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언제나 기분 좋은 느낌으로 전달되는 곳이 아니다.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6개월마다 병원을 간다.
주요 목적은 매일 아침 복용하는 약을 받기 위함이다.
한 번은 피검사를, 한 번은 초음파검사를 한다.
피검사로는 수치를 확인하고, 초음파로는 갑상선의 상태를 보며 약의 농도조절을 한다.
주말이지만 병원을 향해 서둘러 나섰다.
병원 앞에서 막 하차를 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예약시간에 딱 마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초음파실의 예약 시간은 20분 경과하였다고 한다.
아.. 초음파 검사가 있었구나....
병원에 들어서면 어느 한 구석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이 없다. 모두 각자의 진료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린다던지 채혈실 앞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다.
수술을 하고 10년이 지났지만 그 중간쯤 몸의 상태가 너무도 좋지 않을 때 채혈실 앞에서 대기하던 마음이 떠올랐다.
혹여 악화되었을까 싶고, 그 악화는 다른 의미로 전이가 되었을까도 싶은 마음이 피검사로 나오니 그날의 대기는 여느 때보다 초조했었다.
나는 초음파실로 바로 갔다. 예약시간보다 20분이나 늦은 상황이라 앞의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간호사 3명이 모여 회식 일정을 잡는지 큰 목소리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며 까르르까르르 웃는다. 그러나 나는 그 모습이 좋게 전달되지 않았다. 물론 이해는 된다. 그들은 그냥 근무를 하는 중일테고 그중 마음 맡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얘기 나누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테니까.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누구 하나 편안한 표정의 사람들은 없었다.
내가 오랜 시간 일했던 법조시장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의 분위기도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으나 얽힌 사건사고를 해결하기 위한 의뢰인들은 항상 심각했고, 예민했다. 그 안에서 크게 웃거나 크게 떠들거나 하지 않은 것 같다.
모두가 아파서 대기를 하고 있는 환자들 앞에서 크게 웃는 것이 나는 사뭇 불편했다. 그 불편함은 내 차례가 되어 안내를 하는 간호사가 불친절하다는 평가를 하기에 이르렀다. 초음파를 담당하는 의사 또한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진료를 마치고 목에 묻은 액체를 유난히 오래 닦아냈다. 액체를 잘 닦아내기 위해 핸드타월 같은 까칠한 타월은 나의 목을 벌겋게 올라오게 했음에도 나는 박박 닦아냈다. 그러면서 되돌아보았다.
저들이 정말 불친절했나?
아니었다.
초음파 검사를 위해 가방 내려놓는 위치, 긴 머리카락이 목에 닿을까 싶어 직접 뒤로 넘겨주기도 했고, 검사가 종료되면 어떻게 하라는 절차 및 요령을 충분히 설명하였다. 결국은 그냥 내 감정이었던 것이다.
시간에 맞춰 간다고 생각했으나 다른 진료를 잊고 있었고, 그러므로 해서 대기가 길어짐에 짜증이 났던 것이다. 초음파 검사는 비급여로 이래저래 30만 원의 병원비가 발생함에 내 짜증은 급격히 증가되었던 것이다.
병원이라는 특별함으로 그곳을 찾는 환자에게는 웃음이 있기는 어려워도, 일하는 간호사는 그저 일터일 뿐인데 너무 내 감정을 실었다. 알아차림이 있었던 하루였으니 좀 더 내 안의 여유로움을 다음에는 좀 더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