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도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큰 키에 검정 얇은 자켓을 입은 서현이 앞에 서있었다. 주현은 말없이 서현을 바라봤다. 사실 이 순간 내가 무슨 표정일까 궁금했다. 주현의 큰 눈은 놀란 토끼 눈처럼 더 커졌다. 서현은 피식 웃더니 캐리어를 끌고 도착장 가이드라인 밖에 서있는 주현에게로 걸어왔다. 서현이 걸을 때마다 또각또각 하는 구두 소리가 들렸다.
서현은 주현 보다 키가 컸다. 동생이 언니 보다 크는 경우도 많은데 서현은 주현보다 훨씬 컸다. 주현이 작은 것일 수도 있지만 주현은 스스로 보통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서현은 구두를 신으면 170cm는 그냥 넘어갔다. 서현도 주현처럼 눈이 컸다. 이미지도 외모도 크게 닮은 구석이 없는 자매였는데 큰 눈은 똑 닮았다. 서현이 좀 더 눈꼬리가 올라간 것처럼 보였지만. 주현은 자기보다 언니가 훨씬 예쁘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지금 이 순간도 그런 생각을 했다. 여전히, 아니 더 많이 예뻐졌구나. 목걸이도, 귀걸이도 하지 않았고 가벼운 화장만 했을 뿐인데 얼굴이 화려해 보였다. 웨이브진 긴 머리는 화려함을 더 해주는 거 같았다. 12시간 비행하고 방금 내린 사람 모습이 맞을까? 주현은 생각했다. 뭔가 초라해지는 느낌에 에코백 끈을 꼭 쥐었다.
“너 어른 같다. 나 이탈리아 갈 땐 교복 입은 꼬마였는데?”
첫 마디를 뗀 건 서현이었다. 항상 서현이 먼저였다. 눈을 마주치는 것도, 말을 거는 것도,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도. 주현은 바로 맞받아 쳤다.
“어른 같은 게 아니라 어른이야. 내 나이가 몇 인데 진짜…”
서현이 피식 웃었다.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길이 기분이 썩 나빴다. 주현은 이 인간을 어디로 데려다 줘야 하는 거지? 생각했다. 서울역까지만 데려다 주면 되겠지? 왜 왔는지 물어봐야 하나? 궁금하긴 했지만 괜히 물어봤다가 언니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은 학교에서 스터디도 있고, 저녁에는 알바도 있었다. 수업이라도 있었으면 안 나오겠다고 했을 텐데 아쉽게 오늘은 공강이었다. 공강에 새벽부터 여기 나와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언니 일정에 엮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이 언니가 10년 만에 한국을, 서울을 갑자기 방문한 이유가 궁금해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언니를 데리고 가겠다고 한 것일 수도 있겠다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피곤함에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나는 언제쯤 이 사람한테서 편안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주현이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져 있을 때, 서현은 핸드폰에서 뭔가를 찾더니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주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주현에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주현이 핸드폰을 보니, 웬 주소가 쓰여 있었다.
“여기부터 가야 해.”
“여기가 뭔데?”
“윤도진 집”
“윤도진? 그 사람이 누군데?”
“나랑 파혼한 사람”
주현은 순간 잘 못 들은 건가 싶었다. 파혼한 사람 집이라고? 그러고 보니 서현이 작년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 연락을 아예 안하고 지낸 건 아니었다. 생일, 크리스마스, 새해 첫날에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내년에는 결혼할 사람이랑 서울을 한 번 가겠다고 했던 말을 들었던 게 생각이 났다. 근데 파혼을 했다고? 헤어진 건가? 근데 지금 그 사람 집을 가겠다고 말하는 건가? 왜? ...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주현의 눈이 황당함과 함께 서현에게로 명확하게 향했다.
“파혼한 사람이라고? 그 사람 집을 왜 가?”
“약혼반지 돌려주려고.”
공항 화장실에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던 순간이 후회가 되었다. 역시. 주현의 얼굴은 황당함으로 일그러졌다. 그런 주현의 얼굴을 본 건지 만 건지 서현의 얼굴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주현을 바라봤다.
“그런 건 돌려줘야지.”
그리고는 자신의 캐리어를 주현 앞으로 가지고 온다. 주현에게 캐리어를 밀자 주현은 캐리어를 본다.
“그리고 이거 서울역까지만 좀 끌어줘. 오늘 하루 잘 부탁해.”
서현을 기지개를 피면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주현은 어이가 없다. 언니의 캐리어를 보면서 이 순간들을 빠르게 정리해 본다. 언니는 파혼자를 찾으러 서울에 온 거고, 지금 나는 그 일에 휘말린 것이며, 심지어 캐리어까지 끌라고 했다. 언니는 왜 항상 나한테 시키는 걸까. 주현은 휙 돌아서 또각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서현에게 소리친다.
“나 오늘 스터디도 있고 알바도 있어!”
서현은 신경 쓰지 않고 걸어간다. 그러더니 “빨리와!” 라고 외친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주현. 뭔가 잘 못 되었지만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겠다. 주현은 언니의 캐리어를 쳐다본다. 그리고 자기 에코백을 꼭 쥔다. 주현이 꼭 쥔 에코백에는 주황색의 말 키링이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