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속에서 흰수염고래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죽어가는 고래는 2톤이나 되는 혀와
자동차만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나래이터는 말한다
자동차만한 심장,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도 있는 심장.
나는 잠시 쓸쓸해진다.
수심 4,812미터의 심연 속으로 고래가 가라앉으면서
이제 저 차 속으로 물이 스며들고
엔진은 조금씩 멎어갈 것이다. 그때까지
마음은 어느 좌석에 앉아있을 것인가.
서서히 죽어가는 고래가
저 심연의 밑바닥으로 미끌어지듯이 가 닿는 시간과
한 번의 호흡으로도 30분을 견딜 수 있는 한 호흡의 길이
사이에서, 저 한없이 느린 속도는
무서운 속도다. 새벽의 택시가 70여 미터의 빗길을 미끄러져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를 무서운 속도로 들이받던 그 순간
조수석에서 바라보던 그 깜깜한 심연을,
네 얼굴이 조금씩 일렁이며 멀어져가고
모든 빛이 한 점으로 좁혀져 내가 어둠의 주머니에
갇혀가는 것 같던 그 순간을,
링거의 수액이 한없이 느리게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지금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음아, 너는 그때 어디에 있었니.
고래야, 고래야 너는 언제 바닥에 가 닿을 거니.
그가 의식을 잃어가는 순간에 난 옆에 있었다. 눈이 퉁퉁 부어 눈동자가 흐릿하고 얼굴이 잿빛이고 검버섯이 많고 복수가 차 배가 불룩하고 팔다리가 가늘었다. 마지막일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한순간 그는 쓰러졌다. 구급차가 오기 전에 숨의 온기가 차가워졌다. 가슴을 누르는 커다란 두 손에 갈비뼈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 그의 마음은 어디에 있었을까.
‘어둠의 주머니에 갇혀’ 버린 그에게
그것을 곁에서 지켜본 나는
고래는 머리가 부서져도 심장은 며칠을 뛴다고 했다. 몸이 커 죽음도 그렇게 서서히 다가온다. ‘미끄러지듯이 가 닿는’ 죽음과 ‘언제 바닥에 가 닿을’지 알 수 없는 죽음이 나란히 가라앉고.
택시가 무서운 속도로 미끄러져 벽에 부딪고 엔진은 가라앉는다. 그 순간, ‘네 얼굴이’ 고래가 가라앉는 시간처럼 ‘조금씩 일렁이며 멀어져’ 간다. 죽음이 비껴가고, 죽음 앞에 서 있었던 시간과 죽어가는 고래의 시간이 ‘느리게 떨어’ 진다. 죽다가 살아난 것. 그 순간을 영원처럼 느끼는 것.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제 죽었다 싶을 때, 마음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앉아 있을까.
사람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살다가 저마다 다른 죽음을 맞는다. 죽음이 아득하다고 느끼는 마음과 내일이라도 금방 죽을 것 같은 마음이 혼재한다. 술자리에서 친한 형이 말했다.
- 내가 물어봤지, 넌 어떻게 그렇게 자유롭게 사냐? 이러는 거야. 정말 내일 죽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니 자유롭게,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지! 그때부터 그놈이 내 삶의 선생이 되었어.
마음은 어느 좌석에 앉아 있을 것인가.
암에 걸린 사람에게 의사가 말했다. 언제 죽을지 아는 것도 복이라고.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가지라고. 그 사람은 서서히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제 모습을 보며 제 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가라앉는 무서운 속도를 느끼고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아왔는지 두리번거릴 수도 있다.
그는 죽음을 직감하고 치료를 거부하고 마지막 순간엔 어둠이 무서워 응급실로 가자고 했었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서서히 가라앉던 몸은 한순간 바닥에 가 닿았다. 어느 순간에 죽음을 거부하고 싶었던 걸까. 어느 시인은 암 투병을 하며 마지막 시집을 완성하고 어떤 이는 자기가 죽고 나서의 일을 적은 유서를 고쳐 썼다.
사람은 어쩌면 ‘수심 4,812미터의 심연’에 빠져 서서히 가라앉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서운 속도’로 서서히 ‘어둠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필멸. 그때 당신은 어디에서 당신의 마음을 찾을 것인가.
그때까지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