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의 경계자들
이튿날, 그녀의 연락을 받고 와이어트가 도착한 곳은 한창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공사판이었다. 아치형 지붕 위로 높게 세워진 십자가는 이곳이 어딘지를 설명해 주었다. 흰색 벽 앞에 설치된 철제 구조물 앞뒤로 벽돌과 목재가구들을 등에 짊어매고 수많은 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교회란 존재란 무엇일까, 와이어트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매만졌다. 그 가운데 소매를 걷어붙인 렉시가 와이어트 앞으로 걸어왔다.
“어서 와요.” 그녀는 흩날리는 먼지를 의식했는지 손을 휘둘렀다.
와이어트는 조심스레 그녀에 다가갔다. 손을 어디에 둘 지 모르는 눈치였다.
“실망했나요? 연락을 받아서 온 곳이 이래서요?” 그녀가 입을 가리며 미소 지었다.
“예? 아닙니다. 단지, 낯설어서요.”
“뭐가요? 노래나 부르던 여성인 줄 알았는데, 벽돌을 나르고 있는 모습이 낯선가요?”
당황해 거칠게 손을 흔드는 와이어트의 팔을 붙잡으며 렉시가 말했다.
“농담이에요!”
우람한 어깨 위로 딱 봐도 엄청난 양의 벽돌을 매고 가는 무섭이 그를 보고 반갑게 소리쳤다. 와이어트는 소매를 걷어올리고선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무섭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돌무더기를 가리켰다. 와이어트가 주변을 살피고 앉았을 때는 그의 셔츠가 땀에 흥건히 젖어버린 다음이었다. 그의 손목 위의 시침은 숫자 1을 향해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신가 보네요.”
“예? 아무래도… 와이어트가 옷에 덮인 흙을 손으로 털어냈다.” 그를 따라 렉시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곳은 저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장소예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와이어트가 안경을 벗고 소매로 얼굴을 문질렀다.
“제가 이 수많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곳이거든요.”
“저기…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엄마라는 호칭의 의미는 뭡니까?”
와이어트가 조심스레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갈 곳이 없거나, 상처받은 아이들을 보살펴 주는 거죠…” 그녀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이 모든 사람을요?” 와이어트가 놀라 물었다.
“저를 포함한 이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보살피는 거죠.”
“이 교회는 새로 짓는 겁니까? 아니면…”
“화염에 타버렸어요. 신기하게 제단 하나만 불에 타지 않고 남아 있었는데, 이 정도면 거의 다 완성된 거죠.”
“아까 보니, 기둥 한 편에 총알 자국들이 보이던데…” 와이어트의 손끝이 기둥을 향했다.
“예… 맞아요. 군인들이 이곳을 무너뜨렸답니다.”
그녀의 얼굴에 설명하지 않은 아픔이 서려있는 듯했다. 눈 주변의 실핏줄이 파랗게 튀어 올라왔다.
물을 마시며, 무섭과 야루가 그들에게 걸어왔다.
“마마는 대단한 사람이에요. 총알이 빗발치고 건물이 불에 타는 와중에도 이마스를 구해냈거든요!” 야루가 박수를 치며 낄낄댔다.
와이어트가 셔츠 단추를 매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찡그린 미간 사이로 깊은 감정이 드러나 보였다.
“그런 새끼 얘기도 꺼내지 말아!” 가만히 듣던 무섭이 고함쳤다.
“쌍놈의 자식! 그렇게 살갑게 대해줬더니만.” 입고 있던 나시를 벗어던지며 무섭이 말했다. 몸통에 흐르는 땀줄기가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맞아 반짝였다.
“지 아비 쏘고 도망치면 우리가 뭐 어찌하겠어요. 하루 만에 소식도 모르는 쌩판 남이 돼버렸는데 씁쓸할 뿐이지.” 야루가 비꼬듯 투덜댔다.
렉시가 다시 팔뚝을 걷어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와이어트가 야루에 물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돕는 거죠?”
“교회는 우리에게 특별하니까요. 교회에 오면 저는 항상 이런 감정을 느껴요. 나는 파푸아인이구나. 뭐 이런 거요.” 야루가 웃으며 렉시에게 달려갔다. 와이어트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셔츠 앞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공책은 그곳에 없었다.
렉시의 말처럼 공사는 거의 완성을 앞둔 상태 같았다. 그러나, 곳곳에 미처 갖추지 못한 형태들이 그의 눈에 띄었다. 와이어트는 창가 근처에 수많은 이들이 몰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일인가요?” 와이어트가 바로 옆에 서 있는 무섭에 속삭였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걸려 있어야 하는데, 아직 구하지 못했어.”
“왜죠?” 와이어트가 물었다.
“이미 다른 건축자재를 사는 데 돈을 다 써버렸거든. 이 자식들 굶기면서 일 시킬 수도 없고 말이야.”
와이어트가 그의 귓가 근처에 손을 모으며 다시 한번 속삭였다.
“혹시, 제가 도울 수 있을까요?”
자신의 계좌에 쌓인 금액을 확인했을 때, 와이어트는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아직도 쓰지 못한 돈이 계좌에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돈은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어머니. 그는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문득, 그는 어머니의 모습이 또렷이 기억이 나지 않음을 느꼈다. 불과 4년 남짓한 시간이 만든 변화는 잔인했다. 그는 자신의 사진첩을 뒤져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냈다. 놀랍도록 환한 미소와 자연스레 자리 잡은 주름들. 생각보다 밝은 그녀의 모습은 와이어트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들과는 너무도 달랐다.
남편을 억울하게 잃은 아내의 비극은 제자신의 생명마저 갉아먹기 충분했다. 처절한 절규 끝에 받아낸 남편의 목숨에 대한 대가로는 그녀를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이킬 순 없었다. 그녀의 몸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져 갔다. 비로소 자신 혼자의 힘으로 숟가락 하나 들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삶으로부터, 끔찍한 세상으로부터 와이어트만은 벗어나게 해 주려 노력했다.
“세상은 때로는 너무나 가혹하단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너무도 아름다운 순간들이 가득했어. 몇 가지 실수가 후회로 남는구나. 저질렀던 행동의 과오보단,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미련일 테지…”
은행에서 나온 그는 수많은 이들에 둘러싸였다. 돈. 이 돈은 어머니의 유산이었다. 동시에, 아버지의 목숨값이었다. 누구보다 이 돈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던 그였다.
“호주는 학생도 이렇게 많은 돈을 법니까?” 야루가 중얼거렸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와이어트가 앞으로 걸어갔다. 그 앞에 렉시가 멈춰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혹시 끝나고 술 한 잔 마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