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매일 하루하루가 미칠 것 같아요. 과연 누가 제 심정을 알겠어요? 어제는 산에 혼자 올라갔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그래도 이것 하나는 알아주세요. 저도 학교 나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요.
학교에는 일반적인 아이의 범주도, 그렇다고 장애인의 범주도 속하지 않는 경계선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거나 지적장애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특수반을 운영하지 않는 우리 학교에서는 이 아이들도 일반적인 아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받고 생활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아이들의 학교 나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학교에서 누구 하나 환영해 주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또 학급 아이들은 이 아이들이 등교했다 하면 술렁이면서 은근슬쩍 피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혼자가 된 내 신세.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는 교실. 크게 웃거나 욕하거나 떠드는 소리는 마치 나를 상대로 하는 것 같은 느낌. 학급활동을 해도 아무도 껴주지 않는 상황. 배가 고픈 점심시간에 처량하게 혼자 먹을 때 아무 음식 맛도 느껴지지 않는 내 모습.
정신적 결함이 있는 재환이는 어제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오늘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 상상하며 일부러 늦게 등교를 하고 있었다.
재환이니?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등교했니?
...... 그냥요.....
교실 가다 마주친 선생님은 재환이의 안부를 묻지만 재환이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자기 심정이나 상황을 선생님께 알려봤자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한테 붙들려 이런저런 잔소리를 듣기도 싫어서이다. 차라리 그냥 아무도 신경 안 쓰고 교실 제일 구석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홀로 처박혀 종례때까지 엎드려 자는 게 재환이 입장에선 최선책이다.
사실 재환이를 멀리하는 같은 반 아이들도 항변 거리는 있다. 간혹 샤우팅을 하거나 누가 봐도 걸음걸이나 행동이 이상한 재환이를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이익이나 편의를 추구한다. 친구관계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친구를 사귈 때도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본받고 싶은 친구들과 가까이한다. 그게 여러 면에서 본인에게 좀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본인과 코드가 맞거나 마음이라도 맞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 터놓고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즐겁게 생활할 수도 있고 마음도 편하기 때문이다.
재환이는 그런 면에서 아이들에게 제외 대상이다.
특히 재환이가 처음 학교에 왔을 때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재환이를 각별히 신경 쓰고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평소 경계선에 있는 사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에게 재환이는 정말 낯설고 외계인 같은 존재였다.
재환이라고 노력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학급활동을 할 때나 모둠활동을 할 때 어눌한 목소리지만 급우들에게 자기소개도 열심히 했고 친해지고자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금세 알아차렸다. 재환이는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 낯선 존재란 것을. 또 재환이랑 가까이했다가는 다른 친구들까지 자기에게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재환이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만큼 재환이의 미인정(무단)결석이나 미인정 조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부모 등쌀에 못 이겨, 이런 아이일수록 사회성을 키워야 한다는 병원 권유에 따라 재환이는 등교를 했지만 아무런 친구관계도 사회성도 키울 수 없었다.
등교를 하면 할수록 재환이 마음속엔 부정적 감정만 쌓여가고 있었다.
결국 학교에서는 등교하지 않는 재환이에 대해 선도 위원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아이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누구 하나 선도위원회에서도 재환이를 나무라거나 혼낼 수는 없었다.
선도위원회 마지막 변론시간에 재환이는 몹시 흥분되면서도 격해진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하루하루가 미칠 것 같아요. 과연 누가 제 심정을 알겠어요? 저도 이런 식으로 생활하고 싶지는 않아요. 학교를 가야 하는 것도 알고 9시에 등교해야 하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가면 뭐 하나요? 아이들은 저를 욕하고 디스하고 정신병자 취급까지 하고 있는데 -재환이는 약간의 조현병 증상도 있었다.-
어제는 너무 갑갑해서 학교 뒤에 있는 산에 혼자 올라갔어요.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그래도 이것 하나는 알아주세요. 저도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래도 자퇴는 하지 않고 학교 졸업은 꼭 해내겠다고 오늘도 가방을 싸고 등교하는 재환이를 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교사들이라고 재환이의 이런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학교에는 재환이 외에도 챙겨야 할 아이들이 너무 많다. 또 수업준비와 각종 행정업무 때문에 교사들은 늘 바쁜 상황이다. 재환이에게 신경을 쓰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예전 대학생 때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장애아동과 함께하기 1박 2일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장애 아동을 접하게 되었는데 걱정과는 달리 장애 아동은 친하게 지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미리 안내받은 장애아동의 특성을 제외하고는 아이는 일반적인 아이와 똑같았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는 같이 밥도 먹고 손도 잡고 포옹도 함께 했다. 그리고 나와 헤어지는 순간 아이는 아쉬워서 엉엉 울기까지 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가 아닌 따뜻한 관심이라는 것을.
오늘날 학교에서 봉사활동의 의미는 급속도로 퇴색되었다. 이제 대입에도 반영 안 된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의무적으로 하고 있던 봉사활동마저 피하거나 안 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요즘 아이들은 어려운 환경이나 경계선에 있는 아이를 접할 기회도 없다. 한 번의 경험도 없는 아이들에게 재환이는 그저 멀리해야 할 괴물일 뿐이다.
재환이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의 상황을 잘 안다. 친구들이 자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친구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은 생각도 추호도 없다. 하지만 재환이는 대화하고 싶고 위로받고 싶다.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되었을까? 학교에는 재환이 같은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이도 저도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래도 재환이가 위로받고 좀 더 밝은 아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