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어주는 자의 중요함
어제 왠일로 항암하고 날밤을 안샜다.
우여곡절끝에 항암을 마치고 그저 항암을 했다는 안도감에 노량진에 가서 새우랑 꽃데를 배터지게 먹어서 그런가. (새우발? 꽃게발?)
노량진 수산시장은 몇년만에 간듯하다.
리모델링 되기전에 가고 첨 간듯..
1층서 신랑은 민어참치회를 주문하고 나는 새우랑 꽃게(날것은 항암중에 못먹으니) 사서 2층 식당에서 먹었다.
2층 식당은 해지기전에는 한강도 보이고 그러더니 해가 지니 평일 저녁 직장인들의 회식의 장이 열리더라. 가물가물 벌써 회사에서 회식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퇴원할때 항암 당일은 스테로이드제때문에 잠이 안온다고 수면제 처방을 1일치만 해주면 안되냐고 요청했다.
답은 안된대요.
직접 외래 진료할때 문의하란다.
담당 주치의는 왠만하면 처방을 안해주시는 분인걸 알아서 수긍했다. 신랑은 동네 다른 병원가서 처방 받자고 제안했지만 난 주치의 처방을 따르기로.
처음에 호중구 떨어졌을때 주치의가 운동 잘 안했어요? 말해서 뜨끔 간수치 올랐을때 뭐 먹은거냐고 물어서 뜨끔..
수면제 철분제 이런것도 일단은 항암에 방해될 요소가 있으니 꺼리시겠지.
처음엔 서운했는데 이해가 갔다. 그리고 꼼꼼하게 피검사수치를 체크하고 이상이 있으면 무조건 외래를 잡아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항암진행중에 이벤트가 많으면 결국 용량을 줄일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예후가 좋을수가 없다는 그말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말도 처음에 충격이었지만 지금은 고맙게 느껴지고
항상 진료마칠땐 파이팅하자고 손등을 부딪치는데 그거에 힘이 난다. 이대목동 문병인 원장님. 그분이 이끄는 덕에 반절까지 라도 겨우겨우 온듯하다.
이끄는 자의 단호함이 길을 계속 가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귀가 얇고 그리고 남에게 잘보이길 바라는 모범생 습성을 가진 사람은 의사의 말 한마디가 절대적이지 암.
그저 몸을 수그리게 되는 포스의 주치의를 만나서 다행이다. 수능보고 다군으로 아주대 의대를 지원했는데, 그때는 면접하는 교수들 인상이 너무 차가워서
아 여긴 안가하고(우리땐 문과라도 교차지원 가능한 대학에 다군에 아주대가 있었고 신설학교라 대우도 파격적이었다) 아주 인자한 인상을 가진 교수님들이 계셨던 설대 문과로 가서 고시공부를 했더랬지...(그뒤로 인생이 꼬이고ㅋㅋ) 만약 문교수님이 면접관이였으면 나 진로를 틀었을지도 모른다(진짜 KFC 할아버지처럼 고우시다)
남은 2차례 항암(파클리탁셀 하나만 맞는)을 진행하면 절반을 마친다. 3개월 지나고 중간검사하고 다시 남은 3개월...
어떤 고비가 찾아올줄 모르겠지만 또 헤쳐나가야겠지.
꽃게를 먹는게 어제는 너무 힘들어서 낑낑대는데 신랑이 게딱지를 다 발라준다. 왠일로. 새우도 자긴 별로 안좋아한다고 다 먹으라 하고. 내심 데이트 기분이 나서
꽃게는 데이트할때 먹는게 아니래 말하니
'우리가 데이트할 사이는 아니자나'라 대답
'큭, 그치 우리가 데이트할 관계는 아니지 남의편아.'
그래도 덕분에 단백질 배터지게 먹고 집에 늦게 귀가. 오는길에 튀김도 사와서 학원마친 애들에게 조공. 새우튀김 오징어튀김 맛집이더라.
왠일로 항암 당일 날밤도 안새고 푹 잤다.
흔들리지 않고 이끄는 자들(주치의, 신랑,엄마아빠,자식)의 소중함에 다시 한번 감사.
이젠 회복을 위해 움직이고 잘먹고 잘자는 일만이(이건 한 3개월하니 자신있다)
시험성적같은 피검사 수치를 받아들이고 어찌됐건 4-1차 항암은 마쳐서 기분이 좋다. 성적이 나쁘든 말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만 해라. 제발!!!! 9.30일 중간검사 결과 듣는 날을 위해 나머지 기간을 다시 알차게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