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높이, 자매의 거리

자매의 도시

by Yun

서현은 공항에 나와 있는 주현을 마주하고 주현이 자신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얘는 당연하게 이렇게 컸을 거야, 라고 생각한 게 있었다.당연하게 ‘이렇게’가 무엇이었나. 무의식 속에 자기만큼 키가 크지 않았을 까, 여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지 않을까, 얼굴부터가 그런 인상이겠지, 그래도 그 얼굴은 착할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주현의 얼굴엔 예상외의 다부짐이 보였다. 그냥 항상 자기만 졸졸 쫓아다니는 애라고만 생각했다. 그냥 애였다. 지금 25살이라고 하지만 서현에게 주현은 여전히 아이였다. 심지어 노란색 셔츠를 입고 왔네, 어린애 같이 귀엽게. 그런 생각 속에도 평생 보지 못했던 다부진 눈빛에 서현은 재밌다고 느꼈다. 재밌기도 하고, 마음 깊이 한편엔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더 깊게 생각하지 않으련다. 그리고 그 다부진 눈빛을 좀 시험해 보고 싶었다.

서울에 오랜만에 온 건 맞지만 택시를 못 탈 정도는 아니었다. 한편으론 살짝 귀찮음도 있었다. 요즘 한국에서는 택시 탈 때도 어플이 깔려 있어야 하고, 길거리에 가서 손을 흔들면서 택시 잡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밥을 시키려면 전화로 되는 게 아니라 무슨 또 어플을 깔아서 카드를 연동해서 그걸로 시켜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쭉 살았다면, 한국에서 쭉 살았다면 이런 것들이 당연했겠지만 지금 서현의 마음에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다 어플로 해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라고 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귀찮았다. 늙은 건가. 이런 거 귀찮아 한다는 건 늙었다는 건데. 그나저나 이런 생각들이나 할 시간이 없었다. 그 인간을 찾아야 한다. 사람을 찾는다는 건 무조건 빠르게 해야 할 일이다. 어플로 헤맬 시간이 없었다. 주현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데려다 달라고 했다. 비행기에서까지는 웬만하면 자기가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마음과 예상치 못한 다부진 주현의 눈빛에 이 아이를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현은 자기 스스로 언니답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 언니다운 게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사실 사람들이 그런 편견, 선입견을 만들어 놓고 그런 틀을 만들어 놓고 그렇게 해야 해 라는 걸 강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했다. 여자는 이래야 해, 남자는 이래야 해, 라는 머나먼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답지 못하다는 느낌이 항상 저 멀리 마음의 한쪽에, 너무 구석에 있고 솔이 닫지 않아 아무리 청소를 해도 그곳에는 여전히 피어 있는 곰팡이처럼 있었다. 8살에 주현을 처음 만났을 땐 그저 신기했다. 너무 작은데 움직였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데 자기한테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기랑 좀 닮아있는 게 신기했다. 눈이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첫 만남 때부터 생각했다, 얘는 눈을 나를 닮았다고. 그 첫 만남에 자기가 언니가 됐다는 생각을 했고, 얘한테 내가 언니구나, 생각했다.

서현은 자라오면서, 그리고 커서는 더더욱 모든 걸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지려고 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에 이상하다, 괴상하다, 괴짜 같다, 자기 마음대로다, 독단적이다 등 여러 가지 말들을 갖다 대기는 했지만 서현은 그런 자기 행동의 결과를 피한 적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고 그러니까 책임을 지거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현에 대해서는 달랐다. 자기는 얘를 선택한 적이 없었다. 언니가 될 것도 선택한 적이 없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니 굳이 자기가 책임을 지거나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주현에 대해서는 상관하고 싶었고 은연중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를 책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사소한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다. 자기한테서 이런 감정을 들게 하는 주현을 그냥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그를 잘 대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만큼 주현이 자기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보통 언니들이었으면 그 방식이 달랐겠지만 서현은 주현이 자신 때문에 곤란하도록 만들었다. 자신을 향한 관심을 갖게 하는 동시에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책임감을 부여한 것에 대한 소소한 보복 같은 것이었다.

자신과 파혼한 도진에게 반지를 갖다 주겠다고 생각한 것을 남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었다. 자기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께 제작했던 반지였고, 그것이 자신에게 둘 다 있는데 둘이 함께 만든 반지를 자신 혼자 처리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주현이 난감해 했다. 황당해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도 황당하다고 생각하겠구나, 라고 주현의 반응을 보고 알았다. 오랜만에 만난 주현을 곤란하게 한 것에 대한 괜한 쾌감이 생겼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오늘 스터디랑 알바가 있어서 바쁘다는 주현의 말이 신경 쓰였다. 그림 그리는 애가 무슨 스터디를 해야 하는 걸까, 자기는 유학 가기 전에 유학 준비를 위한 스터디 정도만 했었는데 얘는 뭐가 필요한 걸까. 그리고 알바는 필요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미술은 계속 돈이 많이 드니까. 서현은 오늘 주현을 데리고 다니면서 궁금한 걸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현은 주현과 택시를 타고 도진의 집까지 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지냈냐, 학교는 어떠냐, 이제 4학년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할 거냐 등 많은 말들을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했을 텐데 가는 동안엔 하지 않았다. 지금 아니어도 물어볼 수 있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냥 언니로서, 자매로서 직감이었다. 서현은 주현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은 자기가 잘 아는 것처럼 느껴서 스스로 우스웠다. 나는 그 사람을 잘 알고 있어, 라고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부모조차 자식을 잘 모르는데. 서현은 부모만큼 자식을 잘 모르는 존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못할 거 같은데, 안 될 거 같은데 부모님은 할 수 있다고 한 적이 많았다. 물론 그것이 응원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고 격려라는 것을 알았지만 때론 그 말이 그걸 해 주는 자식이 되어 달라는 말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 서현은 나는 잘 할 수 있어, 엄마가 잘 할 수 있다고 했어, 라는 생각은 부모님이 원하는 분야에서 하지 않았고 자기가 잘 하고 싶은 분야를 도전했을 때 생각했다. 부모님은 모를 것이다. 자신이 그 말을 다른 상황에서 생각하고 응원을 받아서 부모님이 원치 않는 길을 가는 데 사용했다는 것을. 이렇게 부모조차 자식을 잘 모르는데 사람이 사람을 잘 안다는 건 교만이고 거만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주현에 대해서는 마음이 좀 달랐다. 걔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부모님도 이런 마음인 걸까. 아무튼, 우리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함께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함께 또래 친구를 공유한 적도 없고 심지어 같이 산 시간도 별로 없는데,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을 날아와야 만날 수 있는 거리에서 살고 있는데도 잘 안다고 느꼈다. 이걸 동생한테 말하면 주현은 웃겠지, 어이가 없어서.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건 주현은 오늘 자신과 다닐 것이다. 자신이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주현은 자신을 따라올 것이다. 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기도 주현과 같이 있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에 서현이 적어 준 주소의 빌딩 앞으로 택시가 멈췄다. 택시에서 내리고 보니 꽤나 높은, 사실 정말 높은 오피스텔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피렌체의 건물들은 높지 않다. 결코 높지 않다. 건물 높이들이 다 고만고만하고 하늘을 가릴 정도의 큰 빌딩은 없다. 피렌체가 시골 같다고 느끼거나 그렇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사실 도시적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만 아무래도 유명한 관광지니까 시골이라고까지 말 한 적은 없었다. 아무튼 고층 빌딩들을 보자 하니 서현은 자기가 사는 도시가 시골스럽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그게 기분이 좋았다. 서울역에서도 역 하나에 진짜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는 모습이 감탄스러웠다. 한국은 편리했다. 기차를 타겠다는 목적이 아니어도 그곳에 가서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그게 이질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편리하고 재미난 일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차역에서 기차만 타는 것이 아니라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정말 다양한 식당에서 다양한 것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울역을 둘러봤었는데, 택시에서 내리니 이제는 하늘을 딱 막고 서 있는 빌딩이 앞에 들어섰고 여의도도 아닌 곳에, 사람들이 주거지로 사는 곳이라고 말하는 곳에 이런 빌딩들이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서현은 생각했다, 도진이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도진은 그녀와 생활 방식은 물론 달랐지만 사는 공간, 모습이 비슷했다.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였으니까. 직업도 다르고 생각도, 생활 방식도 달랐지만 사는 공간이 비슷해 다르지만 비슷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 순간, 이 빌딩을 보면서 서현의 마음에 내가 그 사람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상실감도 있었지만 자기가 서울까지 와서 동생을 끌고 이 사람을 찾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더 명확해 졌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자.”


서현은 주현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주현의 얇지만 가지런한 눈썹이 가운데로 모여졌다. 한 번에 팍- 모여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성격처럼 소심하게, 하지만 티는 나게 눈썹이 움직였다. 서현은 그 모습이 웃겼다. 계속 보고 싶었다. 나이가 서른이 지나도 동생을 대하는 것은 어릴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거길 왜 같이 가. 데려다 줬으면 됐지. 올라갔다 와. 나는 여기 있을 거야. 아니지. 이제 할 일 했으니까 갈 거야!”

“밥 먹고 가자니까?”

“아니, 무슨 밥이야.”


그 순간에 주현의 배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항상 식사를 거절할 때면 거절과는 맞지 않는 소리가 들리지. 서현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상대방이 그럴 때마다 우스웠다. 사람들이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자신이 마주했다는 생각에 뭔가 고소하고 가소롭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도 마주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이루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런데 주현의 행동은 그저 기분이 좋았다. 거봐, 너는 안 돼. 라는 누가 보면 자신에게도 가소롭다고 말할 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현은 주현에 대해서 이런 마음이나 생각이 들 때 다른 언니들도, 또는 다른 동생을 가진 사람들도 이런 생각이 들까? 물어보고 싶었다. 물어보길 포기한 적은 없었다. 단지 생각이 안 났을 뿐. 또는 그 생각을 기억하던 중에 물어볼 사람들을 못 만났을 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현이 자신을 따라올 수밖에 없는 한 마디가 생각났다. 주현은 분명히 이 말에 자신을 따라 건물로 들어갈 것이다.


“너 내가 만났던 사람 궁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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