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문독서

지하로부터의 수기_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9

by 챙미

사실자신은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철학도 이념도 모두 경멸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가장 경멸하는 지식인이 '지하인간'으로 나온다. 읽는 내내 불편했고, 어두웠고 그러면서도 나 자신같아서

눈을 뗄수 없었던 소설. 쉽지 않게 다가온다.


도스토옙스키를 어렸을때 접했지만, 오히려 다 커서 읽으려니 힘들다. 죄와벌이랑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다시 읽어봐야하는데..맨날 실패.


p.9

나는 아픈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란 인간은 통 매력이 없다. 내 생각에 나는 간이 아픈것 같다. 하긴 나는 내 병을 통 이해하지 못하는 데다가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도 잘 모르겠다. 의학과 의사를 존경하긴 하지만 치료를 받고 있지 않으며 또 받은 적도 결코 없다. 게다가 나는 아직도 극도로 미신적이다. 뭐, 의학을 존경할 정도로 미신적이란 소리다.

아니, 나는 심술이 나서라도 치료 따위는 받기 싫다. 이런 심보를 여러분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뭐, 하지만 나는 이해한다. 물론 이 경우 이렇게 심술을 부려 대체 누구를 골탕 먹이려는지 여러분에게 설명할 재간은 없다. 의사의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그네들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아주 잘 안다. 그런 짓을 해봐야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 자신만 손해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안단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그건 심술이 나서이다. 간이 아프다면, 그 녀석 실컷 더 아파 버려라!


(매력적인 도입부..)


p.11

그나저나 여러분, 내 심술의 요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겠는가? 문제의 핵심이, 그러니까 가장 지저분한 것이 뭐냐하면 나란 놈은 심술궂은 인간도 아닐뿐 더러 심지어 악에 받친 인간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저 괜스레 참새들이나 놀래는 주제에 그걸 자기 위안거리로 삼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시시각각, 심지어 울화통이 터져 미칠것 같은 순간에도 속으로 수치스럽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p.12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 되지 못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숫제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심술궂은 인간도, 착한 인간도, 야비한 인간도, 정직한 인간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방구석에서 이렇게 연명하면서, 현명한 인간이라면 진정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오직 바보만이 뭐든 되는 법이다. 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표독스러운 위안이나 하며 나 자신을 약올리고 있다. 그렇다. 19세기의 현명한 인간은 정신적으로도 우선적으로 성격이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반면 성격이 있는 인간, 즉 활동가는 우선적으로 꽉 막힌 존재가 되어야한다. ....사십년 이상 산다는 것은 젊잖지 못하고 속되고 부도덕한 일이다.! 성심성의껏 솔직하게 대답해 보라-누가 사십년 이상 산단 말인가? 누가 그런지 내 여러분한테 말해주겠다. 바보와 불한당이 그렇게 산다.

p.15~p17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여러분, 여러분이 듣기 좋든 싫든 간에, 내가 왜 한낱 벌레조차 될 수 없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여러분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하건대, 나는 벌레가 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만한 가치도 없는 놈이었다. 맹세하건대, 여러분, 너무 많이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병, 그야말로 진짜 병이다. 인간이 일상생활을 하는데는 인간이면 으레 갖는 평범한 의식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할텐데,...

하지만 어쨌거나 굳게 확신하는바, 너무 많은 의식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어떤 것이든 의식이란 다 병이다. 그렇다고 나는 고집한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 제쳐두자. 우선 다음의 질문에 답해달라. 어째서 나는 하필이면 바로 그 순간에.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 사이에서 얘기됬던 '모든 아름답고 숭고한 것'의 온갖 미묘한 부분까지도 가장 잘 의식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바로 그순간에 그것을 의식하기는 커녕 그토록 볼썽사나운 짓거리를 하게 되는 것일까.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뭐 그러니까 어떤 짓거리냐 하면 한마디로 말해서 비록 누구나 다 하는 것이긴 하지만, 하필이면 절대 그러지 말아야 된다는 의식이 가장 강렬해지는 바로 그때 작당이라도 한 듯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는건 대체 무슨 이유에서 일까?

나는 선과 이 모든 '아름답고 숭고한 것'을 더 많이 의식할 수록 나의 진흙탕 속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었고 그러다가 그 안에서 완전히 옴싹달싹도 할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나의 내부에서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 꼭 필연인양 그렇게 됐다는 점이다. 이것은 절대 질병이나 부패가 아닌, 나의 가장 정상적인 상태인 것 같았고 따라서 마침내 나는 이 부패와 싸울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결국에는 아마 이것이 나의 정상적인 상태일 것이라고 거의 믿을 뻔했다. (정말 그렇게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쾌감은 바로, 자신의 굴욕을 너무도 선명학 의식하는데서 생기는 것이었다. 즉, 막다른 벽에 다다랐다는 것을, 이건 추악하기 짝이 없지만 달리 어쩔수가 없다는 것을, 더 이상 출구도 없고 절대 다른사람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설령 뭐든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시간과 믿음이 아직 남아있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자기 스스로 그 변화를 원하지 않을 것임을, 설령 원한다고 한들 사실상 마땅히 변할 대상이 전혀 없을테니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쾌감이 생기는 것이다.


p.19

첫째, 나는 내 주위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똑똑하기 때문에 죄인이다. (나는 나 자신이 내 주위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고 꾸준히 생각해왔고, 여러분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따금씩은 이 때문에 좀 창피스럽기도 했다. 적어도 나는 어쩐지 평생동안 먼 산만 바라봤지만 절대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끝으로, 나의 내면에 관대함이 깃들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의식할 것이고 고로 오직 내 고통만 더 커질 것이기 때문에 또 내가 죄인인 것이다. 사실 관대하다고 한들 나는 분명히 아무것도 할수 없었을 것이다. 용서조차 할수 없었을 텐데, 가령 어떤 놈이 나를 때린 건 자연의 법칙에 따른 것일진대 자연의 법칙을 용서할 수는 없잖은가. 또한 잊을 수도 없었을텐데, 제 아무리 자연의 법칙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모욕적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설령 내가 관대하게 굴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모욕한 놈에게 복수할 생각을 품더라도 나는 그 어떤 일로든 아무한테도 복수할 수 없었을 텐데, 설령 뭘 할 능력이 있을지라도 그걸 단행할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까? 이 점에 대해 특별히 한두마디 하고 싶다.


p.21

정말이지 복수를 할 줄 아는, 대체로 자기 고집을 부릴줄 아는 사람들의 경우, 예컨대 어떤 식으로 그렇게 하는 걸까? 정말이지 일단 복수심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그시간 동안엔 그들의 전 존재속에 그 감정 외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런 양반은 곧장 성난 황소처럼 뿔을 아래로 처박은 채 목표를 향해 곧장 돌진하는데, 벽이 그를 제지하지 않는한 달리 수가 없다. ...나는 바로 이런 즉흥적인 인간이 진짜 인간,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런 인간이 배알이 꼴리도록 부럽다. 이런 인간이 멍청하다는 것, 이 점에 관해선 왈가왈부하지 않겠지만 정상적인 인간은 꼭 멍청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그 까닭을 여러분은 아는가? 어쩌면 그것이 아름다울수도 있을 것이다. ...


p.24

아마 복수를 시작하긴 할 테지만 그나마도 어쩐지 띄엄띄엄, 살금살금, 패치카 뒤에서 몰래몰래 할테고, 그러면서도 자기한테 복수할 권리가 있는지, 또 복수가 성공할지에 대한 믿음도 없고, 복수를 하려고 제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자기가 그 복수상대보다 백배는 더 고통받고 상대방은 오히려 눈도 꿈쩍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미리부터 잘 알고 있다. 죽음의 침상에 누워서도 또 다시 모든 것을 기억해 내되, 그때는 이제껏 쌓여온 이자까지 덤으로 붙을 테고 또...하지만 이 싸늘하고 역겨운 반 절망과 반 믿음속에, 너무 괴로웠던 나머지 자신을 사십년간 의식적으로 지하에 생매장 한 것에, 이렇게 강렬하게 창조되었고 어쨌거나 약간은 의심스럽지만 달리 출구도 없는 자신의 상황에, 내불 들어와버린 충족되지 못한 욕망의 이 모든 독기 속에, 계속 망설이고 그러다 어떤 영원불변의 결단을 내리고 그러다 일분 뒤면 회한에 사로잡히곤 하는 이 모든 열병 속에_내가 앞서 말한 이상야릇한 쾌감의 정수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 쾌감은 너무나 섬세하고 때론 의식으로부터 너무나 자유롭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꽉 막힌 인간들, 혹은 마냥 튼튼한 신경을 가진 인간들조차도 그것에 관한 단 하나의 특성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p.26

"반항해선 안된다. 이건 2x2=4니까!. 자연은 당신한테 뭘 묻지도 않는다 .자연은 당신이 소망이 뭔지, 또 자연의 법칙이 당신의 마음에 드는지 어떤지는 관심도 없다. 당신은 자연을, 따라서 그것의 모든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벽은 어디까지나 벽이니까...등등".....이 법칙들과 2x2=4가 왠지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면, 자연의 법칙과 대수학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물론 나는 이마로 이런 벽을 뚫지 못할 테지만 정말로 그럴 힘도 없을테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것과 타협하지 않을텐데, 그 이유는 오직 나한테 돌벽은 있지만 그것을 꿇을 힘은 나한테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돌벽은 흡사 진실로 위안이 되고 진실로 평화를 위한 무슨 말이라도 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오로지 그것이 2x2=4이기 때문이다. 오, 어처구니없음의 극치로다! 모든 것을, 모든 불가능성과 돌벽을 이해하고 의식하는 것이 차라리 훨씬 낫다. 만약 타협하는 것이 역겹다면 이 불가능성과 돌벽 중 단 하나와도 타협하지 않는 것이 낫단 말이다. 그리하여 이면에도 뭘로보나 명백히 당신은 아무 죄가 없음에도, 가장 불가피하고 논리적인 결합을 통해, 돌벽에 대해서조차도 흡사 왠지 자기가 죄인이라는 영원한 주제에 매달려 가장 혐오스러운 결론에 도달한다. 그 결과 말없이 무기력하게 이를 갈고 음탕하게 관성 속으로 침잠하여 성질을 부리려고 해도 사실 그럴 상대가 통 없다는 몽상에 젖는다. 정말 그럴 상대가 없다. 어쩌면 영영 없을 것이다........이렇게 통 영문을 모르겠고 속임수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어쨌거나 아프고, 영문을 모르면 모를수록 더욱더 아픈 것이다!.


p.48

인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가 누구든 간에 절대 이성과 이익의 명령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길 좋아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할 수 있고 이따금씩은 꼭 그래야만 한다. 자기 자신의 의지적이고 자유로운 욕망, 아무리 거친 것일지라도 여하튼 자기 자신의 변덕, 이따금씩 미쳐버릴 만큼 짜증스러운 것일지라도 여하튼 자기 자신의 환상, 이 모든 것이 바로 저 누락된 이익, 즉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고 모든 체계와 이론을 끊임없이 산산조각 내 버리는 가장 유리한 이익인 것이다. 대체 무슨 근거로 저 모든 현자들은 인간에겐 뭔가 정상적인 욕망이, 뭔가 선량한 욕망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일까? 무슨 근거로 인간에겐 반드시 합리적으로 따져 유리한 욕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상상했던 것일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독립적인 욕망 하나 뿐이다. 이 독립성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든,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간에. 거참, 대체 욕망이라는게 뭔지....


p.52

여러분은 계몽되고 지적으로 성숙한 인간, 한마디로 말해서 미래의 인간이 될 그런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뭘 욕망할리는 없다, 이건 수학이다, 하고 나에게 반복해 주는군.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말로 수학이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백번째 반복하거니와, 인간이 그냥 어리석다 못해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을, 심지어 자기에게 해로운 것을 일부러, 의식적으로 바라는 경우가 한번, 정말 딱 한번은 있다. 다름 아니라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을 바랄 권리를 갖기 위해 오직 현명한 것 하나만 바랄 의무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다. ...여러분, 인간이 어리석지 않다고 치자. 하지만 어리석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어쨌거나 괴물처럼 배은망덕하다! 이례적일만큼 배은망덕하단 말이다. 내 생각으론 심지어,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는 두 발로 걷는 배은망덕한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아직 전부는 아니다. 이것도 아직은 인간의 주된 결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주된 결함은 바로 지속적인 부정, 즉 대홍수부터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시기에 이르는 인간의 운명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 부정이다.


p.60

인류가 지향하는 지상의 모든 목적은 오직 목적 달성을 위한 이 끊임없는 과정에, 달리 말해 삶 자체에 있는 것이지, 어차피 2x2=4가 될 수밖에 없는 목적 자체에, 즉 공식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2x2=4는 이미 삶이 아니라, 여러분, 죽음의 시작이 아닌가. 적어도 인간은 늘 어쩐지 이 2x2=4를 두려워해 왔지만 나는 지금도 두렵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희극적으로 생겨먹었다. 또 이 모든 것에는 명백히 말장난이 들어 있다. 하지만 2x2=4는 어쨌거나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이다. 2x2=4는 내 생각으론 정말로 뻔뻔스러움의 극치일 따름이다. 2x2=4는 양손을 허리에 대고 젠체하듯 여러분을 바라보고 그렇게 여러분의 길을 가로막고 선 채 거드름을 피우며 침을 뱉는 것이다. 2x2=4가 훌륭한 녀석이라는 점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이것저것 다 칭찬할 바엔 2x2=5도 이따금씩은 정말 귀여운 녀석이 아닌가.


p.68~69

결국, 여러분,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차라리 의식적인 관성이 낫다!. ...맹세코, 여러분, 나는 지금 내가 휘갈긴 것 중 한 마디, 단 한마디도 믿지 않는다!. 즉,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이와 동시에 내가 갖바치처럼 어설프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영 찜찜하다. ...

여러분은 경멸스럽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나에게 말할테지. "당신은 삶을 갈망하고 있으며 당신 스스로 인생의 문제들을 뒤엉킨 논리로 풀어보려고 하는 거요. 당신의 행동거지는 정말 끈덕지고 뻔뻔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겁은 또 얼마나 많은지! 당신은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그 헛소리에 만족하고 있소. 뻔뻔스러운 소리를 지껄이면서도 그때문에 끊임없이 겁을 집어먹고 용서를 구하잖소.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견해가 궁금해서 아첨을 하고 있구려. ....당신의 내면에 진실은 있지만, 그 내면에 순결함은 없소. 당신은 아주 시시껄렁한 허영에 사로잡힌 나머지 괜히 과시하기 위해 당신의 진실을 시장 바닥에 내놓고 치욕을 자처하는 거요...


p.73

즉, 무엇을 위해서, 도무지 왜 나는 쓰고 싶어 하는 것일까?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모든 걸 종이에 옮겨 적을 것도 없이 그냥 머릿속에서만 회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긴 하다. 하지만 종이에 쓰면 어쩐지 더 웅장해질 것 같다. 이렇게 하면 뭔가 뇌쇄적인 것이 있고 나 자신에 대한 심판도 더욱 엄중해질 것이며, 나름대로 문체도 덧붙여질 것이다. 그뿐인가. 어쩌면 이렇게 기록하는 동안에 정말로 마음도 좀 가벼워질것이다....

끝으로, 나는 심심하다. 나란 놈은 도무지 하는 일이 없다. 뭘 기록한다는 것은 정말 일인 것 같다. 일을 하다보면 사람은 착하고 성실해진다고들 말한다. 자, 그렇다면 적어도 좋은 기회가 온 셈이다.


p.85

집에 있을때 나는, 첫째 책을 제일 많이 읽었다. 나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모든 것을 외적 감각으로 억누르고 싶었던 것이다. 외적인 감각 중 그나마 나한테 가능했던 것은 오직 독서 하나뿐이었다. 독서는 물론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 흥분에 들뜨기도 하고 달콤함에 젖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론 끔찍할 정도로 지루해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몸을 움직이고 싶었기에 나는 갑자기 어둡고 추찹한 지하의 방탕, 아니 방탕 나부랭이에 빠져들었다. ...


p.216

값싼 행복과 숭고한 고뇌 중 무엇이 더 나을까? 과여 무엇이 더 낫겠는가? ....이 '수기'는 여기서 끝내야 되지 않을까? 내 생각으론 이런걸 쓰기 시작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 적어도 나는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부끄러웠다. 다시 말해 이것은 문학이 아니라 교도감화를 위한 징벌이다. ....소설에는 주인공이 필요한 법인데, 여기서는 일부러 反주인공에나 걸맞는 특성만 몽땅 모아놓았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불쾌한 느낌을 준다는 점인데, 이는 우리 모두 삶으로부터 유리된 채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너나 할 것없이 다 절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나 많이 유리되었는지 진짜 '살아있는 삶'에 대해서는 때때로 어떤 혐오감마저 느끼고 또 이 때문에 누가 우리에게 이걸 상기시키면 도저히 참을수 없어진다. ...

...이래놓고서도 이 역설가의 '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결국 참지를 못해 계속하여 더 써나갔다. 하지만 우리 생각에도 여기서 그만 마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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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난히 울렁거림이 심해서 여기서 나도 마쳐야할거 같다. 꼭 항암하고나서의 느낌으로 읽어내린 책이다. 울렁울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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