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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 항암 지연

호중구가 뭐길래.

by 챙미

흔히들 14일의 기적이라고 까페에서는 탈모를 부른다.

첫항암이 시작한지 14일이 지나면

머리카락이 미친듯이 빠진대서, 다들 14일을 카운트하고. 사전에 쉐이빙을 하라는 조언의 글도 많다.

버티고 버텨봤자 어차피 빠질거니까 미리 쉐이빙을 하는 것이 부작용 예방에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말이 쉽지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부작용중에 탈모만은 안생기기를 바라면서

항암패스를 기대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나 역시 밤새서 항암패스 사례만 검색했으니까.

선항암이 결정나고 난 이후는 가발, 탈모 이런것들만 검색하며 어떻게 대머리를 피할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유방암은 100% 탈모가 와요. 표적항암이든 면역항암이든 기존 세포항암이랑 병용해서 하기때문에 탈모를 피하기는 힘듭니다. 근데 암치료가 급하지 항암하다보면 탈모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알거에요'

그래도 위로가 안된다.

첫 항암을 하고 14일이 되기전에, 쉐이빙을 하면 좋다고는 하지만....(그떄 가발도 맞추고 머 모자도 사라고 하더라) 나는 미용실에 들어가서 그냥 숏컷을 해달라고 헀다.

아직 머리도 빠지지 않던 때라 쉐이빙이란 말은 하기가 싫었다.


점원이 '숏컷은 관리를 잘해주셔야하는데..." "어느정도로요?" "아주짧게 잘라주세요"

"왜요? 그렇게 많이 더우세요?"

..."아 저 항암하고 있어요"

점원이 결연한 표정으로 네! 하더니 바로 잘라준다.

어색하게 잘려나가는 머리. 그래 이참에 숏컷도 해보는거지 머.


내심 그래도 두상이 이쁘고 김고운 같을지 몰라 기대했지만, 자르고 난 뒤에 거울속엔

전창조 한명이 서있었다. 음. 잘생긴거네 전창조도.

ㅋㅋㅋ

어색한 상태에서 14일의 기적을 보내고도 나는 머리가 한동안 그대로였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일찍 잘랐냐 한마디씩할정도로

그러나 것도 잠시 21일, 28일이 지나자 머리가 한웅큼씩 빠져댔다. 머리를 감으면 빠진 머리카락이 하수구를 막을 정도였다. 신기하다 어쩜 이렇게 우수수 떨어지지. 청소를 하다 가족들한테 미안해질 정도로 빠져댔다.

그러던 중 항암하러가서 나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는다.


채혈실이 문을 여는 7시 병원에는 사람들이 드글드글하다. 줄서서 피를 뽑는 광경은 항암을 시작하고나서 처음 보았다. 그렇게 우르르 줄을 선채 피를 뽑고 피검사를 보내고, 그 수치가 통과되어야 낮항암을 할 수 있다. 나는 1,2차까지는 먼지도 모르고 진행해서 피검사를 통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3번째 항암을 하러 갔을때, 간호사분이

'호중구수치가 안되서 오늘 항암 못하세요.'라 했을때 얼마나 놀랬는지. 네? 그럼 오늘 머해요?

'영양제 맞고 가실래요?' .....


원래 3천대였던 호중구 수치가 900까지 떨어졌댄다. 이때부터 미친듯이 호중구 수치를 검색했다. 대체 어쩌라는 거지? 몸 컨디션은 괜찮았는데.


호중구란 백혈구의 종류로 면역기능을 담당한다.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박테리아처럼 병원체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면역반응을 활성화하고 염증을 유발하여 감염을 방지하는 체내작용을 유도한다.

ANC는 호중구 수치를 의미하고 정상범위는 1500~8000UL사이에 있다. 호중구 수치가 낮다는 것은 면역수준이 저하된 상태로 감염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상태라는 뜻이다. 세포독성 항암제는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도 공격을 하고 골수에 직접 영향을 끼쳐 호중구를 포함한 혈액 세포의 생성을 억제하게 된다. 주로 약물투여 1~2주사이(7일~14일) 호중구 수치가 떨어지고 그 이후 2~4주동안 골수기능이 회복하여 정상화가 된다고 한다.

호중구수치가 떨어져서 항암을 미루게 되면 항암 효과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고 이후 추후 전이와 재발률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칠수 있다고 한다.

2-1차 키트루다를 포함한 3가지 항암제를 맞으러 입원했을때 호중구 수치가 800정도여서, 호중구를 높히는 주사(류코스팀)를 전날 맞았었는데, 밤새 출산시 느꼈던 진통의 고통을 느낀적이 있었다. 밤새 진통을 느낀 후 다음날 아침 피검사를 하니 2,900대로 올라서 그날은 항암을 진행하고 퇴원을 했었는데 한주 사이에 또 900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영양제를 맞고 호중구 올리는 주사를 맞고 퇴원을 하고 다음날은 외래가 잡혔다. 2시간 정도 기다려서 만난 담당 의사는 표정이 심각했다.


'운동 땀 흘려서 했니?' '젊은데 왜 이러지?' 몇가지를 물은 후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이벤트가 많이 발생하면 나는 용량을 줄일수 밖에 없고 용량을 줄여서 예후가 좋은 경우가 잘 없어.'

맙소사, 이게 그렇게 심각한거였구나. 진통같은 고통이 수반되는 것을 경험해서 다시는 맞고 싶지 않았던 호중구 주사를 얼렁 맞고 싶어졌다. 오늘 맞고 가나요? 주사를 맞고 집으로 다시 빠꾸.


그 주 매일매일 병원을 갖기만 호중구 수치는 더 떨어지기만 했다.

130, 주사 맞고 270, 400 택도 없는 수치때매 결국 그 주는 항암 포기 다음주에 다시 가기로 하고 집으로 왔다.


나는 호중구로 고생한 사례를 다 검색했다.

카페에서는 매끼 100그람 이상의 단백질, 검은 점이 생긴 바나나, 추어탕, 닭발곰탕, 장어탕 등을 추천했다.


신랑은 덥다고 밖에서 걷기운동을 안해서 그런거 같다고 분석했다. 니가 걷기 운동을 밖에서 안하고 집에서 실내자전거만 탄뒤로 호중구가 떨어진거 같다고.

저녁밥을 먹고 산책을 꼭 하자고 제안해서 그것도 같이 했다. 호중구가 낮을때는 누군가 뒤에서 잡아끄는 느낌이 들고 기운이 없는데 숨이 차도록 걸으니 혈액이 돌고 기운이 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걸을때마다 먼가 골수가 열일하는 착각도 들어서 올라라 호중구! 기도하며 꾸역꾸역 고기를 먹고 산책을 했다.


아프기전의 나는 술안주로 먹을때나 과식을 하지 끼니는 먹는둥 마는둥하고 간식이나 먹어댔다. 지금은 매끼 호중구에 좋다는 것을 챙기는라 바쁘다. 항암 전날 추어탕은 루틴이 되었고 이제 사장님은 우리 부부만 가면

응 수제비 추어랑 송담 하나지? 라고 단골 손님 대접을 해주신다


신랑은 먹던 것만 잘 먹는다. 반면 나는 같은 음식을 또 먹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처음에 연애했을때 학교앞 분식집(딸랑 분식)의 제육을 먹으러 다녔었는데, 한 한달 정도를 뭐 먹을까? 얘기하면 신랑은 딸랑? 딸랑 제육?이래서 나중엔 내가 버럭 화를 낸적도 있다. 그만 먹어. 딸랑.

양꼬치에 빠졌을땐, 양꼬치나 먹을까? 소리를 한달도 넘게 했었고..그때도 토나올거 같다 생각을 하며 그래 가자 하고 먹은 기억이다. 요새 신랑은 추어탕 먹을 타임이야.라 말하고 나는 그..래 하고 따라간다. 같은 메뉴 먹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항암도 잘 받을 것 같다.


카페에서의 여러팁과 함께

나는 숨이 차고 땀이 날 정도의 야외활동이 호중구 수치에 좋다는 것을 체감했다.

항암 지연을 겪었던 7월과 달리 내 운동시간은 8월에 현저히 늘어났고

땀이 나도 혈액이 돈 뒤로는 호중구가 밀리는 일은 아직까지 안일어났다.

런데이라는 앱을 깔고 뛰다 걷다도 반복하는데 은근 재미도 있어서 요새는 매일 운동을 나가고 있다.

한때 130까지 떨어졌던 호중구는 요새는 130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항암을 하고 온날과 다음날은 스테로이드제 효과로 생생하고(그래서 불면증을 겪고) 3일차에 확 가라앉을때 단백질을 때려넣고(장어, 소고기 뭐든) 기운을 차려서 그 기세로 운동을 하고

그러고 일찍 자는 걸 루틴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충분한 단백질, 충분한 잠, 충분한 움직임이 항암 부작용을 이긴다고 생각한다. 숨이 차면 공기중이 산소가 몸안에 들어와 혈액을 만든다 생각한다. 50이 다 되가는 나이에

요새 유행하는 슬로우런닝을 하며 나도 할수있다라는 만족감을 느낀다.


항암을 받아야한다는 사실이 끔찍히도 싫었던 때와 달리 요새는 항암만 받을수있어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렇게 나는 3-3차 항암까지 마친 상태이다.


앞으로 무슨 고비가 있을지 감은 안잡히지만 그 고비도 호중구처럼 넘겨야겠지. 그래야 내가 살아남을수 있으니까.


(아 중간에 닭발즙과 영양제 과다 섭취, 수면부족에 감정낭비로 간수치가 폭등해

항암이 지연될뻔 한적도 있구나. 간수치는 내려야하고 호중구는 올라야한다. 간수치때문에도 항암이 밀린사례가 많아서 놀랬다. 다행히 지금은 괜찮아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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