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ers Emblem「휴먼 포지션」| 독서 건강 수첩 006
올해도 빠르게 지나고 어느덧 12월이 되었습니다.
연말연시라고들 하지만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용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토의 단풍은 기온이 내려가 한층 더 추워진 이 시기에 가장 아름다워집니다. 저에게 있어 겨울의 교토는 부드러운 빛과 멀리 보이는 하늘이 정말 편안하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세상이 마치 파스텔톤으로 물든 사진집처럼 느껴지고, 그 이미지에 몰입하는 시간이 무척 평온하게 느껴집니다.
그럴 때 문득 영화를 보고 싶어 졌습니다.
근처에 있는 데마치자(出町座)는 언제나 제 취향에 꼭 맞는 영화를 상영해 줍니다. 이날도 무심코 검색해 보니, 어딘가 애수 어린 분위기가 풍기는 작품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건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스트레이트 포토와 같은 영화"였습니다. 상영이 끝난 후 손에 든 팸플릿조차 사진집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여백을 느끼게 하는 듯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공식 사이트에서는 이 작품을 "말없이 메시지를 전하다"는 슬로 시네마로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읽는 독서의 일환으로 감상을 기록해두고 싶어 졌습니다.
영화 사이트의 줄거리를 인용합니다.
노르웨이의 올레길. 이곳은 깊은 말로 둘러싸여 있고, 형형색색의 외벽을 가진 건물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항구 도시입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지금은 백야의 계절입니다. 이 시기에는 태양빛이 이 도시의 바다와 초록을 한층 더 아름답게 비춥니다.
아스타는 이 도시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질병 치료를 위해 잠시 떠나 있던 지역 신문사 기자로 복귀하게 된 그녀. 비록 계약직이지만 복귀가 결정되었습니다. 아직 마음과 몸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감각은 곧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예전의 직장으로 돌아갑니다.
아스타와 함께 사는 것은 병으로 약해진 그녀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와, 집을 작업실 삼아 낡은 의자를 수리하는 가장 사랑하는 파트너 라이브입니다. 특히 라이브와의 사소한 대화와 함께하는 평온하고 느긋한 시간은 지금의 아스타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입니다.
어느 날, 라이브는 신문에 실린 기사를 눈여겨봅니다. 그것은 '노동법 위반으로 난민 신청자가 강제 송환되다'라는 작은 기사였습니다. 그 내용이 신경 쓰인 아스타는 다음 날, 기사를 담당한 기자에게 연락을 취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아스타는 의자에 앉아 어디론가 멀리 시선을 두며 뭔가를 생각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신문 기자로서 복귀하여 서서히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며 사람들의 일상을 엿봅니다. 영화 속에서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스타는 주말이면 여자 친구와 고양이와 함께 영화를 보거나 요리를 하고, 가볍게 음악을 들으며 조용한 시간을 공유합니다.
영화에 묘사된 일상은 열기로 가득한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푸른 분위기입니다. 아무렇지 않은 나날들이 스냅숏처럼 흘러가며 부드러운 색감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한편, 어디에도 완전히 스며들지 못하는 거리감도 감돕니다. 영화와 관객 사이, 아스타와 파트너 사이, 아스타와 일 혹은 사물 사이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동반하면서도 어디선가 안락함을 가져다줍니다.
이러한 독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아스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작성해 나갑니다. 신문 기자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난민 신청자가 강제 송환되었다'는 짧은 기사에 주목합니다. 그 주제를 깊이 파고들며 그녀는 또 다른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아스타의 일상과 발걸음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배우 야쿠쇼 코지(役所広司)가 연기한 평화로운 생활과도 통하는 부분이 느껴집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대사에서도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히라야마는 화장실 청소라는 평범한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거리감으로 사회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사진으로 담고 싶어지는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 히라야마는 자신만의 속도로 작은 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로 돌아와 『휴먼 포지션』의 아스타는 '난민 신청자가 강제 송환되었다'는 주제를 더 깊이 취재하며 후속 기사를 작성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탐정 이야기처럼 극적으로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이 움직임조차 절제되게 묘사하며, 여전히 담담한 일상의 틀 속에 담고 있습니다. 아스타는 기자로서 갈등하며 한 걸음씩 이야기를 모아나 가는 과정을 천천히 진행합니다.
사진과 사진을 이어 붙인 듯한 이 영화를 '스트레이트 포토적'이라고 느낀 이유는 몇 가지 트리거들이 흩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피부색을 가진 연인', '여자 친구의 존재', '제왕절개를 연상케 하는 아스타의 복부의 흉터', '언덕이 많은 도시 풍경', 그리고 아스타가 묵묵히 진행하는 '난민 신청자의 강제 송환'이라는 주제에 대한 취재. 이 모든 요소들이 조용히 관객에게 질문을 던져옵니다.
영화는 '소수자로서의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거나 문제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스타가 그러한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점은 그녀의 직업 자체에서 나타납니다. 영화는 소수자를 소수자로서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그들이 섬세한 거리감 속에서 천천히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희망을 담은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서 소중한 존재라고 느껴집니다. 분열이나 대립을 부추기는 대신, 상처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치유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조용히 그려지고 있습니다.
영화 속 아스타의 여자 친구가 부르는 노래를 꼭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이 영화가 가진 독특한 온도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제가 일본에서 생활하며 일본어로 집필한 독서 소감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기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함께 실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작은 힘이 된다면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