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촉진하는 밤』 (김소연)
*응, 듣고 있어
너는 나를 다그쳤다
제발 내 말을 듣고 있는 게 맞냐며
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고 있냐며
나를 노려보며 한쪽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키우던 병아리가 죽은 후이다
개가 달려들어 순식간에 방 안의 병아리를 잡아먹었고
난 개를 발로 차며 왜 그랬냐고, 소리 질렀다
사랑이 뭔지 몰랐던 때의 일이다
정말 듣고 있어
왜 듣고 있다는 말만 하고 다른 말을 하지 않는지
나에게 그렇게 할 말이 없냐며 평소에서 넌
응, 그래, 알았어
그게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아냐며
너는 나머지 한쪽 눈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슬픔이 두 배가 된 것 같았다
지금 나는
너의 말에 말을 하지 않고
한없이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 방문을 열어두지 말아야 했다
너의 말은 어려웠다
알아차릴 수 없는 감정선으로 복잡하게 그린 추상화 같았다
멀리서 보면 형태를 알 수 있을까
거리를 두면 너는
나를 앞으로 당겨서 다그쳤다
미술관에 혼자 가서
뭔지 모를 그림을 앞에서 오래 서 있었고
결국 가까이 다가가 그림의 설명을 보았으나
너는 이미 멀리 떨어져 있었다
병아리가 죽는 일이 반복되었다
개가 잡아먹고 고양이가 잡아먹고 족제비가 잡아먹었다
사랑이 뭔지 몰랐던 때에도
사랑이 뭔지 알 것 같았던 때에도
알 것 같아서 죽고 싶었던 때에도
그래도 살아갔던 때에도
병아리는 죽어갔다
말을 잃은 나를 보며
헤어지는 너의 말에 나는
응, 그래
또 병아리가 죽었다
*「그렇습니다」(김소연) 첫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