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만난 사내, 담벼락에 쓰인 문자, 출입국 관리소

파푸아의 경계자들

by 김승민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태양이 하늘에 서있었다. 그 아래, 어린아이의 눈동자처럼 맑은 청록색 바다가 항구를 바라보며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바다의 짠내음이 콧가에 퍼졌다. 와이어트는 그 부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그는 자신이 꼭 쥐고 있던 명함 한 장을 다시 살펴보았다. 닐스 부단트 - 작가 겸 기자



곧이어, 멀리서부터 큰 목소리로 남성이 소리쳐오는 것이 느껴졌다. 작열하는 태양 탓에 꽤나 가까워진 다음에야 서로의 생김새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안경 너머로 가벼운 옷차림에, 뿔테안경, 그리고 정글모를 걸쳐 쓴 남성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쌍꺼풀이 깊게 진 푸른 눈, 약간은 두꺼운 입술, 햇볕을 머금은 피부.


“자네가 와이어트인가? 베네딕트 교수가 추천한 친구 맞지?”


“예 베네딕트 교수님 제자입니다.” 닐스 부단트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와이어트가 손을 잡자 그는 손등에 핏줄이 설 정도 세게 움켜잡은 뒤 거칠게 흔들었다.


“우선, 미안하세. 파푸아가 아닌 이곳에 먼저 불러서. 이곳에 미처 끝내지 못한 인터뷰가 있었다고 하면 이해해 줄 거라 믿네.”


와이어트가 다시 본 그의 눈은 피곤에 절어 생기를 잃어버린 듯 보였다.


그들은 배로 파푸아까지 자신들을 데려다줄 사람을 기다렸다. 곧이어, 깡마른 몸에 안 어울리는 두꺼운 팔뚝을 흔들며 한 남성이 걸어왔다. 매일같이 뜨거운 햇빛을 받아 검게 타버린 피부와 열린 땀구멍. 그는 익숙한 듯이 걸쳐져 있던 훗줄을 풀은 뒤 배를 움직였다. 배를 운전하는 동안에도 그는 어떠한 말도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닐스가 와이어트에 속삭였다.


“저 친구는 어디에서 온 것 같나?”


“모르겠습니다.” 와이어트가 답했다.



닐스 부단트는 수염을 더듬으며, 끌끌 미소를 지었다. “파푸아의 해안가 출신이지. 평생을 바다를 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야.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이곳까지 온 게지.”


오랫동안 굶주린 마냥, 그는 쉴 새 없이 와이어트에 말을 걸었다.


“이 바다는 이방인들의 무덤이야. 억울함의 눈을 감지 못 한 자들이 이 밑에서 우리를 마주 보고 있지. 한 번 눈을 감고 상상해 보게나. 어두운 하늘 아래, 여벌의 옷과 돈뭉치를 가방에 넣고 이 배에 탔던 수많은 모험가들을.”


와이어트는 머리를 배 밖으로 내밀어 아래를 바라보았다. 수면 위로 자신의 얼굴이 고요히 일렁거렸다. 마치 어머니의 뱃속에 머무는 태아같이. 곧이어, 뱃고동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수면 위로 잔상들이 빠르게 일그러지자, 와이어트는 자리에 앉아 등을 벽에 기대었다. 곧, 배를 몰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와이어트 시선에 들어왔다. 그의 눈동자는 저물어가는 노을이 반사되어 붉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그날의 바다와 같이, 침묵을 지키던 그가 와이어트에 말을 건 순간은 시간이 꽤나 흐른 뒤였다. 낯선 억양과 알지 못하는 언어. 모든 것을 지켜본 닐스가 와이어트를 바라보았다.


“첫 발을 내디뎠군! 우리가 가게 될 세상은 신비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지. 언어는 목표를 향한 과정일 뿐이고.”


안개가 겉이자, 섬의 모퉁이가 비로소 그들 앞에 드러났다. 울창한 숲들이 그 위를 덮고 그 아래, 앞으로 배가 정박할 항구가 보였다. 노를 젓듯이 와이어트의 심장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느껴졌다.


배에서 내리자 바다의 비릿함과 숲의 상쾌함이 동시에 그를 덮쳤다. 습한 열기가 그의 피부 위로 쏟아졌고, 와이어트는 가방 주머니에 꽂아둔 선글라스를 황급히 꺼냈다. 선글라스 너머로, 울창한 숲과 맞닿은 구름이 보였다. 마치 이곳에는 어떠한 경계도 존재치 않다는 느낌을 풍겼다. 살면서 본 가장 가까운 태양을 그는 마주했다.


택시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나무로 지어진 작은 부두 앞에 작은 어선들이 수면 위에서 조용히 떠다니고 있었다. 닐스는 앞 좌석에서 그를 향해 뒤돌아보며 말했다.


“취재! 취재라고 해. 다른 말은 하지 말고. 무슨 취재냐, 물어보면 문화나 자연… 뭐 그딴 거 둘러 말하면 돼!”


와이어트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뒤, 미처 다 보지 못한 풍경을 다시 음미했다. 스쳐 지나가는 창문 밖에는, 아연 재질의 붉은 지붕이 덮인 집들 사이로 무성한 열대 식물들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그 너머,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가 무질서하게 뻗어 있는 모습은 마치 자연이 인간의 터전을 조심스럽게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달리던 도로 한 구석에, 담벼락에 쓰인 글귀들이 와이어트의 눈에 들어왔다. ‘Merdeka Papua’ 노란색 페인트로 두껍게 칠해진 벽 주변으로 반바지만을 걸친 동네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려는 듯이 침착하게 머물렀다.


택시가 멈추자, 닐스는 자연스럽게 그와 흥정을 시작했다. 결국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고 미소를 띠는 닐스의 얼굴 너머로, 이질적인 건물 한 채가 반짝였다. 닐스는 다시 한번 그에게 경고했다.


“나와 달리 자네는 오래 걸릴 수도 있어. 잘 해내겠지만, 그래도… 아까 내가 한 말 명심하게.”



무더운 밖과 달리 시원한 공기가 복도에 가득히 차 있었다. 흰색 벽 가운데 색이 바랜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목재 바닥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삐걱거렸다. 창가로 스며드는 햇빛은 그곳의 습도와 먼지를 알려주기 충분했다. 그의 앞에 선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질 때마다 와이어트의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이들이 지닌 표정을 보면 나아질까 싶어 주위를 살폈지만, 그의 앞줄에 서있던 여성은 천으로 얼굴을 온전히 가리고 있었다. 오롯이 와이어트 홀로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출입국 신고를 이미 마친 닐스는 만족스러운 몸짓으로 그를 뒤로한 채 복도를 떠났다.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서자, 제복을 입은 남성이 책상에 팔을 걸친 채 그를 올려다봤다. 그의 시선의 방향은 와이어트의 온몸을 샅샅이 홅는 듯했다. 그 아래 재떨이에선 아직 채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가 연기를 뿜어냈다. 방 안 곳곳에 치과에서나 맡을 수 있는 향이 스며들어 있었다. 냄새만으로 그가 피우는 담배가 끄레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좁은 방 안에 연기가 나가지 못하고 맴돌고 있었다. 와이어트는 준비한 서류를 그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남성은 습관인 듯 서류를 읽으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의성어를 내뱉었다. 잠시 후, 표정을 보이지 않는 남성이 와이어트를 향해 물었다.


“간단히 물어보겠습니다.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되시죠?”


“취재 보조입니다.”


“누구를요?”


그가 빠르게 다시 물어봤다. 마치 범죄자를 캐묻는 듯한 태도였다.


“닐스 부단트입니다. 호주에서 이름 있는 신문사의 기자죠.”


“음음… 흥미롭군요. 파푸아에 대해선 잘 아시나요?”


그의 시선이 와이어트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렇군요. 우선, 허가가 되었다 해도 다시 거부될 수 있습니다. 이곳, 파푸아는 많은 트러블이 존재해요.”


남성은 더운 듯 자신의 목을 조이고 있던 셔츠 위 단추 하나를 풀어냈다.


“시위에 참여하거나 조금이라도 연관된 것이 밝혀지면, 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지는 겁니다.”


남성의 무게 짙은 말투에 와이어트는 강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가가 되지 않는 지역에 방문하시지 마세요. 이건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곳을 빠져나온 와이어트는 자신의 손바닥이 땀에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손아귀의 힘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지만, 여전히 온전한 감각이 돌아오지는 않은 듯했다. 건물 앞에서 닐스가 와이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종이에 담긴 무언가를 와이어트에 던지며 말했다.


“30분 정도면, 뭐. 오래 걸리진 않았군! 축하하네.”


와이어트는 그가 건넨 물건을 확인해 보았다. 구운 옥수수였다. 그것을 본 닐스가 다시 한번 말했다.


“왜? 옥수수 싫어하나?”


“그럴 리가요. 네브레스카 출신인데요.” 와이어트는 닐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는 와중에도, 그는 계속해서 택시기사와 대화를 했다. 그의 입은 멈출지를 모르는 듯했다. 와이어트는 조용히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그를 덮치는 새로운 바람결을 맞고 있었다. ‘JL. Pahlawan’ 이 적힌 표지판이 간간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와이어트가 닐스를 향해 외쳤다. “저희가 묵을 숙소가 어디죠?” “라마!” 그가 소리쳤다. 거센 바람에 와이어트의 머릿결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택시가 교차로로 들어섰을 때, 저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짐승들의 울음소리 같기도, 거대한 배의 뱃고동 소리 같기도 했다. 와이어트는 백미러로 비치는 택시기사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시위를 하나보군요. 잠시, 돌아서 갈게요.”


택시기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와이어트는 택시를 탄 뒤로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시위죠?” 택시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핸들을 꺾었다.


“수라바야에서 파푸아 대학생들에게 인종차별적 모욕을 했거든.” 옆 좌석에 앉은 닐스가 영어로 와이어트에 속삭였다.


“뭐라고 했는데요?” 와이어트가 묻자 닐스가 다시 속삭였다. “원숭이 새끼들.”


닐스의 발언과 동시에 성난 군중들의 울음소리가 그의 뒤로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과는 다른 모습의 현대적인 건물 앞에 택시가 멈춰 섰다. 노란빛의 전등 위로 ‘호텔 라마’ 간판이 매달려 있었다. 그 옆에 심어진 야자수를 따라, 닐스와 와이어트는 건물을 들어갔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얼마나 벅차올랐는 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가죽 가방은 흥건한 땀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샤워를 마친 와이어트는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부드러운 털 시트가 살결같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계속된 여로에 피곤함을 느낀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아직 저물지 않은 햇살이 살며시 새는 창가 너머로, 거리의 활기찬 소음이 자장가처럼 귀를 만졌다. 그 위에는 선풍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파푸아’. 입으로 중얼거리던 와이어트는, 하루동안 그에게 벌어진 일들을 곱씹었다. 배에서 만난 사내, 담벼락에 쓰인 문자, 출입국 관리소에서의 심문, 택시에서 맞은 시위 소리. 그 모든 것이 일련의 연결고리처럼 그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는 다시 한번, 군중들의 시위를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는 듣고, 보고, 느낀 어떤 감정을 복원해야만 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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