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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담임이지만 입시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by 한동훈

올해 나는 학교를 옮겨서 고3 담임을 맡았다.

이 전 학교가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았던 학군지였던데 비해, 이번에 옮긴 학교는 학업보다는 단순히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목표인 아이들이 많은 곳이다.


같은 고3이지만 자습을 시켜보면 그 차이는 명백히 드러난다. 이 전 학교 아이들은 자습시간을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풀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고, 또 개인 공부할 시간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반면 지금 학교 아이들은 좀 다른 목적으로 이 시간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핸드폰이나 게임, 유투브 영상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고 환호성을 지른다.


그래도 고3이라고, 걔중에는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려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아침부터 책을 펴놓고 열심히 문제를 풀면서 노력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고 뭔가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난 이들을 계속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도 많이 생긴다. 지금 정신차리고 공부를 시작하려 한들 이미 기초를 많이 놓친 상황이고, 수업시간 선생님이 학습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해도 그 설명을 이해하거나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번 3월 모의고사를 볼 때엔 아이들의 시험 태도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학교에서 한 번도 학업에 대한 성취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시험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아이들은 몇 문제 풀어 보더니 "역시 난 안돼." 하는 심정으로 포기하거나 엎드려 자는 경우가 많았고 1시간쯤 지나자 문제를 계속 풀고 있는 아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 아이들이 과연 11월 수능 시험장에서는 달라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또 이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해라 조언하는 것이 과연 효력이 있을까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대학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선생님 이번에 OO 사관학교 입시 설명회 있다면서요? 서울에 있는 K대 가려면 수능 몇 등급 받아야 하죠?"


입시 상담때 자기 성적보다 한참 위인 최상위권 대학 성적을 진지하게 묻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아직 본인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너털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들이 이런 대학교에 합격하려면 정말 성적을 많이 끌어올려야 한다. 아마 각성 정도의 효과, 그 이상이 아니고서는 아이들이 해당 대학교에 입학하기란 힘들 것이다.



기본적으로 고3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상위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는 학업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이곳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성적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보다는 아이들이 20살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사회인이 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따지고 보면 아이들은 지금껏 한번도 자기 진로에 대해서, 또 학업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천진난만하게만 학교 생활을 했던 이 아이들에게 졸업을 앞둔 고3 생활은 처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인 것이다.


바깥세상은 차갑다. 학창시절에 비해 수많은 자유가 주어지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책임감이 많이 따르고 스스로 선택할 것이 많다. 또 이제 더이상 부모나 학교가 자신을 예전만큼 보호해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보다 성숙하고 올바른 선택들을 내릴 수 있도록 올해 1년 만큼은 진지하게 많은 것을 배우고 사회인이 될 준비를 해나가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한다.


또 수동적이고 학업에 주눅든 모습만 보이는 이 아이들이 학업에 대한 작은 성취감이라도 맛보고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을 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한다.


아이들이 고3 생활을 한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다. 담임으로서 아이들을 많이 변화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존재에서 스스로 자신을 고민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아 나름 보람을 느낀다.


고3시절은 아이들에게 학창시절의 마지막이고 담임으로서의 나는 그들의 마지막 담임이 된다. 그들에겐 마지막인 만큼 아이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남고 싶고, 또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담임이 되고 싶다.



나는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오늘도 그들을 위해 고민하고 그들과 상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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