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누가 아닌 나일지도 몰라
"생각해보면 나를 괴롭히는 건 대부분 나인 것 같아."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내가 던진 말이었다. 이제야 깨달은 척했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하는지, 무엇이 나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지 말이다.
병원에서 상담을 받을 때에도,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할 때에도 내가 들었던 말은 '너 자신부터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그냥 듣기에는 굉장히 간단해 보이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나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면 나를 사랑하게 되는 걸까? 그래서 자기 전에 매일 거울을 보고 나에게 사랑한다 말해보기도 했다. "너는 최고야. 넌 정말 멋져. 나는 너를 사랑해." 입 밖으로 꺼내기 부끄러운 말들을 거울 속의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흘리듯 내뱉고는 마치 오늘의 숙제 하나를 끝낸 것 마냥 후련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그렇게 꽤나 어려운 숙제(?)를 하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만 한다고 해서 없던 감정이 생겨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역시 말 뿐인 사랑은 진실되지 못하다. 나에겐 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 감사일기를 써보자.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오늘 나에게 감사했던 일들을 적어보는 것이다. 매일매일 적다 보면 분명히 나에게 좀 더 애정이 생길 거야. 하지만 웬걸, 첫날부터 막혔다. 나에게 감사할 일이 없는 것이다. 웃기게도 내가 오늘 반성해야 할 일만 줄줄이 적고 있었다. 내가 오늘 또 뭘 잘못했는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후회되는 일들을 적다 보니 다음 장까지 넘어가버리기도 했다.
하루를 반성한다는 건 어쩌면 좋은 습관일지도 모르지만 과해지면 자책이 된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런 걸까. 그런 생각들은 다시 나를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런 날들이 꽤 오랫동안 반복이 됐다.
어느 날 문득 '나를 사랑하는 방법'의 첫 번째는 '꾸짖지 않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아주 사소한 것까지 끄집어내서 칭찬을 유도하다 보면 오히려 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처럼 부정적이고 자존감이 심하게 낮은 사람은 '칭찬할 만한 것이 없으니 이런 것까지 끄집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어쩌면 자책과 채찍질을 줄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어릴 때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너는 애가 왜 그러니?"
"너는 도대체 하는 것마다 왜 제대로 하는 게 없니?"
"됐다. 그만하자. 네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이런 말이 귀에 박히다 못해 가슴에 대못으로 박혔다. 엄마가 했던 저 말들이 너무 아파서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어느새 그 말들을 내가 나에게 하고 있었다. 내가 끔찍이도 싫어했던 그 말을.
어쩌면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남들에겐 관대하지만 나에게는 참 빡빡하게 군다. 아주 작은 일들에도 남들에게는 박수까지 쳐 가며 '대단하다! 멋지다!' 하는 말들을 쏟아내지만 정작 나에게는 칭찬에 박하다. 그렇게 나를 괴롭힌 것은 나였으면서 뻔뻔하게도 나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나 해댔던 것이다.
나에게 칭찬의 말이 아직 어렵고 어색하니까 우선은 꾸짖는 말부터 줄이기로 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남이어도 서러운데 나 자신이면 얼마나 더 아프겠어. 내가 괴로운 이유가 적어도 내가 되지는 말아야지. 나에게 좀 더 관대해지자. 예전에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 자신을 아주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보듬어주기로 했다. 작고 어린아이에게 함부로 말하는 어른은 없을 테니.
오늘부터 내가 거울을 보며 해야 하는 말은 다짜고짜 "나는 너를 사랑해."가 아니다.
"그랬구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이제부터 다시 잘해보면 되는 거야." 이 말의 힘이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또 몰라, 어쩌면 너무 의기양양해져서 버릇만 나빠지게 될 수도 있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