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도시
야!라고 버럭 지르더니 뭔가 혼자 찔린 듯 다시 그 큰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갈피를 못 잡는 언니의 눈동자를 보는 게 새로웠다. 저런 눈을 보는 날도 있구나. 이미 스터디는 가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언니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주현은 주현 자신을 위해서였다. 자신은 대책이 없는 사람인데 대책도 없냐고 따지는 사람이었고 언니는 대책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문제를 부딪히고 격파해 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주현은 서현에게서 그런 힘을 받고 싶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오늘, 새벽부터 공항을 따라 나온 것도 이런 마음이 큰 원인이지 않았을까. 여의도까지만 같이 가자고 하는 서현의 말에 흔들린 것이 아니다. 대책이 없을 수도 있지 라고 당당히 말하면서, 그럼에도 이 일을 해결해 갈 생각을 갖고 앞으로 나가는 그 힘에 흔들렸다. 주현은 언니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좋아했다. 언니 옆에 있고 싶지 않았지만 옆에 있고 싶었다. 피곤했고 신경질이 났고 이해가 되지 않았고 신경이 쓰였지만 힘을 받는 게 있었다. 그리고 언니가 괜찮다고 하면 정말 괜찮은 거 같았다. 전적으로 신뢰한다기 보다는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언니 탓을 했으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리고 자기 탓을 하는 걸 서현은 크게 개의치 않아했으니까, 그리고 언니가 괜찮다고 하면 그냥 마음이 놓이는 게 있었으니까. 주현에게서 언니는 그런 존재였다.
여의도로 가기 전에 점심을 먹기로 하자고 한 건 주현이었다. 새벽부터 공항에 가서 모르는 사람의 집까지 찾아가서 상상도 하지 못한 언니의 행동을 막을 때까지 한 끼도 못 먹었다. 허기가 져서 현기증이 났다. 주현은 스터디 그룹 멤버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갑자기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스터디를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왜 부모님이 올라왔다고 얘기를 했는지, 일부러 거짓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갑자기 그냥 그렇게 말이 나왔다. 언니가 갑자기 왔다고 하면 이해를 못 할 까봐 그랬던 걸까? 언니 보다는 부모님이 더 이해 받기 쉬우니까? 그런데 스터디 그룹 사람들에게 내가 꼭 이해를 받아야 하나? 사정이 있으면 누구나 빠질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빠지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무너지지 서로 주의를 하고 있긴 했었다. 괜한 마음에,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이었다. 외국에 있던 언니가 갑자기 한국에 왔다고 해도 충분한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주현은 언니가 자신의 일의 핑계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언니를 배려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언니 때문에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못 하게 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건 서현에게 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들어간 집은 맥도날드 햄버거 집이었다. 주현은 빅맥과 제로콜라와 감자튀김을 시켜서 먹었다. 서현은 상하이치킨버거와 제로스프라이트를 시켰다. 주현은 입을 크게 벌려서 아구아구 먹기 시작했다. 서현은 버거 포장지를 뜯는 듯 마는 듯한 느낌으로 풀면서 먹고 있는 주현을 쳐다봤다. 서현은 고작 맥도날드에 온 주현이 황당했다.
“점심 먹자며.”
“먹고 있잖아.”
“맥도날드가 무슨 점심이야.”
“그럼 이걸 밥으로 먹지 간식으로 먹어?”
주현은 콜라를 쭉 빨았다. 공항에서부터 지금까지 주현이 가지고 있던 표정을 지금은 서현이 짓고 있다. 큰 눈은 상대방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쫓아가고 있었고 얇지도 굵지도 않고 둥그런 긴 눈썹은 아주 살짝 가운데로 모아졌다. 앞니 사이로 입술이 집혔다가 풀어졌다 했고,숨은 크게 들이쉬었지만 크게 내쉬지는 않았다. 두 자매가 그런 표정을 할 때면 둘은 똑 닮아보였다.
“내가 밥 사준다고 했잖아. 이 동네 맛있는 데 많아. 우리 걸어오던 길 반대쪽으로 가면 대학가고, 서울숲쪽으로 가면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그런 집 많을 거 아니야. 왜 맥도날드야? 맥도날드 이탈리아도 널렸… 하… 나 한국에서 먹는 첫 끼인데.”
서현은 포장지를 다 뜯고 궁시렁 거리면서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주현은 언니한테 점심을 사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주현이 서현에게 사달라고 해도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주현은 괜히 얻어 먹기가 싫었다. 심지어 계산은 주현이 둘 다 했다. 주현은 자기가 이상한 상황을 벌려 놓은 것을 모르지 않았다. 언니를 난처하게 하려고 한 의도도 아니었다. 그냥 언니한테 얻어 먹기가 싫었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언니였고, 서울에 왔고, 결혼하려던 남자와 파혼을 했고, 그 남자를 찾아갔는데 그 남자는 이미 일주일 전에 어디론가 도망을 간 언니한테 점심을 사달라고 하기 싫었다. 서현이 불쌍한 건 아니었다. 근데, 그냥 그랬다. 자기가 계산을 해 버린 건 언니 카드가 말썽을 부릴까봐 괜한 두려움과 귀찮은 마음이 생겨서 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좀 더 괜찮은 걸 내가 사줄 수 있었더라면 기분이 지금보다는 좋았을까? 생각했다.
“이탈리아 맥도날드에는 버거 보다 크로와상이랑 디저트가 더 많다며.”
“그게 궁금해? 그래서 맥도날드로 데리고 온 거야?”
“그냥, 귀찮아서. 빨리 먹고 움직여야 하지 않아?”
서현이 한숨을 내쉬고 버거를 한 입 더 크게 물었다. 오물오물 씹던 서현은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버거를 한 번 보고는 다시 한 번 더 크게 한 입 물었다. 서현은 상하이치킨버거를 잘 먹었다. 주현은 감자튀김을 쏟지 않고 자기 앞에 두고 한 개씩, 때론 두 개씩 집어 먹었다. 그 때 서현이 주현의 감자튀김 박스를 들더니 쟁만에 뒤집었다. 감자튀김은 쟁반에 널브러졌고 서현은 케첩을 옆에 쭉 짰다. 주현은 황당하다는 듯이 서현을 봤다.
“아니 이걸 왜 쏟아?”
“감자튀김은 쏟아서 먹어야지.”
“외국 사람들 각자 알아서 먹지 않아? 이렇게 쏟아서 먹어?”
“여기 한국이야, 나 한국 사람이고!”
둘 다 버거를 절반정도 먹은 상태였다. 옆에 앉아있던 초등학교 저학년처럼 보이는 남자애 두 명이 주현과 서현을 쳐다봤다. 서현은 유치하다고 생각했고 주현은 열 받는다고 생각했다. 항상 그랬다. 서현이 주현의 음식을 건들면 주현은 열 받아했고 서현은 유치하다고 했다. 주현은 언니한테 항상 밀려있다고 느꼈다. 부모님은 항상 첫 째인 언니가 모든 순간이 처음이다 보니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두 번째였기 때문에 이미 했던 것을 다시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최선을 다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의 것이 항상 좋아 보였다. 나보다 항상 좋은 걸 가졌을 언니가 내 것을 건드는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특히 먹는 것은.
“야, 안 먹어. 너 다 먹어.”
“이미 다 쏟았잖아.”
주현은 정말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서현은 그런 주현의 목소리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얘 뭐야, 라는 마음이 확 들었다.주현은 큰 눈으로 감자튀김을 쳐다보고 있었다. 울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의 느낌으로 주현은 감자튀김을 보고 있었다. 서현은 이게 이럴 일이야? 라는 생각이 속으로 들었다. 서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을 자신들을 힐끔힐끔 보는 것만 같았다. 서현은 먹고 있던 상하이치키버거를 내려놓고 감자튀김 박스에 다시 감자튀김을 넣기 시작했다. 주현은 커진 동그란 눈으로 더 당황해 하면서 서현의 행동을 보기 시작했다.
“언니 뭐해?”
“쏟은 거 먹기 싫다며, 다시 담잖아.”
“아 진짜 이상해!”
주현은 서현의 행동이 진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주현은 서현에게 그만하라고 하면서 웃기 시작했다. 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감자튀김을 다시 다 담아서 주현 앞에 놓았다. 그리고 아직 뜯지 않은 새 케첩도 줬다. 주현은 생각했다, 이 언니가 왜 이럴까. 그러면서도 그런 서현의 행동이 싫지 않았다. 주현은 항상 언니 앞에서 자기가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었다. 8살이나 어리면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언니는 천방지축이고 본인은 용의주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성향은 성향일 뿐 어른스러운 건 또 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주현은 이 순간에 느꼈다. 서현은 자신을 잘 컨트롤 할 줄 알지만 자신은 서현을 잘 컨트롤 할 줄 모른다는 걸.
“너 혼자 다 먹어.”
“그럴 거야.”
“근데 너 원래 튀김 좋아해?”
“응. 언니는 안 좋아해?”
“어, 별로.”
서로 몰랐던 사실이었다. 물론 서현은 아예 안 좋아하고 아예 안 먹는 것은 아니었다. 근데 반드시 먹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이렇게 패스트푸드점에 올 때면 감자튀김을 스스로 시켜서 다 먹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같이 가면 꼭 감자튀김은 남았다. 그래서 그녀는 시킨 적 없이 쟁반에 부어져 있는 남겨져 있는 감자튀김을 몇 개 집어 먹었었다. 주현은 튀김을 좋아했다. 그냥 기름에 튀겨진 걸 좋아했다. 그리고 그걸 온전히 자기가 먹는 것도 좋아했다. 친구들이랑 나눠서 먹는 게 싫은 게 아니었다. 친구들이랑 먹으러 가면 언제든 쟁반에 부어서 먹었다. 그런데 언니랑 이걸 부어서 먹을 거라곤 생각도 안 했고, 언니는 시키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먹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 썬캐처 뭐야?”
“뭐 이거? 내가 만든 거야. 이탈리아에서.”
“그 사람 주려고?”
“아니, 그냥 만든 거야. 다른 데 쓰려고 만든 건데, 그 사람도 이걸 마음에 들어 했어. 내가 봐도 잘 만들었거든. 얼마 후에 그 인간이 한국 먼저 들어간다고 자기가 좀 갖고 있겠다고 해서 가지고 들어갔어.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파혼한 거고.”
“그럼 얼굴을 보고 파혼을 한 게 아니였어?”
“통보 받았어. 문자로. ‘우리 이 결혼 아닌 거 같다. 미안해.’ 뭐 이런식의?”
그 사람은 제정신이었을까? 주현은 입에 물고 있는 감자튀김을 씹을 수가 없었다. 언니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은 철저하게 그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떤 정신 나가고 예의 없는 인간이 12시간이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그것도 문자로 이별을, 파혼을 통보할 수 있을까. 변호사라고 하지 않았나. 어떠한 설명도, 해명도, 설득도 없이 이런 일을 혼자 결정하고 통보했다니, 서현이 반지 주겠다고 서울로 짐을 싸서 날아온 게 한참 이상한 행동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봐도 되?”
주현이 썬캐처가 들어있는 쇼핑백을 보면서 물었다. 서현은 버거를 한 입 물려다가 멈췄다. 주현은 그 질문을 하면 언니가 눈짓으로 가지고 가라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서현은 고양이 같은 큰 눈으로 그걸 왜 보려고 하냐는 듯이 주현을 쳐다봤다. 보여줄 수 없는 물건인 건가? 주현은 민망한 듯 다시 감자튀김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 썬캐처 박스가 담긴 쇼핑백을 쳐다봤다. 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서현에게 단순히 직접 만든 물건인 정도는 아닌 물건이란 거다.
“4학년이면 이제 졸업작품 준비 하는 건가?”
“응.”
“준비 잘 되?”
“음, 아니. 헤매고 있어.”
“원래 그래.”
마음 속 저 멀리에서 굉장히 큰 한숨이 북을 치듯이 울리는 것 같았다. 원래 그래라니, 다른 격려의 말 같은 건 없었을까. 본인은 한 번도 고민을 안 해 본 건가. 생각해 보니 복원사는 졸업작품을 하는 건 아니니까, 언니는 논문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복원사도 경력이 필요해?” 주현이 물었다.
“처음에는 인턴 같은 기간이 필요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취업해서 경력을 쌓을 수 있어.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다른 도시나 나라들의 큰 기관으로 가기도 하고.”
“언니는 그럼 다 채운 거고?”
“응. 다 채웠고 이미 이탈리아에서 복원사로 일하고 있는 건 좀 됐어. 유학 간지8년이 넘어가. 그리고 지금 다른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와서 고민하고 있어.”
“두 군데?”
“스페인 마드리드 미술관이랑 텍사스 박물관.”
서현은 다시 버거를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오물오물 씹었다. 주현도 버거를 거의 다 먹어가고 있었다.
“거기서 먼저 연락이 온 거야? 복원사 자격증을 따고 경력을 채우면 어디서든 그렇게 연락이 오는 거야?”
주현은 갑자기 질문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제멋대로인 언니는 제멋대로 굴었지만 길을 벗어나지 않았고 남들 보다 늦어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도록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지금 벌써 그렇게 된 건가? 언니가 유학을 간지 시간이 꽤 되긴 했다. 주현은 서현이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보다 빠르게 자기 길을 찾아서 가고 있다니. 주현은 얼마 전까지 졸업작품 기획안을 피칭하다가 교수님의 깊은 한숨 소리를 들은 것이 생각이 났다.
“왜? 이탈리아까지 따라오게?”
주현은 순간 자신과 언니를 비교하고 있던 생각을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갑자기 쏟아내듯이 질문을 하니까 복원사라도 관심이 있나 해서 그런거지. 근데 관심 갖지 마. 너는 그림 잘 그리잖아. 그림 그려.”
“… 내가 그림 잘 그리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