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함을 말하는 용기

by 소소한 특별함

과도한 자부심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 공감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나르시시트라고 한다. 나는 그런 특성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였다.

경험 측에 그들은 상황에 따라 자기들의 입장을 수시로 바꾼다. 그러나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논리적이다.

지금에 와서 단어로 표현하면 그들은 자기중심적 사고가 짙은 나르시시즘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하였지만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점점 그들의 부당함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지만 일하면서 그들에게 수긍하던 나의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을의 위치였기에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나도록 주먹을 꽉 움켜쥐며 견뎠다.

시간이 지난 나는 그 집단을 나와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은 같은 계열의 사람들이 등록된 협회였기에 사람들의 특성은 같았다. 다만 차이는 그들 중 하나가 나를 직접 고용한 형태가 아니었다. 나는 한 지역을 담당하는 사람이었고, 그 지역을 총괄하는 책임자는 따로 있었다. 문제는 이 책임자가 아주 전형적인 자기밖에 모르는 전통적인 나르시시트라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nature-3302773_640.jpg 사진 : 픽사베이

본인의 직원에게도 하지 못할 만큼 무례했지만 본인이 무례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수 앞에서는 사람 좋은 듯이, 매너 좋은 듯이 하는 이중적인 모습에서 나의 태도를 바꿔야 함을 인지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그 사람의 고용인이 아니기에 주장할 수 있었다.

처리할 수 없는 일을 당연하게 고유하는 것과, 수행비서는 물론 의전까지 요구하는 부당함을 얘기했다. 같은 일도 20번쯤 돌고 돌아 결국 원점이 되는 업무처리에 대한 효율도 따졌다.

같은 집단안에서 일을 하면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나의 행동이기에 내 가슴이 쿵쿵쿵 뛰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지만 나는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나를 지키기로 했다.

그는 누구도 본인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그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는 나에게 웬만한 일은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업무시간 이후 낙서장처럼 쓰이던 카톡도 현저히 줄어들었고, 퇴근 시간 이후 걸려오는 전화에 무응답을 함에 있어 불만스럽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몹시 불편한 사람이 되었고,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권력을 이용해 나에게 협박을 하였다. 내가 용기를 내는 동안 나의 위치와, 그 책임자의 위치가 명확함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기에 협박은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미움받을 용기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감당해야 했다.


의도하고 연습의 장으로 삼았기에 내가 얻은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평정심을 끝까지 유지했어야 하는데 중간에 너무 감정적으로 나왔다는 것.

좀 더 부드럽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배웠다.

이것을 계기로 그동안 방관하고 있었던 나에게 '괜찮다' 말할 수 있었고, 나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부당함을 말하는 용기를 낸 나에게 격려를 해주었다.


용기를 낼 수 있음에 마음속에서 지침서처럼 남아있던 셰릴 샌드버그의 'LEAN IN(린인)'을 통해 여성들이 불리한 조건에서도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사례로 보여주었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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