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캐피탈]EP11-과거의 유령들

by 다소


성공의 맛은 김민준을 취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새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새로운 공간은 아직 텅 비어 있었지만, 그는 투자금의 일부를 쏟아부어 최고급 원목 책상과 이탈리아제 가죽 의자, 그리고 그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줄 거대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놓았다. 그는 갓 채용한, 그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는 유일한 직원인 20대 여직원, 김 비서에게 지시했다. 그녀는 그의 화려한 이력과 젊은 나이에 압도되어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김 비서, 저쪽 벽이 좀 허전하네. '포브스 선정, 2025년 가장 영향력 있는 30대 이하 리더' 같은 느낌으로 상패 하나 맞춤 제작해주는 곳 좀 알아봐요. 디자인은 최대한 고급스럽고 미니멀하게."

"네, 대표님!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그가 막 뽑아낸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사무실 인터폰이 울렸다. 김 비서의 목소리였다.


"대표님, 1층 로비에서 백성철 사장님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대표님의 아주 오래된 사업 파트너라고 하시는데요."


민준의 손에서 찻잔이 미끄러질 뻔했다. 백성철. 백 사장이었다. '오래된 사업 파트너'라는 말은 명백한 경고였다. 그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 그러시군요. 제가 지금 내려간다고 전해주세요." 그는 김 비서에게 "아주 중요한 초기 투자자분이니, 잠시 자리 좀 비우겠다"고 둘러댄 뒤, 마른침을 삼키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층 로비, 화려한 대리석 바닥 위에 백 사장이 이질적인 섬처럼 서 있었다. 그는 민준을 보자마자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하며 주차장 쪽으로 이끌었다.


"이야, 우리 김 대표. 아주 번듯해졌네. 이런 좋은 데서 일하고. 차 한잔하면서 얘기 좀 하지. 내 차에서 조용히."

백 사장의 검은색 제네시스 G90 뒷좌석에 앉는 순간, 문이 닫히며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방음 처리가 된 차 안은 숨 막히는 정적으로 가득 찼다.


"떡볶이집 아들이 강남에서 이런 걸 차리다니, 세상 좋아졌어. 네 아버지는 지금도 시장 바닥에서 땀 흘려 떡볶이 1인분에 3천 원 버는데, 우리 아들내미는 여기서 커피 마시면서 전화 한 통에 몇 억을 땡기는구나. 이게 창조경제냐? 응?" 그의 말은 민준의 가장 깊은 상처를 후벼 파는 칼날이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백 사장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가 네 '첫 투자자' 아니냐. 그렇지? 동업자로서 네 성공에 작은 지분이라도 갖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니겠어? 난 복잡한 거 싫어해. 매달, 네 통장에 들어오는 돈 있지? 그 수익금의 30프로. 그걸 내 통장으로 '배당금'이라고 생각하고 꼬박꼬박 보내. 그럼 난 네가 떡볶이집 아들이라는 것도, 네 돈이 어디서 났는지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네 부모님 가게에 진상 부리는 손님도 없을 거고. 어때, 간단하지?"


그것은 투자가 아닌 기생 선언이자, 가족을 인질로 잡은 협박이었다. 민준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백 사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민준을 빌딩 앞에 내려주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민준에게 김 비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 민준은 재빨리 가면을 고쳐 썼다.

"아닙니다. 오랜만에 옛 동업자를 만나니 감회가 새로워서요. 신경 쓸 것 없어요."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같은 날 저녁, 경기도의 한 아파트. 박성철 팀장은 소파에 누워 아내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습관처럼 인터넷 기사를 살피던 중 눈길을 끄는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아니…이게 뭐야?...여보, 이리 와봐. 이거 웃기네. 회사 다닐 때 내 밑에 있던 김민준이라고 기억나? 맨날 어리바리해서 내가 겨우 챙겨줬던 계약직." 아내가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어머, 이 사람이 그 청년이야? 웬일이야, 완전 다른 사람이 됐네. 벤처 대표래."


박성철은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저 자식,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나 아니었으면 진작 짤렸을 놈인데, 용 됐네."


약간의 질투와, 자신이 아니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는 우월감이 뒤섞인 감정. 그는 기사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댓글을 남겼다.


그 시각, 민준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망연자실한 채 위스키를 들이켜고 있었다. 백 사장에게 바쳐야 할 상납금은 그의 현금 흐름에 거대한 구멍을 낼 터였다. 그는 위안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다시 열었다. 사람들의 찬사 어린 댓글들을 읽으며 잠시나마 자존감을 회복하려던 참이었다.

바로 그때, 그의 눈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박성철: 허허, 이 친구 저희 팀에 있을 땐 참 조용한 친구였는데, 퇴사하고 이렇게 크게 성공할 줄은 몰랐네요. 세상일 참 모릅니다.


민준의 손에서 위스키 잔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 두꺼운 카펫 위로 값비싼 술이 피처럼 번져나갔다. 그의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댓글을 꾹 눌렀다. '삭제'나 '신고' 버튼을 찾으려는, 절박하고 무의미한 시도였다. 당연히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진짜 공포는 그다음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닐 거라는 불길한 예감. 그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으로 미친 듯이 다른 사이트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발견했다. 그가 '불개미 군단' 커뮤니티에 들어갔을 때, '[정보] Next Buffett 님 과거 이력 ㄷㄷ' 라는 제목의 글이 인기 게시물에 올라와 있었다.

누군가 박 팀장의 댓글과 그 답글들을 통째로 캡처해서 올린 것이다.


그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원본 댓글 하나를 지우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의 과거는 이제 지울 수 없는 스크린샷이라는 디지털 낙인이 되어 인터넷을 떠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통제 범위를 완벽하게 벗어났다. 그의 머릿속에서 두 개의 위협이 충돌했다.


백 사장은 그를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기생충이다. 하지만 먹이만 주면 조용히 피를 빨아먹을 것이다. 그러나 박성철의 댓글은, 그 자체로는 무해하지만, 이름 모를 하이에나들을 불러 모으는 피 냄새였다. 진짜 기자들. 그의 배경을 파고들기 시작할 집요한 사냥꾼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박성철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이 유령을 어떻게 잠재워야 하는가. 그는 다급하게 페이스북 메신저를 열어, 최대한 밝고 친근한 목소리를 연기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팀장님! 저 민준입니다. 잘 지내시죠? 오랜만입니다! 우연히 기사 댓글을 봤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연락도 못 드렸네요. 조만간 제가 꼭 한번 찾아뵙고 거하게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합니다! :)'


그는 '전송' 버튼을 누르고 숨을 죽였다. 제발, 이 작은 균열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과거의 유령들은 그가 성공의 빛 속으로 걸어 나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 그의 발목을 잡기 위해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1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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