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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진소라 Aug 17. 2022

검찰청과 금감원 사이의 팔레트

보이스피싱이 나에게 남기고 간 것들

 아이유(IU)님의 팬클럽 활동을 했을 정도로 아이유라는 아티스트를 좋아하지만 유독 듣기 힘든 노래가 있었다. 바로 팔레트라는 노래다.

스물 위, 서른 아래. 고맘때' Right there
애도 어른도 아닌 나이 때 그저 '나'일 때
가장 찬란하게 빛이 나
어둠이 드리워질 때도 겁내지 마

 2017년 4월 27일, 때는 바야흐로 아이유와 동갑인 내가 25살 때의 일이다. 24살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운 좋게 규모가 좀 되는 광고대행사에 합격하여 신입사원이 됐으니, 신입으로 일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오전 11시 즈음, 여자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잘 받지도 않는 편인데 그날은 하필 그 전화가 무지 신경 쓰였고 하필 핸드폰을 새로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긴 통화를 해도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배터리가 빵빵했으며 하필 일이 바쁘지 않아 잠깐 나갔다 오는 것 정도야 괜찮다 생각되는 날이었다. 수많은 '하필'의 연속인 날이었다.

 그렇게 나는, 얼굴도 잘 생겼을 것으로 예상되는 목소리 좋은 남자 '검사'님과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통화를 했고 그 사이에 시청역에서 광화문역 일대까지 은행 창구들을 순회하며 나름 전재산이라 할 수 있는 돈을 성실하게 현금으로 인출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어서 예상했겠지만 결국엔 방배동에 있는 '로고스 교회'라는 한적한 교회 앞에서 몇 살 차이 나지 않아 보이는 '금감원 직원'으로 불리는 남자에게 현금 1,52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건넸다. 정의로운 일에 동참한다는 비장한 마음도 다소곳이 얹어서 말이다. 그러곤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가 케이트윈타워에 위치한 아늑한 카페에 들어왔다. 10분 후 다시 통화하자는 상대의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통화가 끝나고 이어진 평온한 30초, 의심의 20초, 다시 평온한 10초, 극도로 불안한 3분. 그 이후 극한의 억울함, 자책, 원망, 실망, 배신감, 증오, 슬픔, 분노의 감정들이 덕지덕지 붙어서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각각의 감정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덩어리 진 감정을 태어나 처음 마주한 나는 적지 않게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카페에서 덩그러니 앉아 혼자 꺼이꺼이 울었다. 

 한편 이 모든 일이 '단' 5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엔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무려' 5시간 동안 신입사원 한 명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연락두절되었으니 말이다. 사수는 내 동기들을 수소문했고 부장님은 인사팀에 연락을 취했으며 가까스로 우리 엄마에게도 연락이 닿았으나 계속해서 통화 중인 나를 두고 그 누구도 뭘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5시간'만'에 알거지가 되어 모두의 곁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이 일이 있고서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몇 가지는 철저하게 타의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1520'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 별명은 내가 회사에서 제일 좋아하는, 유병재 님을 닮아 눈이 부리부리한 사수가 붙여준 별명이었기에 괜찮았다. 엄밀히 말하면 죄수번호처럼 낙인이 찍혀버린 거긴 하지만 충격요법 같은 효과가 있었던 건지 그 별명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아 물론 내가 웃어야만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을 수 있었다. 또 다른 변화는 돈 쓸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타의로 이루어졌는데 보이스피싱 경험담을 이야기하면 그 자리에 있는 누구든 나서서 조용히 내 몫의 밥과 커피값까지 다 내주었다. 배려를 받는다는 건 언제나 마음 깊이 감사한 일이다. 

 자의로 이루어진 변화가 있다면 긴 머리를 단번에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바로 다음날 새벽,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느라 찌뿌둥해진 몸을 이끌고 남대문 시장에 있는 미용실에 가서 5,000원 내고 머리를 잘랐다. 층을 내지도, 뽕 넣는 드라이를 해주지도 않는 미용실 사장님이 건조한 표정으로 머리를 쑴뿍쑴뿍 자르실 때 나는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초심'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초심이라는 단어가 재출발에 희망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하게도 불행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한동안은 퇴근하는 밤 버스 안에서 누가 쳐다보든 말든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날이 많았다. 이밖에 소소하지만 중요한 변화도 있었다. 바로 아이유의 '팔레트'를 듣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연유를 따지자면 일종의 PTSD 같은 것이었는데 뽈뽈 거리며 돌아다닌 그 문제의 5시간 내내 택시든, 카페든, 길거리든 내가 가는 곳 어디든 최신 인기곡으로 팔레트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같은 스물다섯 살인데 나는 보이스피싱으로 5시간 만에 무일푼이 되었고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아이유는 팔레트라는 곡과 함께 20대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런 보이스피싱 경험담을 이야기하면 대체로 반응이 두 가지로 엇갈린다. 하나는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1,520만 원을 모았냐는 반응과 또 다른 하나는 똑똑한 줄 알았는데 헛똑똑이구나 하는 반응이다. 1,520만 원'이나' 잃었다니 참으로 아깝다는 반응은 공통사항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보이스피싱 사건을 덤덤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1,520만 원에서 헤어 나온 것은 아니다. 여전히 뭐만 하면 "아, 1,520만 원만 있었으면 이거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는 식이다. 신혼집 인테리어에 뛰어들면서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있었더니 남편이 '어차피 그 돈이 있었다 해도 다른 데에 써버렸을 것'이라며 더 이상 얄궂은 상상을 못 하도록 선을 그었다. 이미 엎어진 일에 대해 '일어나지 않았다면'이라는 쓸데없는 환상을 가지는 게 지금의 나에게 일절 도움 되는 것도 없지만 보이스피싱 사건 5주년을 기념하는 나만의 방법이라 합리화해 본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전혀 상상도 못 했을 전개일 테다. 이 사건에 기념일을 매기다니. 똘똘함에 있어 어깨를 으쓱하며 살아온 스스로에게 본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배신감을 느꼈던 사건이자 상상 이상의 상실감을 느꼈던 사건인데 말이다. 고백하자면 7살 때 딱 봐도 근엄해 보이는 작은할아버지 앞에서 쫄지 않고 붓글씨를 당차게 썼다는 이유로 '영특한 아이' 소리를 들은 후 나는 '똘똘함'에 취한 채 살아왔다. 당시 TV에서 보던 대장금만큼 특출 나고 영특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라고 남몰래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내 기준에선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 스스로 영특하지 않음을 세상 만천하에 셀프 입증한 것이 되었으므로,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사건이었던 거다. (사기당하는 사람들이 영특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당시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임을 밝히며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거기에, '별거 중인 부모님을 극진하게 케어해야 한다', '부부의 재결합은 자식들이 잘해야 되는 거다'라는 오지랖 넓은 주변 어른들의 서툴디 서툰 충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이 고픈 나이였다. 갖고 싶은 게 생겨도, 가고 싶은 것이 생겨도 매달 월급의 반 이상을 꼬박꼬박 저축하며 지겨운 충고 무덤과 집구석에서 탈출할 그날만 꿈꿨는데,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던 그 꿈은 한순간에 세상의 끝으로 달아나버렸다. 그렇게 스물다섯의 내가 1,520만 원 이상의, 어쩌면 몇 배의 값어치를 뽐낼 수 있었던 크고 작은 꿈들을 잃은 사이 시간은 흘러갔다.

 흐르고 흘러 갓 서른이 되었다. 그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다. '1520'이라는 별명 대신 이런저런 사건사고를 퉁쳐서 '호구상'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그 후로 회사를 두 번이나 옮겼다. (나를 놀리던 유병재 사수가 원인은 아니다.) 그리고 가끔 사수를 만나 술을 마실 때 1, 2차를 모두 살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이 되었다. 머리가 허리춤까지 길었다가 귀밑으로 잘렸다가 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고 정성스럽게 층을 내주고 꼼꼼하게 뽕 넣는 드라이를 해주는 미용실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새로운 꿈들을 갖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만 그리고 있던 브랜드를 선보였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글쓰기를 시작했다. 브랜드 기획자가 되었고 이제는 작가라는 타이틀에 다가가기 위해 타자를 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유의 팔레트를 기쁜 마음으로 플레이리스트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을 겪은 지 딱 5주년이 되는 올해, 팔레트 가사의 조각들이 매일 아른거린다. 나는 막 '서른'이 되었으나 아직 '어른'이 되지는 못했다. 1,520만 원에서 헤어 나오는 그날, 나는 진짜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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