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피렌체

자매의 도시

by Yun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건 그 전날 오후였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연락이었다. 평소에 크게 관심을 주려고 하지 않던 엄마가,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별로 상관하지 않는 엄마처럼 보이고 싶어 관심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던 엄마가 일정을 꼬치꼬치 캐물을 때부터 불안했다. 불안은 현실이 되었고, 졸업작품이다, 공모전이다 할 거 없이 정신없는 와중에 새벽 5시에 일어나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모든 불안이 들어맞춰지던 중에 의아했던 한 가지는 엄마가 언니를 걱정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언니를 걱정하지 않았다. 아니, 걱정할 수 없었다. 언니를 걱정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고, 언니는 결국 걱정할 일들을 만들어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걱정이었다. 엄마의 진짜 걱정 때문에 주현은 어쩔 수 없이 새벽 5시에 서현을 데리러 나가야 했다.


주현의 방은 반짝거렸다. 유리컵, 투명텀블러, 수국이 담긴 플라워문진, 그리고 창문에 달린 자개로 만든 썬캐처. 노란색, 연두색 분위기에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많이 보였지만 정리는 가지런했다. 혼자 살게 된 지는 5년째였다.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다. 1,2학년 때는 기숙사에서 살았지만 미대생이라 밤늦게까지 스탠드 켜놓고 과제할 때도 많았고, 과제를 기숙사로 들고 오면 그 크기부터 스케일이 남달랐다. 덕분에 룸메이트들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 말을 하면서 주현은 스스로 생각했다. 밤을 새서 과제를 하며 육체며 정신이며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하루하루 느끼고 있는 나 자신에게 제일 미안한데 남한테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상황들을 반복하다니. 그 생각이 든 바로 다음 날, 주현은 충주에 있는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집을 구해야 한다고 했다. 기숙사에서 원룸으로 이사하던 날, 엄마는 언니처럼 서울로 대학 가더니, 언니처럼 혼자 살고 싶어진 거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잊을만하면 ‘언니처럼’이라는 말을 붙이면서 질문을 했다. 왜 항상 ‘언니처럼’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나의 행동에 대한 근거를 물어보는 걸까. 내가 언니처럼 생각해서 그 선택이나 행동을 하길 바라서였을까, 아니면 언니처럼은 아니길 바라서였을까. 주현은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막상 대답을 들으면 두려움이 현실이 될 거 같아서 묻지 않았다. ‘언니처럼’이라면 언니처럼 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언니처럼’이 아니라면 언니가 이루지 않은 다른 것을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까 봐였다. 언니처럼 혼자 살고 싶어진 거냐고 물어본 엄마의 질문에 주현은 ‘작업을 하기엔 기숙사가 좁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말했다. ‘네 언니도 그래서 혼자 사는 걸까?’라고.

언니를 따라서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간 건 맞았다. 미술을 한 것도 언니를 따라서 한 것이었다. 다행이 적성에 맞았다. 언니가 선택한 서양화는 언니 보다는 자신에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 생각을 했을 때 서현은 이미 서양화를 그만두고 유학을 가 있는 상태였다. 대학에 가서 서양화를 전공하던 서현은 2년 정도 대학을 다니더니 갑자기 충주에 내려와서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충동적인 서현을 참아내지 못 했지만 그렇다고 통제하지도 못했다. 안 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던 아버지는 계획을 물었다. 서현은 미술품 복원사가 되겠다고 했고, 이탈리아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으며, 1년 동안 유학 준비를 할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너가 말한 학교에 붙으면 유학을 보내주겠다고 했고 1년 동안 유학을 준비한 서현은 단박에 붙어서 이탈리아로 가버렸다. 주현이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렇게 이탈리아에 가서 복원사로 살고 있는 서현이 갑자기 한국에 들어왔다. 정말 갑자기.


서현의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은 아침 8시였다. 주현의 원룸에서 공항까지는 공항버스로 1시간 정도 걸렸지만 너무 비쌌다. 돌아보면 대신해서 나를 보낸 엄마한테 달라고 하거나 갑자기 한국에 온 언니한테 청구했어도 될 일이었는데 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공항에 가는 교통비를 청구할 만한 돈이라고까지 생각이 들진 않았으니까. 결국 서울역으로 가서 거기서 공항 철도를 타는 방법을 택했다. 무려 1시간 40분이 걸렸다. 인천공항1터미널역에서 내린 후 공항 내 도착장까지는 꽤나 걸어야 할 것이다. 주현은 집에서 공항까지 2시간 정도로 잡았다.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는데 적어도 40분은 걸리니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5시에 일어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원래 새벽형 인간이라 며칠을 연달아 밤새 작업을 할 때 외에는 새벽에 일어나는 게 어려웠던 적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언니 때문에 이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니는 나 때문에 새벽에 일어난 적이 있었을까?’ 주현은 생각했다. 오직 자기 밖에 없는 인간인데, 그럴 일은 평생 없었을 것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 때였다. 해가 뜨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5시에 일어났을 때 밖이 생각 보다 어둑어둑했다. 청바지에 노란색 셔츠를 입었다. 꽤나 긴 머리는 가지런히 묶었고 크림색 에코백에 지갑과 핸드폰을 넣었다. 지갑과 핸드폰이 있던 주현의 책상엔 많은 것들이 어지러이 놓여있었다. 방의 모든 곳이 가지런했지만 책상은 조금 예외였다. 노트북 주변엔 공모전 준비로 여러 가지 모아두었던 자료들이 놓여있었고, 토익책들도 있었다. 그리고 조각칼과 키링을 만들 때 필요한 부품들이 놓여있었다. 주현은 자신의 책상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출발해야 했다. 언니를 데리고 간다고 했으니, 간다고 해놓고 늦기는 죽어도 싫었다. 주현은 지갑 옆에 놓여있던 포장이 된 말키링을 집어 들고나왔다. 건물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주현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말키링을 쳐다보았다. 붉은색 나무로 만든 키링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까지 키링을 바라보던 주현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서야 키링을 가방 안에 넣었다.

해가 뜨니 날이 순식간에 밝아오기 시작했다. 지하철 넘어 한강 물이 반짝거렸다. 날씨가 약간 흐린지 반짝이는 한강 위로 안개가 낀 느낌이 들었다. 주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날씨가 별로 좋지 않으면 좋겠다. 비가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우산을 들고 오진 않았지만 편의점 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 우산을 쓰고 있으면 언니와 가까이 서 있을 필요는 없겠지. 그나마 좀 거리를 둘 수 있겠지. 주현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서현과 좀 더 거리를 둘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에 꽂혀 있었다. 서현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색할 뿐이야-‘라고 주현은 생각했다. 자신 보다 8살이 많은 언니와는 시간을 많이 보낸 적이 없었다. 주현의 기억에 언니 서현은 항상 자신보다 훨씬 컸고, 주현의 대부분 기억에는 서현은 항상 교복을 입고 있었다. 언니가 있는 친구들은 옷을 물려 입는다고 하는데 주현이 봤던 서현의 옷은 항상 교복이었고, 언니와 같은 학교들을 갔지만 교복을 물려 입기엔 시간 차이가 너무나 컸다. 가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나한테 옷을 물려줬다면 어떤 옷을 물려주고 싶었을까? 물론 옷을 물려주게 되는 과정에 엄마가 개입되어 있고, 엄마의 스타일이 개입되지만, 그래도 서현이 자기에게 옷을 물려준다면 어떤 걸 물려주고 싶었을까. 나는 언니한테 물려받은 어떤 옷을 입게 되었을까. 지금이라도 언니한테 안 입는 옷을 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리고 사실 보통 자매들 사이에서는 그런 일이 흔했지만 주현은 자신과 언니는 그럴 순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나이 차이가 많이 났고, 어색했고, 그리고 서로 살고 있는 곳이 너무나 멀었다. 서울과 피렌체였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침 7시 30분이었다. 밀라노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8시에 도착한다고 전광판에 떠있었다. 도착장에 도착하니 7시50분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짐을 찾고 나오는 시간이 꽤 걸리니 화장실을 다녀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주현은 자신의 상태를 거울로 점검하고 싶었다. 사실, 오랜만에 만나는 언니 앞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가 너무나 신경이 쓰였다.

무심한 척, 관심 없는 척, 상관하고 싶지 않은 척 그런 척을 하면서 언니를 대했지만, 사실 언니한테 잘 보이고 싶었다. 언니가 나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아니 사실 이 생각은 자주 했다. 언니가 있는 친구들한테 이 질문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친구들은 분명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굳이? 언니한테?’. 다시 생각해 보면 언니한테 잘 보이고 싶은 애들도 분명 있을 텐데, 어색하다고 말하는 언니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자기 모습이 스스로 뭔가 별로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이유는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가도 서현을 막상 마주하면 그 마음이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서현은 주현과 너무나 달랐다. 아니, 주현은 보통 사람들과 그녀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할 때면 주현은 생각했다. ‘내가 저런 인간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한다니.’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순간은 언니에게 보일 내 모습이 어떨지 확인하기 위해 화장실을 들어가야만 했다. 주현은 보통 키에 갸름한 얼굴형에 동그란 눈을 가졌다. 쌍꺼풀이 진했다. 친구들은 주현의 큰 눈을 보고 비 맞은 강아지 같은 눈이라고 했다. 화장을 한 듯 안 한 듯 했다. 예쁘게 보였으면 했지만 그렇다고 언니 때문에 꾸민 것처럼 보이고 싶진 않았다. 거울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언니를 대할 때면 왜 더 복잡지는 걸까.


8시가 넘었고, 도착장에는 화장실을 다녀오기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장 자동문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한두 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주현의 주변에서 반가워하는 소리, 서로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하고, 환호하고, 기뻐하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언니를 보면 무슨 소리를 내야 하는 거지?’ 주현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서 또 생각했다. ‘아니면 나는 어떤 소리가 나올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 주변 사람들이 자기 짝을 찾아 떠나듯 한 명, 한 명, 한 무리, 두 무리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현은 괜히 초조한 마음에 도착장 문을 봤다가, 핸드폰을 봤다가 했다. 주현이 핸드폰을 봤다. 엄마한테라도 혹시 문자가 오진 않았나. 그 순간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또 들리고, 이어서 익숙한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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