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가 뜨지 않던 '그 날'

자매의 도시

by Yun

“너 충주에서 그 날 기억 나?”


충주 부대에서부터 쭉 같이 자랐고 서울로 대학을 같이 온 소민의 질문이었다. 최근에 소민을 만난 것은 서현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주 주말이었다. 소민은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1년 다니고1년 휴학하고 다른 일을 하고 이것을 반복했어서 학년은 주현 보다 낮았다. 소민은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는 여학생이라고 하기엔 국가대표 마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운동복을 제대로 갖춰 입었고 항상 한강을 뛰었다. 그녀는 항상 그런 복장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군부대에서 같이 뛰어 놀 때도 그랬고, 대학에 와서도 그랬다. 그녀는 체육복을 입었지만 후질근한 옷을 입지 않았다. 주현은 그런 소민의 모습을 좋아했다. 그리고 소민과 대화하는 걸 좋아했다. 주현이 어느 정도 말하면 소민이 주현의 생각을 정리해주곤 했었다.

“메인 주제로 잡기 어려운 것들은 여러 가지 다양하게 생각나지만 메인 주제는 못 찾아서 작업을 시작 못했다는 소리잖아.”

졸업 작품 때문에 고민스러워서 자기 이야기를 끙끙거리면서 말한 날, 소민은 이렇게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소민은 종종 어렸을 때 이야기들을 꺼내서 잠시 어릴 적, 그 시절 그 때로 다녀오게 해 주었다. 그 날도 물어본 것이었다. ‘그 날이 기억나는지’


소민이 말한 ‘그 날’이 뭔지 주현도 알고 있었다. 서현도 아는 날이었다. 그 날은,그 날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 머리 속에서는 사라지기 어려운 그런 날이 되었다.

주현과 소민은9살이었고 서현은15살이었다. 그 날은 서현의 학교가 일이 있어서 4교시만 하고 집으로 오는 날이었다. 주현과 소민은 부대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생들은 부대에서 버스를 운행해줬다. 중학생부터는 부대 입구에서 타는 마을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부대 버스를 타고 부대로 들어와 관사로 들어가는 길에 서현이 이어폰을 끼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주현의 눈에 보였다. 9살이었던 주현은 언니를 발견한 것이 반가웠어 창문을 두드리면서 언니를 불렀다. 주현의 소동을 느꼈는지 서현은 버스를 쳐다봤고 주현과 소민을 발견했다. 버스는 곧 멈췄고 두 자매는 만났다. 9살 주현은 언니에게 달려갔고 서현은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을 뺐다. 소민은 주현이 언니라며 친구들에게 소리쳤고 병아리처럼 빽빽 거리는 초등학생들의 소리가 서현의 귀에 시끄럽게 꽂혔다. 서현은 그 순간 외쳤다.


“야, 니들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


그 순간 아이들은 아주 짧게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한 남자아이가 깔깔거리며 웃더니 여기는 공군부대라며, 전투기들이 돌아다니는데 자기들 보다 비행기가 더 시끄럽지 않냐는 말을 했다.아이들은 같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주현은 아이들의 태도에 얼굴이 일그러졌고 서현은 피곤함을 느꼈다. 그 때 그 순간에 서현은 생각했다. 그 날 따라 부대가 조용했다. 하교를 할 때면 부대는 가장 시끄러웠다. 언제나 시끄러웠지만 하교 때가 가장 시끄러웠다. 전투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애들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애들 웃음 소리가 시끄럽다고 느낄 정도로 부대가 조용했다. 서현은 하늘을 쳐다봤다. 서현이 하늘을 쳐다보자 아이들도 느꼈는지 곧 웃음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봤다. 소민이 말했다.


“오늘 전투기가 안 떴나봐.”


주현은 언니를 똑바로 쳐다봤다. 서현도 주현을 쳐다봤다.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무리에 끼진 않았지만 주변에 있던 아이들도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이들은 서로 말하지 않고 각자의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서현도 뛰었다. 주현은 언니의 손에 잡혀서 같이 뛰기 시작했다. 주현은 언니가 왜 뛰는지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왜 뛰어 가는 지도 알고 있었다. 주현의 눈에서는 눈물이 차기 시작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9살 주현은 언니 손을 꽉 잡았다.

군부대에서 전투기가 뜨지 않는 날은 훈련이 없는 날이 아니면 사고가 난 날이었다. 훈련 중에 사고가 나면 그 날은 이후에 전투기가 뜨지 않았다. 아침에 학교를 갈 때는 분명히 전투기 소리를 들었으니, 무엇보다 아침에 조종복을 입은 아빠한테 인사를 했기 때문에 훈련을 쉬는 날은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리고 관사 집까지 뛰어가면 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주현은 그 5분이 너무나 무서웠다.하지만 다른 친구들 보다 자기가 덜 무서웠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니랑 같이 있었으니까.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자 서현은 주현을 쳐다봤다. 주현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 서현은 인상을 쓰더니 자기 블라우스 셔츠로 주현의 얼굴을 벅벅 닦았다.


“울지마. 아빠 괜찮아. 너 그렇게 울고 들어가면 엄마 놀라셔.”

“아빠랑 통화했어?”

“그런 거 통화 안 해도 알아.”

“어떻게 알아? 하나님이 알려줬어?”

“뚝”


조종사 가족들은 대부분 교회를 다녔다. 누가 다니라고 굳이 전도하지 않아도 쉽게 가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런 일들이 종종 생기니까. 주현은 매일 밤마다 간절히 기도했다. 아빠가 무사하도록. 같은 방에서 자는 서현에게도 항상 언니도 기도했냐고 물어봤다. 서현은 기도 했다고 했고 본인이 자기 보다 하나님과 더 친하다고 했다. 주현은 언니가 하나님이랑 더 친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었다.

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올라가니 엄마가 전화기 앞에 서있었다. 주현은 서현이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알았다. 서현도 놀란 상태였다는 걸. 서현은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보고는 주현의 손을 꼭 잡았다. 주현은 그 날,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언니가 자기 손을 자기도 모르게 꼭 잡은 순간을.

다행히 아빠는 무사했다. 서현은 아빠가 무사하다는 말에 그냥 제대하고 민간항공기로 이직하면 안 되냐는 말을 했다. 주현은 여기가 좋았다.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동시에 아빠가 무사했으면 했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별 사고가 아닌 것처럼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럴 수록 위험했던 사고라는 걸 아이들은 알았다. 주현도, 서현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 날 뉴스에는 부대 사고 이야기가 나왔고, 주현과 서현과 소민을 포함한 그 동네 모든 아이들은 얼어붙은 마음으로 집까지 미친 듯이 뛰어야 했다.

주현은 그 날 언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소민이 그 날 기억나냐고 종종 물어볼 때마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를 마주했던 그 순간의 손의 느낌을 기억해냈다. 얼마 전 소민이 그 날이 기억나냐고 물었고 3일 후, 주현은 서현을 10년 만에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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