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들이 현장체험학습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by 한동훈

오늘 학교에서는 내년도 현장체험학습 일정에 관한 회의가 있었다. 2학년은 1학기에 체험학습 일정으로 이틀을 확보해 둔 상태였는데 이 이틀을 1박2일로 진행할 것인지 무박2일로 진행할 것인지가 오늘 회의 안건이었다.


사실 회의 전부터 팽팽한 대립이 예상되었다. 사전조사 결과 학생들은 80% 이상이 숙박을 하기를 바랬지만 반대로 교사들은 75%이상이 숙박없는 이틀 일정(9-17시 각각 하루씩 일정)을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회의에는 교사를 대표하여 학년부장 선생님들이 앉았고, 그 반대편에는 학부모와 학생 대표들이 앉아서 곧 회의가 진행되었다.


먼저 교사측에서 이야기했다.


"내년 체험학습 일정의 숙박에 대해서 저희는 다소 부정적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1학년은 2박 3일 단체 체험학습을 다녀왔는데 배탈, 멀미, 넘어짐 등의 안전사고가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체험학습 위탁을 계약한 사설업체의 서비스나 프로그램도 학생들에게는 영 별로였습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학생들의 숙박 문제입니다. 특히 학생들이 밤에 교사들 몰래 이탈 행동을 할 경우 이를 통제할 방법도 없고 학생들의 안전사고가 심각히 우려됩니다. 하여 내년도에는 체험학습을 숙박없는 일정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학부모 한 분은 반대 의견을 내셨다.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단체로 친구들과 같이 밖에서 체험하고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1년에 과연 몇 번이나 될까요? 그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들에게 많은 기쁨과 추억을 심어주었으면 하는게 저희 부모 마음이에요. 제가 알기론 원래 학교체험학습 처음 계획은 3박4일 제주도 일정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이유로 제주도는 취소되고 일정도 2박3일로 변경되더니 다시 슬금슬금 1박2일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런데 이제는 그 1박의 숙박까지 없애는건가요? 아이들 80% 이상이 숙박을 희망하는데 매번 학생 중심, 학생 중심 외치고 있는 체험학습의 모습은 대체 어디에 있나요?"



예상했던대로 의견 대립은 너무나 팽팽했다.


교사측에서는 학생들 안전과 통제 문제로 숙박없는 일정을 원하고 있었지만 학생,학부모는 그래도 학창시절 한 두번 갈까 말까한 체험학습인데 아이들끼리 밤에도 더 어울릴 수 있는 체험학습을 희망하고 있었다.


결국 그날 회의에서 결론은 내지 못했다.


당시 나는 회의간사(회의 진행 및 사회자)로서 말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 속으로는 이야기 꺼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내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도 마음 속으로는 학생 학부모 입장을 응원하고 있었다.


우리학교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늘 수행과 시험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고, 기대만큼 안나오는 성적에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하다. 학교 활동은 모든게 성적, 생기부와 연결되다보니 아이들은 몇 안되는 단체활동마저도 순수한 의도를 갖고 참여하기는 힘들다.

'어떻게 하면 쟤보다 돋보일까?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 내 세특을 잘 쓰게 할 수 있을까? 저 활동을 참여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무엇인가?'

아이들은 이해타산적이며, 수시로 계산하고 그 계산에 따라서만 움직이는게 교실의 현실이다.



학교 현장체험학습은 바로 이런 이기적이고 삭막한 환경 숲에 갇혀 사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도시의 빽빽한 아파트 숲에서 벗어나 청량하고 푸른 초원지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뻥 뜷린 시원함을 느끼고 자신의 감성 전체를 충만함으로 채울 수 있다.



또한 숙박이란 무엇인가? 아이들이 가정이나 부모 환경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친구들과 같이 놀고 하룻밤을 자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취침 시간이 올 때 불을 꺼두고, 그동안 감춰 둔 카더라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비밀 이야기, 속 이야기, 진솔한 이야기를 하나 하나 꺼내든다. 그리고 이런 대화들을 공유하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친구의 진심을 알게 되고 이해타산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마침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체험학습을 진행할 때 물론 교사 입장에서 조금은 걱정스러운 순간들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8살 먹은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르고 위험한 행동인지는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도 막가파식의 정말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경우는 잘 없다. 가끔씩 보이는 일탈도 적발되면 쭈볏쭈볏 거리다가 교사에게 실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서 실수도 하고 직접 부딪쳐보고 함께 어울리면서 시행착오도 겪어봐야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다. 온실속에서는 결코 큰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따라서 부모의 온실 속에서만 자라난 요즘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이란 꼭 필수적인 경험이다.


어느 순간부터 학교는 안전불감증을 우려하며 안전-안전을 강조하다 보니 정상적인 안전 기준을 넘어서 이제는 안전 민감증-안전 과민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활동적이거나 위험하다 싶으면 지레 우려를 하고 취소하거나 시도조차 안하는 모습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또 멀리 떨어진 교외까지 와서 '명사 진로특강' 이랍시고 아이들이 원치도 않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체험학습의 올바른 모습은 아니다.


아이들은 늘 갑갑하고 새로운 체험에 목마르다. 학창시절에 몇 안되는 그 순간만이라도 아이들이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기회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끝으로 최근 읽은 책의 멋진 구절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옛말에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랫세대 사람들이 윗세대 사람들 말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친 순종과 통제는 오히려 개인의 주관과 창의력을 키우는데 방해가 된다는 말이다.

-<사춘기는 부모도 처음이라 책 내용 중>-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