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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능력은 유전일까 환경일까

by 한동훈

비슷한 연배끼리의 모임에서 문득 화두가 아이들 교육 문제가 되었다. 누군가 말했다.


"내 생각에 애들 공부 잘하고 못하고는 100% 유전인 것 같아. 내 아는 지인은 의사인데 애가 고등학교까지 지독히도 공부 안하고 놀기만 했다더라고.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정신 차린다고 공부하겠다고 하더니 불과 2년만 빡세게 해서 정시로 S대 갔다지 뭐야. 그러니 애들 굳이 억지로 하라 말라 할 필요없어. 하는 애들은 자기 마음만 먹으면 언젠가는 잘하게 되있어."


또 다른 이가 맞장구쳤다.


"그렇지. 콩심은데는 콩난다고 아무리 영유(영어유치원)니 고액과외니 시켜봤자 별 소용없어. 어느 집안은 학벌이 그닥이었는데 애 명문대학 보낸다고 억지로 이것저것 시키고 달달 볶더니 결과는 참담하지 뭐야. 돈은 돈대로 쏟아붓고 결과는 안나오고 뭐라 위로할 말은 없고 참 안타까워."


실제 그날 모임에서 애들 학업능력은 결국 '유전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교육에 몸 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수 만은 없었다. 나는 모임을 파하고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에도 계속 생각에 잠겼다.


학업 능력은 유전인가 환경인가?

오랫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이 문제는 주요한 논쟁거리였다. 만약 전자의 의견을 따른다면 우리는 아이들 학업 문제에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100% 부모의 머리와 유전에 따라서만 학업 능력이 결정된다면 아이들 교육환경을 바꾸고 사교육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학자들 주장에 따르면 학업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과 환경의 비율은 5대5 내지 6대4, 4대6 정도라 한다. 즉 학업에서 유전적 영향을 무시할 순 없지만 유전만큼이나 후천적 환경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본성과 양육문제를 다룬 통찰력이 풍부한 연구는 90년대 과학자 마이클 미니가 수행한 연구이다. 그는 불안도가 상이한 어미 쥐들과 새끼 쥐들을 가지고 실험을 수행했다. 불안수준이 높은 어미 쥐는 사소한 자극에도 과민 반응했다.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고 본인이 불안상태에 있다보니 새끼를 잘 돌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주지 않았다. 이에 따라 새끼 쥐도 덩달아 불안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반면 느긋한 성격의 어미 쥐에게 태어난 새끼 쥐는 전기 자극에도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 불안 수준이 낮다보니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을 적극 탐색하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마이클 미니는 여기서 다시 독창적인 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태어날 때 새끼 쥐를 각각 바꾸어 느긋한 성격의 어미 쥐가 불안한 어미 쥐 새끼를 키우게 하고 불안한 성격의 어미 쥐가 느긋한 성격의 어미 쥐 새끼를 키우게 한 것이다. 결과는 어찌되었을까? 놀랍게도 새끼 쥐는 자신을 낳아 준 어미 쥐의 특성이 아니라 양육한 어미 쥐의 성격을 닮으며 자라났다. 미니는 유전이 성격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어미의 행동이나 환경이 성격을 결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 후성 유전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몸의 DNA에는 유전적 특성이 부호화되어 있지만 실제 이 특성이 나타나려면 관련 신경이나 뉴런이 계속 자극을 통해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주변 환경이나 경험에 따라 DNA는 꺼질 수도 있고 켜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항상 유전자의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유전자는 바뀔 수 있다. 후성 유전학자들은 환경과 경험으로 DNA의 효과는 충분히 바뀔 수도 있다고 말한다.


실제 내가 몸 담고 있는 학교 현장에서도 꼭 부모의 능력이 학생의 학업 능력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어떤 아이는 부모가 의사 같은 전문직인데도 학업 성적이 좋지 않고 좀처럼 학업에 흥미를 못붙이는 경우도 꽤 있었다. 반면 어떤 아이들은 그 반대의 상황에 집안 형편마저 어려웠지만 의지를 가지고 공부하여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이고 우수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만 후자 아이들 부모의 공통점이라면 부모가 한결같이 온화한 성격에 아이들 교육 문제와 지원에 언제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학업 능력에 있어 중요한 것은 환경과 부모의 양육태도이다.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는 DNA는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우리가 결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 DNA를 적극 발현하고 변화 시키는 것은 부모의 태도와 가정 교육 환경에 달렸다.


가끔씩 앞서 이야기한 지인들처럼 학업은 순전히 유전적 요소라면서 자녀학업을 방치하거나 그냥 포기하는 학부모들을 가끔 본다.


교사인 내 입장에서는 그런 학부모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실제 내가 볼 때 그 아이들은 부모의 지원과 격려, 아이의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자기 재능을 크게 꽃 피울 수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비판과 꾸지람만 받고 자라 온 한 아이는 자기가 도통 공부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구체적인 공부 방법을 알려주고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독려하고 의지를 가지고 몇 개월만 열심히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아이는 진짜 열심히 했다.


결과는? 아이는 그 다음 시험에서 평균 성적이 40점에서 85점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후 그 아이는 자기가 공부를 못하는게 아니라 소질있고 잘 하는 아이라고 스스로 믿게 되었고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모든 것이 유전이라고 포기하지 마라. 실제 우리 아이들의 가능성은 노력과 양육환경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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