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도시
건물에서 나 온 두 자매는 높은 빌딩들이 있는 곳에서 빠져나와 아기자기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자양동과 성수동 사이였다. 돈 잘 버는 직장인들이 줄지어 살 것만 같은 공간에서 순식간에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옆에서 흰색 쇼핑백을 팔에 걸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고 있는 서현이 주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물에서 나오자 마자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높은 빌딩들 사이에, 정장을 입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또는 점심을 먹고 커피를 들고 돌아오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가 나는 만큼 소리를 지르고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주현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도 못할 사람이라는 걸. 빌딩들을 빠져나와 양쪽으로 공원길과 카페길이 이어지는 길들이 나왔다. 건물의 높이가 점점 낮아질 수록 주현의 마음은 점점 더 올라오고 있었다.
“언니 미쳤어? 어떻게 모르는 사람 집에 막 그렇게 들어가겠다고 그래?”
한 발자국정도 주현을 앞서서 걸어가고 있던 서현이 걸어가면서 주현을 쳐다보았다. 주현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언니한테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을 묻지 않고 잘 참고 있었지만 이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화를 내는 것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이렇게 화를 내지 않으면, 이런 말들을 하지 않으면 자신은 오늘 하루 종일 언니랑 다니게 될 것이고 이런 일들을 하루 종일 당하게 될 것이었다.
“아니 궁금하면 들어가고 싶을 수 있지.”
“궁금하다고? 왜 궁금해? 남의 집이잖아.”
“그 사람이 살았던 곳이잖아. 한국에서는 어디서 살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다고. 솔직히 말하면 저렇게 좋은 오피스텔이 있는지도 몰랐어. 이탈리아에서는 항상 작은 집에서만 지냈는데.”
“지금은 그 사람 집 아니고 아예 다른 사람 집이잖아. 근데 궁금하다고 들어가겠다고 하면 어떡해? 유럽 사람들은 원래 다 그래? 아니지, 언니가 이상한 사람이지.”
“그만해 좀! 결국 안 들어갔잖아!”
서현은 주현 보다 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주현은 서현에게 그 집에 들어가려고 했던 이유를 들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그건 이유가 필요 없는 일이었다.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파혼한 사람이 살던 집이 궁금한 것도 이해가 안 됐다. 그 사람 집이 왜 궁금할 까. 무슨 심리일까. 궁금할 순 있는 걸까? 궁금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 주현은 자기는 그런 성향, 성격은 아니지만 그럴 순 있다고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 집을 이사하고 있는데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됐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오피스텔이 한국에 있는 줄도 몰랐다니, 정말 결혼을 생각하고 만났던 사이가 맞았을까? 그 인간은 우리 언니한테 그런 이야기 조차 하지 않았던 건가? 이 생각을 하니 주현은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되었다. 나였어도 쉽게 이야기하긴 어려웠을 거 같다, 언니한테는.
서현은 빠른 발걸음으로 앞으로 쭉쭉 걸어나갔다. 길은 아는 걸까. 어디로 가려고 저렇게 가는 걸까. 주현은 언니의 뒤통수에다가 외쳤다.
“아 어디가 지금?!”
“버스 정류장!”
서현은 엄청 자신 있게 당당하게 성질을 내면서 말했다. 버스 정류장을 간다고? 어디를 가려고? 주현은 생각했고, 서현이 가는 방향을 확인했다. 서현이 가는 길로 쭉 걸어가면 버스정류장이 아닌 공원이 나올 것이다. 버스 정류장은 서현이 지금 지나치고 있는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야 나온다. 주현은 순간 생각했다. 항상 따라가는 건 나였는데, 오늘은 언니가 나를 따라다녀야 할 수도 있구나.
저렇게 당당하게 아는 척 걸어가지만 결국 잘 못 걸어가고 있으니 주현은 자신이 서현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서현이 자신을 쫓아다녀야만 서울을 오게 된 임무,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저 언니 바보잖아, 라고 생각이 드는 동시에 자신도 바보일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쪽 아니야!”
주현이 서현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주현은 언니한테 큰 소리를 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일단 대화를 할 시간이 많지 않았고 무엇을 같이 할 일도 별로 없었다. 무엇을 같이 하든지간에 대부분 언니가 자신을 인도해 왔기 때문에 언니한테 큰 소리를 치거나 어떤 이야기를 강하게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오늘은 길 한 복판에서 말하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이미 앞서서 언니가 한 짓이 있기 때문에 화가 나 있기도 했고 또 마음 한 켠 아주 작은 곳에 우리 언니를 이렇게 만든 그 윤도진이라는 사람이 기분 나빠지기 시작했다. 또 자신은 오늘 언니를 쫓아다니면 안 된다는 큰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이 언니가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거라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의 바보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오늘 언니와의 관계를 좀 다르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현은 그쪽 아니라고 말하면서 서현이 지나친 오른쪽 골목길로 쏙 들어갔다. 앞서서 구두 소리 또각거리며 걸어가고 있던 서현은 약간은 당황한 얼굴로 뒤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종종종 거리는 발걸음으로 주현을 쫓아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언니가 가려던 방향이 잘 못 되었다는 걸 알려주면서 내가 방향을 틀어 본 적이 있었나, 주현은 순간 생각했다. 서현이 길을 돌아서 자신이 걸어 들어 온 골목으로 들어올 때까지 생각했다. 항상 언니가 앞서 있었다. 태어난 것도 먼저 태어났고, 학교를 다니는 것도 훨씬 먼저 다녔다. 나이 차이가 있으니 당연했다. 주현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서현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공부도 먼저 했고, 장래 선택도 먼저했고, 대학도 먼저 갔고, 서울도 먼저 갔고, 혼자 사는 것도 먼저했고, 심지어 외국도 먼저 갔다. 항상 당연히 서현이 자기 보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주현은 그 길을 따라서 갔다. 언니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에 때로는 자기가 너무 언니만을 좇아가고 있나 고민이 되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앞서서 서현이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선택을 하기도 쉬웠고 비슷한 길을 가는 게 어렵지 않았고 시행착오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런 서현이 길을 모르고, 자신을 따라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신기하면서도 약간 흥미로우면서도 괜찮을까 하는 염려도 살짝 느껴졌다. 처음으로 언니와의 이 하루를 빨리 끝내야만 하는 그런 두려움들이 안개가 걷히듯이 아주 살짝 걷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순간 서현은 주현의 옆에 와있었다. 빠르게 걸어온 듯 호흡이 아까 보다는 가쁜 것 같았다.
“내 기억엔 저쪽이어서.”
“여기 와 본 적 있어?”
“많이 왔지. 이 주변에서 미술 학원 알바했었는데.”
주현은 서현을 쳐다봤다. 이 근처에서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니, 주현도 이 근처를 잘 아는 편이었다. 주현도 이 근처 미술학원에서 강사 일을 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달까지 이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언니가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곳에서 한 것이 약간 뭐랄까, 신기하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소름이 끼친 건 아니다. 소름이 돋았다. 한 번도 둘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같은 동네에서 일을 했었을까. 물론 이 일대가 미술학원이 많긴 하지만 자신들이 다니는 대학에서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주현은 학교에서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이 동네가 좋았다. 어린이대공원도 있고 서울숲도 있었다. 시간이 날 때면 그쪽에서 내려서 걸어서 학원까지 갔다. 그런 조용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왜 여기까지 왔어? 학교에서 멀잖아.”
“조용하잖아. 공원도 많고.”
이럴 때면 공유한 게 별로 없음에도 나랑 이 사람이랑 자매이긴 하단 생각이 든다. 자주 드는 건 아니다. 그런데 가끔, 말한 적이 없는데 나랑 같은 생각, 같은 가치관,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을 때 보면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논리적으로도 표현하긴 어렵지만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이 아니다, 느낌이다. 나랑 너는 어쩔 수 없나봐 라는 생각이 드는 느낌이었다.
“언니도 조용한 데 좋아하는 구나. 몰랐네. 시끄러운데 좋아하는 줄 알았어.”
“평화롭잖아. 평화로운 거 좋아.”
“언니는 평화로운 편이 아니잖아. 항상 평화를 깨는데.”
“너 항상 나한테 이상하다고 하더라.
주현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 언니한테 이상하다고 말한 건 오늘, 아까, 윤도진이라는 사람의 집 주소를 찾아가기 전 서울역에서가 처음이었다. 근데 서현의 말은 무슨 말일까.
“내가 언제.. 언니한테 이상하다고 말한 건-“
“평화를 깨는 사람인데 평화로운 곳을 좋아한다, 파혼한 관계인데 반지를 주겠다고 만나려고 한다, 그리는 재능이 있는데 그리는 게 아니라 복원을 하겠다고 한다, 예쁜 외모 때문에 말만 안하면 참 좋겠는데 말을 더 많이 한다, 자기 것이 좋다고 하면서 늘 나의 것을 가지고 간다.”
걸음을 멈춘 주현에게 돌아서서 서현은 책에 있는 문장을 읊기라도 하는 듯 주현에게 말하기 시작했다.주현은 서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똑바로 볼 생각이 아니었다. 그런데 똑바로 보게 되었고 한 마디 한 마디하는 언니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이상하다고 말하는 거야. ‘이상해’라고 딱 말을 안 했다고 안 한 게 아니라.”
이 말에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상해’라고 입 밖으로 낸 적은 거의 없었지만 항상 언니를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현은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언니를 모두 이상하다고 말했으니까,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니 그렇게 말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 서현이 말을 들으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상하다고 말한 적 없다고 하지만 결국 모든 일로 이상하다고 말했던 사람이었고, 스스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굴지 않았나. 그리고 다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문제가 되진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 썩 기분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상하지 않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순간, 언니가 나에게 이 말을 갑자기 왜 하는지 의도가 파악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 말을 왜 하는 거지?
“아니, 나는…”
주현이 입을 뗐지만 뭐라고 이어가야 할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언니랑 좀 더 오래 있어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한 건 정말 오만이었다. 미쳤어.
“그냥 말해도 되. 말하지 않는다고 안 느껴지는 게 아니야. 숨겨지는 것도 아니고.”
“어?”
“너 항상 무슨 이야기 할 때마다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서 말하는 느낌이야. 근데 아까 나한테 미쳤냐고 했잖아. 그 말 마음에 들었어.”
“미쳤냐는 말이 왜 마음에 들어?”
“너 항상 나를 보면서 저 언니가 미쳤나 생각하잖아. 그런데 말은 안하잖아.”
주현은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서현의 큰 키와 서현의 큰 눈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가 네 마음에 있는 말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게 좋았다고. 나는 너가 좀 그랬으면 좋겠어. 나한테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렇고. 항상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거든.”
주현과 서현이 걷고 있는 길들은 이제 다 카페와 소품샵, 옷가게 같은 키가 작은 건물들만 줄지어 있는 골목이 되었다. 주현은 건물 높이가 낮아지는 것처럼 마음의 높이가 낮아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서현과 이런 식의 대화를 해 본적이 없어서 담이 낮아지긴 했지만 차마 그걸 편안해 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언니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와 마음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됐다기 보다는 의도가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이해라는 단어를 주현은 속으로 많이 생각하는 타입이었는데 서현에게는 별로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의도를 파악한다는 게 더 맞는 말 같았다. 아무튼, 의도가 파악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낀 이유는 저 말은 언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는 뜻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나한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별로 없었다. 나도 별로 없었으니까. 아니, 없진 않았다. 있었다. 하지만 관심을 가져 봤자-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언니는 그러지 조차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마음을 두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더 갔다. 그래서 괴로웠다. 그렇게 느끼고 있던 사람이 나한테 지금 ‘항상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거든’이라고 말했다. 내 생각이 궁금했던 거야? 정말로? 주현은 미치도록 궁금했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왜 궁금해?”
“당연히 궁금한 거 아니야? 너는 내가 안 궁금해?”
여기서 궁금하다고 대답해야 하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그런지 머리가 더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아까부터 허기졌던 느낌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고 현기증이 나는 것만 같았다.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언니.”
“중요한 거랑 궁금한 건 다른 문제야 이주현.”
“지금 나 가르쳐?”
“와우”
걷고 있던 발걸음을 멈췄다. 서현의 얼굴은 흥미가 가득해 보였다. 주현은 서현의 이런 얼굴이 짜증이 났다.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구나. 어떻게 하다가 대화가 이렇게 된 걸까. 자기가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이상하다는 느낌을 줘서 그런 걸까? 근데 애초에 본인이 이상했던 거잖아. 원인은 언니한테 있었다. 그걸 생각하니 더 짜증이 났다. 화제를 돌려야 했다. 내가 화제를 돌릴 수 있을까?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했으니 그걸 이야기하면 될까. 서현과 함께 있으면 창의적이 된다는 생각을 주현은 하게 되었다.
“언니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궁금했어.”
서현은 말없이 눈으로 ‘뭐라고?’하는 느낌으로 주현을 쳐다봤다. 주현은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다시 말했다.
“아까 내가 뭘 생각하는지, 뭘 궁금해 하는지 궁금하다며. 언니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궁금했다고.”
“…. 맥락상 이 얘기가 맞는지는 모르겠다만,”
서현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주현은 속으로 빌었다. 그냥 말 넘어가라, 다른 말 하지 말고 그냥 주제 넘어가자.
주현은 대화의 주제가 뭔가 자신이 되는 것이 싫었다. 이건 서현과의 관계에서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와 모든 상황에서 그랬다. 자신이 되는 걸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주현은 달랐다. 나에게서 관심이 멀어지길 바랐다. 그리고 특히 서현과의 대화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서현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대화의 중심이 자신이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첫 번째는 엄마처럼 간섭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언니의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고 마지막은 그런식으로 자기가 언니를 판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언니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주현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서현을 바라보았다.
“복원사 경력은 다 채웠으니까 앞으로 어디서 제대로 일할 지를 생각해 봐야겠지.”
“응?”
주현은 예상치 못한 말에 흔들리는 눈동자가 다른 느낌으로 흔들렸다. 주현은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 갈 건지를 물어본 거였는데 서현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복원사 경력은 다 채웠다고?”
“어.”
“… 아, 아니 언니. 그 말이 아니라, 그 반지 어떻게 할 거냐고. 저 사람 이사 갔잖아.”
“아아, 난 또. 앞으로 내 인생 어떻게 살 거냐고 물어봐주는 건 줄 알았네.”
주현은 자신이 애초에 질문을 잘 못한 것인지 되돌아 봤다. 이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본 거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은 너무나 포괄적인 질문이긴 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근데 한 편으론 궁금하기도 했다. 주현은 서현이 앞으로 그녀의 인생을 어떻게 살 건지 궁금했다. 항상 궁금했었다. 언니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모범적이지 않았고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잘 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더 궁금했다.
“이사를 가 버렸으니… 그러게. 사실 그 다음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전에 다니던 직장이라도 가서 물어볼까? 친한 동료들은 좀 알 수도 있잖아!”
서현은 처음에는 그냥 말을 던진 것 같더니 자신이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마냥 점점 신이나는 눈빛을 하면서 말했다. 전에 다니던 직장을 찾아가 보면 좋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겠다는 그 생각이 너무나 좋은 생각인 것 같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주현은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대책이 없는 거 아닌가.
“와 진짜 대책 없다.”
“그럴 수도 있지, 넌 항상 대책 있게 사니?”
너는 대책이 있냐는 서현의 되물음이 주현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대책이라.
주현도 대책이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런데 서현과 달랐던 것은 서현은 대책이 없더라도 앞으로 쭉쭉 잘 나가는 스타일이었고 대책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주현은 하나부터 열까지 구체적으로 대책을 세워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주현에게는 그것이 중요했다. 그것이 그를 지금까지 오게 했다. 그런데 최근에 주현은 명확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졸업작품을 준비하면서 대책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이 어떤 작품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잘 생각이 들지 않았고 동시에 자신의 장래에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 갈피를 잡기가 어려워졌다. 학원 일을 그만두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일을 하고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졸업을 하고난 후에도 계속 그 일을 할 것만 같았다.공모전을 준비하고, 취업스터디를 시작하게 된 것도 다 대책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주제에 언니한테 대책이 없다는 말을 하다니. 저 사람은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밥 벌이를 하고 하고 싶은 게 명확해서 지금 비행기까지 타고 날아올 수 있었데 건데.
띠리리-
애플워치 알람이 울렸다. 주현의 손목에서였다. 스터디 시간1시간 전이었다. 그 말은 이제는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대책 없는 이 언니한테서 떠나자.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이 순간, 이게 맞나? 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왜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드는지는 이유를 잘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언니 옆에서 떨어지고 싶었는데.
“나 이제 스터디 있어서 가봐야 해.”
“미대생이 무슨 스터디야, 그림만 잘 그리면 됐지.”
“나는 언니 같아서 그림만으로는 안 돼. 그리고 내가 처음부터,그리고 아까 전에도 스터디랑 알바 있다고 했어. 도대체 사람 말을 뭘로 듣는 거야. 기억 좀 해.”
“아니 까먹을 수도 있지.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나 혼자 가냐?”
“아까 보니까 씩씩하게 혼자서 잘만 가던데, 혼자 가.”
“야!”
“…”
“여의도까지만 같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