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썼던 글
물고기는 헤엄치고, 물고기는 생각해. 저 수면 위엔 분명 지상낙원이 있겠지. 물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뭍 위로 떠오르는 물고기는 육지로 올라가 따스한 태양과 함께하겠지. 그들은 그렇게 물밑에 고루 퍼지는 햇빛을 믿으며 사는 거야. 그 빛이 얼마나 뜨거운지도 모른 채.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에게 낚싯줄은 신의 동아줄일 거야. 그들은 구원을 좇아 어선의 빛에, 어부의 손길에 몸을 맡긴 거야. 너희가 진심으로 구원을 믿는다면, 그 행위 자체가 너희에겐 나름대로의 구원이겠지.
나는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온전히 건강한 인간은 갓난아기와 바보, 그리고 바이킹뿐이라고. 현실을 담보로 사후를 사는 자들. 이 결과론자들에게 삶은 그저 과정일 뿐이야. 쓰린 개념은 모두 저마다의 발할라에 처박아 두고, 무엇이 그리도 신나는지 앞으로... 또 앞으로... 곧게 나아가. 그들은 구원에 도달하지 못할지언정, 구원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라도 느껴 보겠지.
허나, 결국 뭍으로 올라간 물고기는 그 뜨거운 열기에 숨이 멎을 거야. 이카로스의 날개가 불에 타 꺾인 것처럼, 그곳에 구원은 없어. 구원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이 아니야. 그건 붉은 실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의 새끼손가락에 묶여 이어져 있어. 머리카락처럼 아주 얇게, 그래서 혹여 바람에 날려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그것은 과정 안에 있어. 물고기는 바다에서 구원을 찾아 마땅하고, 우리는 이 허상 같은 삶 속에서 저마다의 안식처를, 진정한 발할라를 찾아가는 거야. 거긴 우뚝 선 들판 위의 오두막처럼 안락하고 평화롭지 못할 거야. 우리는 그 전쟁 같은, 전사들의 발할라에서 구원을 찾을 숙명이고, 그게 이 세상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이 지독한 불치성 정신병에 듣는 유일한 약이야.
내가 그곳에 도달하는 그날, 널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그저 멋쩍게 짓는 작은 미소로 모든 말을 대신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