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도시
두 자매가 자란 곳은 충청북도 충주, 공군 부대였다. 아버지는 전투기 조종사였다. 어머니는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는 부대에 있는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소소한 벌이를 하셨다. 주현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미술을 전공하면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사는 것이 신기했다. 아니, 아버지가 어머니와 사는 게 신기했다. 이 지점은 서현도 동의했다. 간만에 서현과 생각이 동일했다. 군부대에서는 아침부터 전투기 소리가 들렸다. 주말도 상관이 없었다. 어린이날이 다가오거나 국군의 날, 현충일, 6월 25일이 다가 올 때면 더 많은 전투기 소리가 들렸다. 주현이 서현에게 말할 때면 항상 전투기가 지나갔다. 실제로 그런 적이 몇 번이었는지 샌 적은 없지만 주현은 굳게 믿고 있었다. 자신이 언니한테 말할 때만 전투기가 지나갔다. 자신은 언니 말을 듣고 있는데 자신이 말 할 땐 언니가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충주가 아닌데, 인천인데, 전투기가 아니라 여객기인데, 심지어 여객기 소리가 들리는 곳도 아닌데 여전히 언니한테 말을 할 때면 전투기가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역을 가는 지하철 안에서 주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주현의 손에 붙들려 있는 서현의 캐리어는 회색이었다. 차콜에 가까운 회색이었다. 손잡이에는 파란색 계열의 스카프가 매여 있었다. 피부가 하얀 서현과 잘 어울리는 색이었지만 주현은 언니가 목에 그걸 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차가워질 거 같은 느낌에서였다. 스카프 옆에는 캐리어 네임택이 달려있었다. 한국어로 이서현, 한국 주소와 이탈리아 피렌체 주소가 쓰여 있었고, 뒤로 돌리니 이탈리아어로도 한국과 이탈리아 주소가 쓰여 있었다. 언니가 이탈리아 말을 당연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본 적이 없었다. 이태리어로 글씨가 쓰여 있는 걸 보니 뭔가 생소했다. 이태리어로 말하는 언니를 상상했다. 이태리어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잘 어울리는 거 같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언니가 이태리어로 말을 해서 내가 못 알아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녀의 의향을 모르고 도와줄 수 없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현의 손에 이끌려서, 서현에게 주도를 당해서 서울역을 향하고 있는 이 꼬락서니는 좋지 못했다. 나는 이 인간을 왜 따라가고 있는 거지? 따라가야만 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지? 벗어날 수는 있는 걸까? 벗어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데. 여러 가지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 한 가지 생각이었다. 언니를 따라가고 싶지 않지만 결국 따라가고 있었다.
주현은 결국 언니를 따라가는 걸 선택했었다. 과거에도 그랬다. 충주에 살 때야 다닐 수 있는 학교가 거기서 거기여서 같은 학교를 진학했다고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주현은 서현이 다닌 학교를 선택했다.) 주현은 자기 또래가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들 보다 언니가 좋아하던 가수들을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들을 좋아한다. 언니에게 여전히 그들을 좋아하냐고 물어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묻지 않는다. 언니가 이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자기도 그들을 좋아하지 않게 될 까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현이 부모님께 미술을 하겠다고, 서양화를 전공하겠다고 말할 때 그녀는 언니가 부모님께 그 말을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목표하던 대학도 자연스레 언니가 다니던 대학과 학과를 목표로 했다. 누가 시킨 적이 없었다. 언니만큼 해야 한다고 한 적도 없었고 언니를 따라가라고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주현은 언니처럼 하고 싶었다. 비교가 되기 때문에 최소한 언니만큼은 해야 해,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언니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현과 서현은 달랐고 성향도 생각도 목소리의 톤조차도, 말투와 말하는 방식, 말하는 양 조차도 달랐다. 주현은 신중했고 한 번 더 생각했고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않았고 굳이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는 형태의 일을 벌이지 않았다. 서현은 신중함이란 없어보였고 즉흥적으로 보였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거 같았고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에 서슴없었지만 동시에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추진력 있게 이루었고 남들 보다 앞서가는 거 같았다. 주현은 그런 서현의 모습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돌아보면 큼지막한 일들은 언니를 따라가고 있었다. 큼지막한 일들만은 아닐 수 있다. 언제는 한 번,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찍는데 언니한테 몇 가지 헤어스타일들을 캡처해서 보냈다. 어떤 게 좋을 거 같냐고. 주현은 서현이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과 다른 스타일을 고를 거라고 생각했고 역시나 언니는 다른 스타일을 골라줬다. 미용실에 가서 주현은 서현이 선택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주현은 자신의 이 이상한 심리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생각한다. 왜 이럴까. 보통 자매 사이였다면 동생이 언니를 좋아하고 따라가는 것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만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언니에 대해서 잘 몰랐고, 지금 서울역을 가는 지하철에서도 말 한 마디 자연스럽게 하지 않는 사이니 자연스러운 자매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또, 자연스러운 사이니까 자연스럽게 말 한 마디 안하고 갈 수 있기도 했다.) 아예 어릴 땐 뭘 몰라서 언니가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자기랑 다르게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 것 하는 것 같았고, 남들한테 기죽지 않았고, 때론 군부대에서 또래 애들이 자기를 괴롭힐 때 언니가 나타나면 괴롭히던 아이들은 도망을 갔다. 8살 많은 언니가 있다는 것은 그 시절 또래 사이에서 굉장히 큰 무기를 쥐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 때는 서현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주현도 머리가 크고, 중학교를 갈 때쯤 종종 집에 내려와 자기에게 떠드는 언니의 말과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동의 되지 않았다. 언니가 이탈리아로 가고 자신만 부모님 곁에 남아 있게 되었을 때, 군부대에 언니가 오는 일이 자주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주변 어른들은 주현에게 언니랑 달라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종종했다. 어른들은 서현이 괴짜라고 했고 이상하다고 했고 시집은 제대로 가겠냐고 했고 부모님이 언니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주현은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말에 동의했다. 물론 그 말을 들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일리는 있다고 생각했고 충동적이고 막무가내인 서현이 자기도 힘들 때가 점점 많았다. 이런 언니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어릴 때부터 형성 된 습관과 같은 것일까?
지금 이 순간도 너무나 괴짜 같고 이상하다. 파혼한 전 약혼자에게 약혼반지를 돌려주겠다고 서울로 갑자기 날아오다니, 심지어 이탈리아에서! 그럼 그 남자는 원래 한국에 살았던 건가? 언니랑 헤어지고 한국으로 온 건가? 약혼반지를 원래 이런 식으로 처리하나? 아니, 그건 둘 째 치고 헤어진 사람 얼굴을 다시 보겠다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다고? 언니가 그 사람에게 미련이 있는 걸까? 하지만 서현의 모습, 표정, 제스처는 결코 미련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 차인 건 언니 쪽이었겠지. 그러면 죽이려고, 앙갚음을 하려고 서울로 날아온 건가? 수많은 생각들이 주현의 머릿속을 지나갔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 공간, 이 자리, 이 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결론은 괴상하고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서현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주현은 생각했다. 벗어나고 빨리 이 사람 사이에서 해방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오늘도 이 사람을 따라다니게 된다면 내 동기가 무엇인지 확인을 해야겠다고.
서울역에 도착하고 역에 있는 물품보관함 제일 큰 곳에 서현의 캐리어를 넣었다. 주현은 자신의 카드로 그것을 결제했다. 언니가 시킨 건 아니었고 서현이 한국에서 쓸만한 제대로 된 카드를 가지고 왔을까 하는 마음에 묻지 않고 자기가 결제했다. 그리고 한 번에 정산 받아야지, 생각했다가 아니야, 여기서 끝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캐리어를 물품보관함에 넣고 돌아봤을 때 서현은 생각 보다 먼 거리에 있었다. ‘아니 자기 가방 챙겨주고 있는 데 뭐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서현의 모습을 관찰했다. 서울역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이 꼭 어린 아이 같았다.
“서울, 역시 좋아.”
서현이 말이 잘 들리진 않았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주현은 피렌체에 가 본 적은 없지만 당연히 피렌체가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서울이 좋다니. 역시나 이해할 수 없었다.
“언니!”
주현은 서현을 향해 외쳤지만 서현은 아예 못 들은 사람인마냥 자기가 보고 있는 풍경에서 돌아볼 생각이 없어보였다.
“언니! 이서현 언니!”
서현이 돌아봤다. 두 사람의 거리 사이에서 서울역의 수많은 인파가 내는 소리가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서현은 주현을 잠시 바라보더니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주현에게로 다가왔다. 주현은 결심했다. 여기까지야. 오늘은 여기까지여야만 해.
“보관함 돈은 내가 지불했어. 그리고 이 길로 나가면 택시들 줄 서있을 거야. 하나 잡아서 언니 원하는 주소로 가달라고 해. 카드 되는 거 없으면 일단 내 꺼 빌려줄게. 나중에 한 번에 보내주고.”
“너 지금 가려고?”
“서울역까지 데려다 달라며. 그리고 곧 학교 가야해. 아까도 말했지만 나 오늘 스터디도 있고 저녁에 알바도 있어.”
“그 사람 집까지만 데려다 줘. 한국에 거의10년 만에 왔는데 내가 제대로 다니기나 하겠니. 그리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밥이라도 먹고 가. 그 사람 집 가서 반지만 주고 돌아올 거야.”
주현은 대화가 길어질수록 불안했다. 대화하면 할수록 주현의 마음에 확신이 하나 올라오기 시작했다. 언니는 오늘 나를 하루 종일 데리고 다닐 생각으로 왔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때까지 그녀는 자신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즉, 지금 이 순간을 빨리 해결하고 빠져나가야 한다.
서현이 귀찮아서 자신이 이러는 걸까? 아니, 귀찮은 건 아니었다. 뭐, 귀찮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와중에 있지만 귀찮은 것이 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언니랑 다니면서 자신이 겪게 될 곤란한 상황들이 구체적으로 상상이 되지 않지만(심지어 어떻게 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곤란해 질 것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순간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파혼한 사람한테 반지를 왜 돌려줘? 그 사람을 왜 만나? 진짜 이상해. 그리고 내가 무슨 언니 시종도 아니고-“
주현은 서현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속마음에 있던 말들을 내뱉었다. 언니 진짜 이상하다는 말도. 내가 언니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나? 자주 보지를 않아서,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아서, 속으로 언니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면전에다 대고 말한 건 처음이었나? 말을 뱉어놓고 마음이 내려앉았다. 언니가 살면서 이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나한테까지 듣게 한 거 같아서 괜히, 정말 괜히 마음이 좀 찝찝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들을 내뱉으며 서현을 봤을 때 주현의 눈에 서현의 얼굴이 정면으로 들어왔다. 큰 눈으로 얘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괜히 언니 얼굴을 정면으로 봤다. 이기지도 못할 것. 그래서 슬쩍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서현의 흰색 구두가 보였다. 저 신발을 신고 오늘 하루 종일 돌아다니려는 건가? 차 타고 다니면 걸을 일이 별로 없을 수도 있지만, 이미 서울역까지 오면서도 많이 걸었고, 택시 타러 가면서도 또 걸을 거고, 아니 무슨 생각으로 사람 찾으러 돌아다니려고 왔다는 사람이 저런 신발을 신고 왔을까. 서현의 신발을 보고 이후에 그녀의 상태를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흰색 구두, 검정색 작은 핸드백, 그 핸드백은 명품인 것처럼 보였다. 흘러내리는 긴 웨이브.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심지어 얘 왜 이렇게 나한테 땍땍거리는 걸까 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큰 눈까지. 사람을 찾는데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왔을까. 아니면 파혼한 사람을 마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하고 온 걸까. 근데 꼭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찾았어야 했나. 하루라도 쉬지. 지금 이 인간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주현의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점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생각들 때문에 아득해 지는 게 아니라 서현 때문에 아득해지는 거 아닐까. 아무튼, 자신이 이상하다고 말해버린 괜한 미안함과 이런 복장으로 서울을 돌아다닐 언니에 대한 괜한 신경쓰임 때문에 주현은 하던 말을 멈춰야만 했다.
서현의 눈은 ‘그래서 앞으로 너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물어보는 것만 같았다. 끌려가는 거 아니야, 내가 내 발로 가는 거야.
“문자로 보내, 그 사람 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