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을 빌려, 7] 네가 또 죽었다

시집 『촉진하는 밤』 (김소연)

by 검은개

*응, 듣고 있어


너는 나를 다그쳤다

제발 내 말을 듣고 있는 게 맞냐며

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고 있냐며

나를 노려보며 한쪽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키우던 병아리가 죽은 후이다

개가 달려들어 순식간에 방 안의 병아리를 잡아먹었고

난 개를 발로 차며 왜 그랬냐고, 소리 질렀다

사랑이 뭔지 몰랐던 때의 일이다


정말 듣고 있어


왜 듣고 있다는 말만 하고 다른 말을 하지 않는지

나에게 그렇게 할 말이 없냐며 평소에서 넌

응, 그래, 알았어

그게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아냐며

너는 나머지 한쪽 눈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슬픔이 두 배가 된 것 같았다


지금 나는

너의 말에 말을 하지 않고

한없이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 방문을 열어두지 말아야 했다


너의 말은 어려웠다

알아차릴 수 없는 감정선으로 복잡하게 그린 추상화 같았다

멀리서 보면 형태를 알 수 있을까

거리를 두면 너는

나를 앞으로 당겨서 다그쳤다


미술관에 혼자 가서

뭔지 모를 그림을 앞에서 오래 서 있었고

결국 가까이 다가가 그림의 설명을 보았으나

너는 이미 멀리 떨어져 있었다


병아리가 죽는 일이 반복되었다

개가 잡아먹고 고양이가 잡아먹고 족제비가 잡아먹었다

사랑이 뭔지 몰랐던 때에도

사랑이 뭔지 알 것 같았던 때에도

알 것 같아서 죽고 싶었던 때에도

그래도 살아갔던 때에도

병아리는 죽어갔다


말을 잃은 나를 보며

헤어지는 너의 말에 나는


응, 그래


또 병아리가 죽었다



*「그렇습니다」(김소연)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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