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은 장전했지만, 맞는 건 나였다

자매의 도시

by Yun


주현은 갑자기 화가 났다. 서현은 자신의 그림을 제대로 본 적이나 있을까. 그러고서는 말하는 걸까. 주현은 이미 자신의 그림에 대한 평가는 지겹도록 들어왔다. 감각적이고,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으며, 터치도 좋고, 멀리서 볼 때랑 가까이서 볼 때랑 다르다는 듯 온갖 좋은 느낌의 평들을 다 받았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그리고 싶어하는지 몰랐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잘 몰랐다. 대학에 와서1,2학년 때야 그림을 그리다 보면, 공부를 하다 보면, 학년이 올라가다 보면 내가 무엇을 그려야 할지 알아가겠지,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시간은 언제부터인가 해가 거듭할 수록 더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졸업반이 되었다. 교수님은 졸업 전시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 해보라고 했다. 주현은 첫 번째 발표 날 발표하지 못했다. 그 다음주에도, 그 다다음주에도 발표하지 못했다. 결국 서현은 4학년1학기를 휴학하고 말았다.

실패한 것 같았고 도망 간 것 같았다. 이 때 즈음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게,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없었다. 소소하게 그리고 싶은 것들은 많았다. 하지만 딱 이거다! 하는 것이 없었다. 도망 가 있으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결국2학기 때 복학을 했다. 엇학기가 되었다. 결국 졸업전시는 내년에 하게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쉰다고 해서 뭐가 더 나아질 것도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복학을 했다.

그리고 싶은 것이 없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 걸까? 주현은 항상 의문이었고, 이 의문이 자신의 모습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괴로웠다. 이런 생각이 깊어져서 잠이 오지 않을 때면 그녀는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목각인형을 만들었고, 거기에 키링고리를 달았고, 종종 바느질도 했다. 그러면서 언니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했다. 그녀도 이런 고민이 있을지 궁금했다. 없었더라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결해 가고 싶은지를 묻고 싶었다. 언니는 그림 그리는 걸 잘 못 해서 복원사가 되기로 한 거야? 묻고 싶었다.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물을 만한 시간도 없었고, 카톡이나 메신저를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런 걸로 묻는 건 아닌 거 같았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복원사가 되니까 좋아? 적어도 그림을 그릴 때보다 좋아? 아니면 언니는 그림을 그린다는 개념과 기준이 다른 거야? 복원을 하는 것도 그리는 거야? 주현은 그동안 서현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들 사이를 헤쳐서 지나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심정과 이런 처지에서 서현이 그림 잘 그리니까 그림이나 잘 그리라고 말하는 저 말이 너무나 거슬려고 짜증났고 사실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주현은 서현에게 하고 싶은 질문들을 아직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를 못 했는데,특히 미술과 그림에 대해서는, 그런데 서현은 너무나 아무런 생각 없이 말들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물어봐? 잘 그린다고 생각하니까 잘 그린다고 말하는 건데.”


서현의 대답은 언제나 주현이 스스로 복잡하게 생각한 생각들을 허무하게 만든다. 그녀의 말은 항상 그랬다. 그것이 더 허무했던 것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그 말은 틀리다고 꼬투리를 잡을 만한 부분이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복원사도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야. 색을 잘 볼 줄 알아야 하고, 만들어 낼 줄도 알아야 하고, 상상력도 좋아야 한다고.”

“내가 그림 잘 그리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고 물어봤잖아.”

“아니 너가 인스타그램에 종종 올리잖아! 그 정도는 나도 봐!”


두 사람은 이미 버거를 다 먹고 끝낸 상태였다. 서현이 주현에게 다시 쓸어 담아 준 감자튀김과 제로콜라와 제로스트라이프만 조금씩 남아있을 뿐이었다. 주현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눈을 깜빡였다. 언니도 인스타그램을 했었나? 자기는 언니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았다. 갑자기 거기서 죄책감이 스윽 하고 몰려오는 거 같았다. 나는 왜 몰랐고 왜 발견하지 못했지? 너무 자주 안 해서 그런가?


“인스타그램해?”

“어쩌다가? 가끔? 너는 내 꺼 있는지도 모르는 구나?”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주현은 자격지심을 건드린 언니가 미웠고 어떻게 하면 그 인간을 괴롭힐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뭔가 틈새를 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SNS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현은 자신을 알고 있는데 자신은 몰랐다는 게 걸렸다.

서현은 립스틱을 다시 바르더니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현에게 말한다.


“내 아이디는 나중에 찾아보고, 이제는 슬슬 가야 해. 다 먹었지? 사이다 가지고 나올 거면 갖고 나오고.”


주현은 스트라이프를 한 번 쳐다보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두기로 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되면, 특히 버스는 못 들고 타니까. 무엇보다 짐만 될 것이다.

근데 지금 자신에게 있어서 짐은 사이다 따위가 아니다. 주현은 스스로 왜 자기는 지금 계속 총을 장전하려고 하지만, 거의 장전을 했지만 결국 서현에게 한 발 맞고 쓰러져서 울고, 이번에는 제대로 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다시 또 서현에게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와중에 주현은 서현이 자신의 그림을 봤다는 것에 대해서 얼굴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고 근데 자기 그림을 보고 언니가 좋다고 한 것이아주 작은 빛줄기를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나에게 관심이나 있을까? 라고 질문한 적이 많았는데 이게 관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나 동생인 자신에 대해서 배제하고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서현을 만나면 항상 마음이 복잡했다. 그것이 싫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는데 자신이 스스로 생채기를 내고 있던 부분에 누군가가 그만하라고 생채기 내는 손의 손목을 잡아준 것만 같았다. 언니는 자신에게 생채기를 내게 만드는 원인일까, 아니면 생채기를 내는 존재일까, 아니면 그만하라고 말리는 존재일까.

아니면 그 모든 다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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