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지난번에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고 산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현실적으로 생각해 본다.
지난번에 결혼은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사는 것이라 했다. 두 사람의 다른 개체가 만나서 사랑하고 협력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고 상대방을 알아야 잘 살 수 있다. 서로를 모르면 이해가 어렵고 이해가 안 되면 오해를 하거나 무심해져서 서로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결국 서로에 대해 냉담해지거나 갈등이 심화되어 함께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결혼을 하고 둘이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에게 맞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일방적으로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적합한 상대를 찾아서 상호 선택하는 것이다.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는 한쪽에서는 극구 싫다는 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구애를 해서 기어코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실적인 결혼은 서로를 비교해 보고 그 주변도 알아보고 꼼꼼하게 챙겨보며 따져보고 결정을 하게 된다. 사랑이란 말로 여러 조건이나 환경의 차이와 기울어짐을 무마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사람, 잘 어울리는 사람을 배우자로 삼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흔히들 '끼리끼리'라고 한다. 결혼을 신분 상승이나 계층 이동의 기회로 생각하는 것은 배우자를 이용하겠다는 계산, 아니 상업적인(?) 저의가 심층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요즘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삶을 좀 더 편하게, 좀 더 여유롭게,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능력 있는 배우자를 찾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기보다 경제력이 더 있고, 배운 것도 더 많고, 더 좋은 외모를 가지고 있고, 성격도 더 좋고, 더 건강하고 등등, 배우자가 자기보다 더 나은 조건과 환경을 갖추고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자기보다 좀 더 나은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동물의 짝짓기에서도 좀도 우월한 유전자를 받아서 후손을 생산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한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멋진 삶을 위해 복잡하고 까다로운 배우자 선택 기준을 세우게 된다.
자기가 원하는 배우자감을 만나기 위해, 여자는 주로 자신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거나 어떤 특별한 특성이나 매력을 무기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한다. 남자는 자기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마치 공주처럼 대우하며 용감하고 정의로운 기사처럼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행동을 하며 남성미를 드러내기도 하고, 그럴 처지가 안 되면 여성의 모성본능에 호소하며 여자의 마음을 열고자 한다.
남자나 여자나 서로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결정적인 구애 방법은 아마도 “사랑한다!”는 말일 것이다. 정말로 그 배우자 그 자체, 그 사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 흔한 말로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좋고 자기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지는 아마도 본인 당사자만이 잘 알 것이다. 사람마다 누군가를 사랑하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다르고 그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조건보다도 서로에 대한 전인격적인 끌림으로 시작되는 깊은 이해와 배려와 책임일 것이다.
'사랑한다'라고 말은 하면서 어떤 부분(특성)만 사랑하고 다른 어떤 부분(특성)은 사랑은커녕 참을 수 없을 정도라면 결코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취향을 만족시키는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적 끌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말에 포함된 이해, 배려, 책임이라는 실천적 행태 즉,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그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내고, 수고를 하고, 기꺼이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주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사랑한다!’는 말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아래의 가족 그림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족은 닮아있다. 남남이 만났는데도 대부분의 부부는 닮아있다. 서로 닮아있기 때문에 마음이 끌려서 결혼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아서 닮아간 것일 수도 있다. 부부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은 당연히 그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다. 가족들은 외모만 닮는 것은 아니다. 한 지붕아래 한 솥밥을 먹고사는 사람들은 외모뿐 아니라 습관과 태도, 언어 심지어 철학이나 인생관도 거의 비슷하다. 부모나 형제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거의 만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생김새뿐 아니라 행동 양식까지 닮아 있는 경우가 많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그 자체로 가족 구성원의 동질화를 만들어내는 용광로와 같다. 그렇게 동질화가 되지 못하면 함께 살아가지 못한다. 가족은 정말로 무서울 정도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다. 그러니 가족을 구성하는 기초 단위인 부부가 정말로 잘 만나야 한다. 결혼하는 남녀 둘이 어떤 사람이냐가 그 가족의 특성과 운명을 결정한다.
아래의 그림은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을 그린 고야의 작품들이다.
※ 주요 인물 : 왼쪽에서 두 번째의 푸른 옷을 입고 있는 남자는 아버지와 권력투쟁을 벌이게 될 페르디난도 7세(작품 참고), 그의 옆에 뒤를 돌아보는 여인은 그의 약혼녀로 알려져 있다. 오른 팔로 공주의 어깨를 감싸고 있고, 왼손으로 왕자의 손을 잡고 있는 여인은 결혼 초기부터 정부를 두고 살아가는 왕비 마리아 루이사, 그 왕자 왼쪽에 검은색 제복에 칼을 차고 서있는 남자가 카를로스 4세다. 이 그림에는 모두 13명의 가족들과 그림의 왼쪽 뒤 부분에 검은색 액자 속에 그려진 고야 자신의 모습이 있다. 고야가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그림에 그려 넣은 것은 그가 존경하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따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는 1780년대 말에 초상화가로 왕족이나 귀족 등 상류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고야는 르네상스 이후의 전통적인 초상화에서 벗어나 인물의 특성이나 고야 자신의 느낌을 넣어서 표현하는 최초의 근대적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초상화를 의뢰한 왕이나 귀족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인물을 미화시키지 않고 인물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세부 묘사를 생략하기도 하고 중요한 부분을 강조 왜곡하기도 했다. 이 작품 <카를로스의 4세>도 그런 작품 중의 하나다. 이 가족화의 배경을 보면, 이들 가족이 모여서 서 있는 곳이 궁정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지만 이들의 옷차림을 통해서 왕족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가족화를 그리기 위해 멋지게 자세를 취하지 않고 무엇인가 급하게, 아니면 억지로 불러 모아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어디에도 가족 간의 훈훈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가족 모임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을 때에도 이런 표정이나 이런 자세는 취하지 않는다. 이 작품 속에 있는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은 닮아 있다는 것 외에 한가족에서 풍겨 나는 정겨운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에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면 초상화의 대가인 고야가 그런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를 표현해 내재 못했을 리 없다. 고야는 아마도 카를로스 4세의 가족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런 사실이 만들어내는 가족 간의 분위기를 이 작품에 담아낸 것이다. 13명의 등장인물의 얼굴표정이 하나같이 어색하다. 무엇인가에 놀라고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듯 한 표정들이다.
사실 카를로스 4세는 이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하얀 돼지’처럼 못생긴 사람은 아니었다. 아래의 그의 초상화를 보면 그가 평균 이상의 잘 생긴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좋은 혈통을 물려받아 체격이 좋고 강인해서 젊은 시절에는 덩치가 좋은 남자들과 레슬링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지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했고 둔했지만 정직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카를로스 4세 아버지 3세는 “카를로스, 넌 바보다!” “바보 같은 카를로스야!”라고 하며 답답해했다고 한다. 사촌 여동생 파르마 공녀 ‘마리아 루이사 드 팔마’와 결혼이 결정되었을 때도 생긴 것과는 다르게 여자에 대한 경험이 없다며 결혼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달리 생각하면, 카를로스 4세는 지적 능력이 좀 떨어지는 순수한 청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중앙에 서있는 교활하고 욕심이 많은 왕비 마리아 루이사 드 팔마는 어리석고 무능한 카를로스 4세를 휘어잡고, 하급 귀족 가문 출신 왕실 근위대의 마누엘 데 고도이(아래 그림 참고)를 정부로 삼아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고도이와 왕비와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졌지만 고도이는 왕의 무관심 속에서 왕비의 세력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해서 기어코 스페인 총리가 되어 국가 권력을 장악했다. 왕비와 고도이는 둘 다 완전히 부패했고 무능했기 때문에 급변하는 유럽 사회에 대처하지 못하고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다. 카를로스 4세는 강제 퇴위를 당하고 스페인은 프랑스 나폴레옹에 점령당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왕은 결국 국외로 망명을 떠나서 스페인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보이는 아들 페르디난도 7세는 아버지 카를로스 4세보다는 고도이를 더 닮은 것도 같다. 아래 초상화를 보면 약간 아니 많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3명의 초상화 비교 : 아래의 페르디난도 7세가 왼쪽의 아버지보다 오른쪽의 어머니의 정부인 고도이를 더 많이 닮아 있음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유전자분석으로 친자확인이 불가능하니, 부인이 낳은 아이는 그저 남편 자신의 자식으로 간주해야 했을 것이다.
카를로스 4세의 아버지는 유능한 통치자로 알려졌다. 그는 바보에 가까운 아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며느리감으로 명민한 조카를 선택했다. 계산에 오류가 있었다.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서로 선택을 잘해야 한다. 각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며 욕심을 부리면 카를로스 4세와 같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말을 가져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를로스 4세가 아내와 이혼을 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유지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에 해보기로 한다.)
결혼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물질적 가치뿐 아니라 인격적인 모든 것을 바탕으로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찾아서 함께 자녀를 낳아 기르며 죽을 때까지 같이 살자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 어떤 계약보다도 섬세하게 각자의 조건을 숨김없이 따져보고 서로가 원하는 것, 서로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 함께 살아야 할 중요한 가치나 이유를 분명하게 설정해야 하는 계약이다.
어떤 거래나 계약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해 보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방이 제시하는 가치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 교환이 정당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자기 자신이 가진 것은 높이 평가하고 타인이 가진 것은 낮게 평가하는 그런 심적인 불량 저울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고무줄처럼 대상에 따라 측정이 달라지는 불량 저울을 갖지 않기 위해서는 정직한 객관성을 함양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욕심에 기울어진 편향성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그 많은 지식과 경험은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매우 위험한 흉기가 될 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해치게 된다.
그래서 결혼을 할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우선 정확하게 자신을 판단하고 계산해 볼 필요가 있다. 정직한 눈으로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는 것이다. 자기의 부족한 부분과 자기의 만족한 부분, 단점과 장점은 물론, 성격과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가늠해 보아야 한다. 결혼과 가정을 경영하기 위한 현재의 자기에 대한 SWOT( 강점·약점·기회·위협을 분석하여 반영하는 경영 전략)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가능성이란 능력과는 다르다. 능력은 가능성을 갈고닦아서 확보한 실력이다. 가능성은 능력을 갖추고자 하는 의지를 말한다. 타고났거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 작동시키는 삶에의 의지다. 한 번 태어난 인생이니 제대로 잘 살아보겠다는 결심과 그 결심을 일상에 옮기며 실천하는 투지가 바로 가능성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나쁜 점을 변명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세계와 외적 ‧ 환경적 조건을 꼼꼼하게 속속들이 뒤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한 점, 못된 점, 나쁜 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의지의 강도가 가능성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 정직한 시각 객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는 정직이다. 가장 추한 것은 아마도 거짓이나 가식일 것이다. ‘정직’은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음’이라는 뜻이다. 정직은 마음의 문제다. 마음에 거짓이 없다면 꾸밈이나 가식이 없이 바르고 곧게 행동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투명하고 당당하다. 현재의 상황이 어떠하던지 간에. 몇 년 동안 구직활동을 하더라도, 오늘 당장 쓸 돈이 없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달할 수 없는 목표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진심이 환경에 의해 굴절, 왜곡되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자신이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자기 자신을 정직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자신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고 삶의 에너지를 생성시킬 수 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외부에서 조달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에 대한 핑곗거리를 찾는 것일 수 있다.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세상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하지 못하면 자기변명이나 자기 옹호 또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스스로는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거나 또는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단지 자기 자신만 알지 못할 뿐이다. 왜냐면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주관적으로 판단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객관적 관점으로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한 없이 너그럽고 타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 전체에 대해서 전혀 관심도 없고 어떤 것도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정직이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때때로 독이 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언제나 약이 된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정직할 수 없다. 늘 자기는 옳고 바르고 자기 생각은 지혜롭고 현명하여 모든 판단이 편향적이지 않다고 굳게 믿고 확신에 찬 언행을 하면서 살아간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착각에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자 나름대로 바람직한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그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고, 누군가를 간접적으로 판단하고 정죄할 수도 있다는 심도 있는 배려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나 살기도 바쁘다!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하며 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고, 지나친 자기 확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는 개인이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 분별없는 행동이 사회 전체 분위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배려는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실천으로 옮기기가 어렵다. 아무리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나 경험을 쌓아도 그것은 세상과 타인을 판단하고 비평하는 기준이 될 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습득한 지식과 경험은 자기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자기의 인성이나 능력을 가늠해 보고 자기의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지식과 경험이 많아도 자기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을 다 알고도 자기 자신 하나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면 정말로 무식한 사람이거나 가장 독선적인 사람일 것이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지 못하는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지옥이다. 그러나 자기를 잘 알고 있는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은 가정이라는 천국을 가꾸는 보람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기 전에 자신을 알아가자는 말을 이렇게 길게 했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고 천국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일정한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며 하나의 가정을 구성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족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가족 상호 간의 긴밀하고 중요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결혼은 그저 한 지붕아래 한 솥밥을 먹으며 동거하는 것과는 다르다. 단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성적인 필요를 채우며 남녀 각자 혼자가 사는 것은 결혼이라 할 수 없다. 결혼은 공간과 시간뿐 아니라 삶을 공유하고 가족단위의 꿈을 꾸고 그 꿈을 공유하고 이루어 가며 그 속에서 자녀를 두고 긴밀한 유대와 믿음으로 서로를 돌보고 아끼고 배려하며 삶을 풍요롭게 영위하고자 하는 결정이다.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결혼이란 그 누군가와 삶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그런 삶에 적합한지 철저하게 파악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를 제대로 알면, 자기와 함께 할 배우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이 결혼을 하고 다른 가족들과 관계를 맺고 자녀를 두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서 살기에 적합한지 아닌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언젠가 어떤 분이 자기 딸이 돈 많은 집에 시집을 갔다고 자랑을 했다. 다른 분은 사위가 갑자기 실직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위를 위로하기 위해 잠깐 방문했다고 한다. 딸이 문을 열어줘서 들어가 보니 10대 손자 소녀 그리고 딸 부부 4명이 전기장판 위에 담요를 덮고 옹기종기 기대고 앉아서 군밤을 까먹으며 TV를 보면서 깔깔거리고 있더란다. 단란한 분위기를 깨는 것 같아서 들고 간 반찬거리를 놓고 바로 나왔다고 한다. “얘네 식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 살아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가족을 만드는 결혼은 좀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을 목적으로 한다. 혼자 사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더 깊고 더 큰 만족을 경험하기 위해서 결혼을 한다. 그래서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에게 적합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나의 일방적인 필요와 요구가 아니라 상대방의 필요와 요구를 채워주며 서로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자기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려는 모든 남녀는 공대를 받아야 하는 왕자도 공주도 아니다. 결혼을 위해 배필을 찾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바로 아는 것이 나에게 최적의 배필을 만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배우자가 당신의 인생을 책임질 것이라고 생각지 말라.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가족이든 사회이든 간에 우리는 우리가 노력한 것만큼 만으로 사는 것이다.
결혼은 분명 “1 + 1 = 3이나 4가 되는 연합이다!” 그냥 하는 주장이 아니라 결혼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면 이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두 개가 아니라 둘 이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시너지(synergy) 효과 때문이다. 시너지라는 말은 “함께 일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둘 또는 그 이상이 뭉쳐서 더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결혼은 분명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배가하는 시너지효과가 있다. 개인의 삶의 상승작용을 가져오는 것은 배우자가 가져온 재산, 능력, 도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결혼의 시너지는 ‘연합’에 있다.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연합’ 때문이다. 이런 시너지가 계속적인 피드백(feedback)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심화시키고 가치를 확대한다. 그래서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의 의미 가치를 확장하기 위한 가장 흔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코 편안하게 쉽게 이루어지는 결과는 아니다. 연합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사람만이 가족이라는 삶의 지고의 가치를 맛보게 된다.
결혼을 통해서 많은 이득을 볼 생각을 말아야 한다. 결혼은 분명 하나하나, 둘이 모여 셋이나 넷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삶의 보람이나 행복일 수 있다. 그러나 결혼을 통해서 안정된 생활, 따뜻하고 행복한 이상적인 가정, 자신들보다 훌륭한 자녀, 잘 먹고 잘 사는 것 등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결혼에 대한 기대는 결혼 이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야 할 목표점일 뿐이다. 결혼이 주는 단 하나의 유익은 아마도 각자 인생의 시너지효과를 높일 수 있는 동반자를 만든다는 것일 것이다. 이 동반자가 자기를 더 외롭게 할 수도 있고, 괴롭힐 수도 있고, 심지어 자신을 미워할 수도 있고, 배반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은 결혼 이후에 평생 동안 계속되는 전쟁 같은 가정생활에서 해결할 문제인 것이다.
만약에 자기 자신에게 적합한 배우자를 만났다면, 자기의 배우자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믿으려 하기보다는 배우자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기꺼이 속아주겠노라 결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배우자의 피치 못할 고난과 불행을 기꺼이 함께 할 수 있어야 그 고난과 불행의 단 열매를 같이 맛볼 수 있다. 종교를 갖는 것처럼 마음으로 결정하고 살아보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험이다! 인생에서 가장 멋진 모험이 바로 결혼이다. 이 모험이 귀찮고 두렵다면 그 모험이 주는 황홀하고 행복하고 뿌듯한 경험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 떠나는 배낭여행을 해본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인생이라는 여행에 동반자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의견 차이로 싸우고 다른 길로 가기도 하고, 완전히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울고 웃으며 하는 긴 여정의 오지 탐험, 혼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오지 탐험이다. 자기를 잘 파악하고 준비하는 것이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으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인생을 정직하고 당당하게 지혜롭게 살아가며 그 속에서 자기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한다면 정직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자기에게 적합한 배우자를 찾아야 한다. 어떤 인간관계이든 간에 당신 보다 좀 덜 가진 사람, 좀 덜 똑똑한 사람, 좀 덜 잘난 사람, 좀 약한 사람 등, 나 자신보다 조금 부족한 사람에 대해 너그럽기를 바란다.
절대 고독을 즐기며 혼자서 겪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하며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혼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결코 다채로운 삶의 경험을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과의 갈등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갈등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이 우주에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에서 서서 나와 함께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절대 고독을 매 순간마다 경험하며 살 수도 있다. 이런 독신의 고독을 즐기며 살 수 있는지는 자신을 바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난 후에야 알 수 있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불행으로 끌고 들어가고 카를로스 4세의 삶이 비참하게 끝나게 한 것은 카를로스 4세의 부족한 지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망 덩어리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다. 자자손손 권력을 물려주려는 아버지의 욕망과 욕심이 불러온 불행이었다. 왕비 마리아 루이사는 절대권력자 왕과 결혼을 해서 최고의 권력을 손에 넣고 무능한 남편의 자리를 대신할 남자를 찾아서 정부로 삼아 평생을 살아간다. 불행하게도 그 정부 고도이 또한 능력자는 아니었다. 위의 고야의 그림에 나타난 그 왕비의 얼굴은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왕비가 갖추어야 하는 지혜나 덕은 조금도 없고 그저 맹하게 보일 뿐이다.
결혼을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남편이나 아내에게 덕을 보면서 살겠다는 누추한 생각을 한다면, 스스로를 '기생충'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결혼은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수단으로 여긴다면 자기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거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결혼은 남녀 두 사람이 유사하거나 같은 삶의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하여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은 개인의 삶의 가치를 확장하고 자기 존재를 영원으로 편입시키는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확실하게 검증된 삶의 방법이다.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자기가 결혼에 적합한 사람인지 잘 파악해 보아야 한다.
다음에는 결혼에 적합한 사람과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