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강아지들은 평균 수명이 15년정도 된다지만 혹시 우리집 강아지가 20년, 30년을 거뜬히 살아서 기네스북에 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15살이 넘어가고 18살이 되던 해에도 여전히 사료를 좋아하고 산책을 좋아하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내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스무살 초겨울, 14살의 차돌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았을 때도 그랬다. 어쩌면 기적이 일어나서 다시 내 품에 안기지 않을까.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도 5년은 더 나와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적이 일어났으면. 차돌이가 떠나고 얼마 되지않아 가족이 되었던 까미가 다시 내게서 떠날 준비를 할 때에도 그렇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좀 더 살아주었으면. 며칠 시름시름 앓더라도 하룻밤 자고나면 거짓말처럼 산책가자고 내 팔을 긁어주었으면. 앞으로 나의 모든 운과 맞바꾸어도 좋으니 그렇게 건강하게 살아주었으면 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기적이 필요한 순간은 그보다 더 넘치게 있었음에도, 그들이 아닌 다른 것에는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만큼 그들이 소중했다. 나를 위해 기도한 밤들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한 밤들이 더 무수했다. 결국 내게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고 그들은 지금 내 곁에 없다. 가루가 되어 조용한 나무 밑 어딘가에 잠들어있을 그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밤이다.
아득한 밤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몸이 시리다. 오늘은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길, 다시 기적을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