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을 빌려, 6]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시집 『촉진하는 밤』(김소연)

by 검은개

*너는 접시에 누워 있었다

엎드려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죽음 느끼며 얼굴을 접시에 묻고

좌우를 번갈아 응시하며

충혈된 눈으로 살 방법을 궁리할 때

그가 접시 테두리에 서서 너를 겨냥하고 있었고

그는 미끄러져 너의 옆에 공포를 안고 누웠다

너는 그를

그는 너를

죽이겠다 죽여버리겠다 그게 내가 살 방법이다

뒹굴고 할퀴고 밀치고

네가 작은 칼로 그의 심장을 찔렀을 때

너는 이제 살았다고 느꼈다

파르르 죽기 직전에 떨리는 그의 진동을 느끼며

숨 쉴 수 없어 폐를 쥐어짜는 그의 고통을 느끼며

저만치 떨어져 지켜보았다


어제는 너의 친구가 죽었지

접시에 부은 뜨거운 물에 몸이 불타서

어제는 너의 친구의 친구가 죽었지

접시에 떨어진 칼에 몸이 찢겨서

어제는 너보다 어린아이가 죽었지

접시에 고인 물에 빠져 몸이 하얗게 변했지


저만치 지켜보던 너는 그에게 다가가

피 나는 심장을 천으로 덮으며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접시에 고인 물을 천에 담아 입에 넣어주고

피로 얼룩진 얼굴을 천으로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그의 가슴에 너의 얼굴을 묻고

너의 두 팔로 그의 어깨를 감싸고


접시에

너는 그와 누워 있었다



*「접시에 누운 사람」(김소연)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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