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방향의 스치는 사람

느껴지는 공포

by 소소한 특별함

운동을 마치고 나오니 어둑어둑하다.

집으로 가기 전 도서관에서 잠깐 책을 읽으려 하였으나 마침 휴관일이다.

도서관 주변의 어둠으로 진즉 알았어야 했는데 다 도착하고서야 휴관임을 알았다.

방향을 집으로 바꾸어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맞은편에서 한 남자가 걸어온다.

'비켜야겠다'는 생각에 오른쪽 방향으로 틀었는데, 맞은편 한 남자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몇 걸음 더 걸어 다시 방향을 왼쪽으로 바꾸지만 역시 한 남자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서로의 간격이 좁혀지면서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훅 밀려오는 혹시 모를 어떤 상황은 괜한 걱정이라고 달래듯 가방을 꽉 잡았다.

맞은 편의 남자는 손에 검은 봉지를 왼손에서 오른손,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쉴 틈 없이 옮기고 있다.

봉지 안의 내용물에 대한 불안한 상상을 하게 된다.


"왜 계속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걸까?"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헉! 상대방도 걸음을 멈춘다.

어깨가 움추러들면서 얼굴은 상기가 되고 호흡은 점점 가빠진다.


"왜 그러는 건데!!!"


태연히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째려본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소리는 요동을 치는 중이다.

이게 맞나! 이렇게 대처하는 게 맞을까!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는 것이 이렇게도 대단한 용기인 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도 나를 쳐다보고 있다.

눈싸움 한 판을 벌이고 그가 나의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간다.

나도 다시 걷기 시작했다.


50미터쯤에 있는 신호등 대기를 핑계로 뒤돌아보며 아까 그 남자의 뒷모습을 확인한다.

여전히 검은 봉지를 왼손에서 오른손,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며 또 다른 눈싸움을 벌일 것처럼 가고 있다.


길 위에서 상대방과 마주치며, 피해 준다고 피하나 상대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이렇게 공포스러울까?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아까 그 검은 봉지의 남자에겐 어떤 의도가 숨어있었던 걸까?


1990년도 후반 TV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다 TV인생극장이 생각난다.

이휘재가 '그래! 결심했어!'라는 대사로 결심의 결말과 비결심의 결말을 보여주었던 코너다.


고개를 들어 검은 봉지의 남자를 쳐다본다와 방어 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쳐다보지 않는다의 결말은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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