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고 해.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거지. 통제할 수 있다? 그럼 그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보면 되는 거고. 생각보다 심플한 원리야."
선배, 말로 하면 뭔들 안 심플한가요. 그걸 구분해내는 게 저한테는 너무 어려운 숙제라고요.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 아닌가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꾸역꾸역 삼키며 몸에 좋은 약을 먹듯 그 말들을 마음에 일단 새기고 다시 바라본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난관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다니. 달리 말하면 지금껏 그런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온 나 자신이 얼마나 건방졌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세상에는 통제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가까운 일상에 붙어있는 것들도 많다. 지옥철에서 생전 모르는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는 상황, 맛있는 밥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한껏 부풀어 오른 마음에 찬물을 껴얹어버리는 식당 직원의 불친절함, 불평이나 비난 같지 않게 쿠션 언어로 겹겹이 포장한 피드백을 동료에게 전할 때 돌아오는 동료의 표정, 무심하게 툭 튀어오르는 인생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받아들이는 남편의 실시간 반응 등등 무수히 많다.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이런 상황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과 태도 뿐이라는데.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노력해서 통제해본다면 마음이 평안함에 이르를까.
아직 역부족인 나는 오늘도 있는 힘껏 고통을 삼켜내본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버스 안에서 무겁게 숨을 골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