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한 달이나 지나고 나서야 결심한 것들이 있다. 새해 다짐 치고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동안의 사소한 다짐과는 달랐다. 바로 '건강 챙기기'이다. 그동안 나의 건강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어딘가 안 좋은 곳들이 많은 것 같긴 한데 뭐 크게 문제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병원에 가서 진작 치료를 받았어야 할 것들도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으면 병원에 가는 것이 귀찮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방치해두었다.
안 좋은 곳들을 나열하면 끝도 없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가벼운 소화불량부터 시작해서 만성 두통, 역류성 식도염, 생리불순,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한 복부비만, 나이에 비해 떨어지는 체력과 잦은 자책으로 인한 우울증 등등.. 이 많은 것들을 일일이 치료하기 위해 모든 병원을 다 다닐 수는 없고 그냥 대충 살다 죽자, 그런 생각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 데다가 돈도 없는데 무슨 병원. 병원에 가도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더라. 병원에 대한 불신도 한몫했던 것 같다.
남자 친구와 결혼 이야기가 슬슬 오고 가면서부터 어쩌면 내 몸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살다 혼자 죽을 것도 아니고 내가 누군가와 함께 미래를 그려나갈 생각이 있다면 나도 내 건강을 위해 무언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건강하게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어, 그런 생각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바로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거나 병원에 가서 자세히 검진을 받아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작년 12월 말부터 명절을 앞둔 1월 말까지 부정출혈이 끊이질 않았다. 원래 10년 넘게 부정출혈을 겪고 있었고 한 달에 2번, 많으면 3번은 5일에서 일주일 가량 부정출혈이 있었는데 이는 아주 오래전에 진단받았던 다낭성 난소증후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경구 피임약을 먹으면서 호르몬 불균형을 맞추고 생리주기를 원래대로 돌리려고 노력도 해보았으나 약의 부작용을 겪고나서부터는 더 이상 병원에 가지도, 치료를 하지도 않았다. 당장 임신 계획도 없었고 산부인과 진료는 아무리 많이 가도 적응이 안 되고 그 끔찍한 의자만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방치해두었던 부정출혈이 1월 한 달 내내 끊이질 않는 것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그제야 당장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호르몬 검사부터 자궁경부암 검사, 균 검사 등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거금을 써가며(병원의 과잉진료를 늘 불신하면서도 불안함을 끊을 수가 없었다.) 온갖 검사와 주사를 맞고 상담을 받으며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고 호르몬 불균형 문제가 있어 다시 경구 피임약을 먹게 되었다. 경구 피임약 복용 중 흡연은 혈전증이 올 수도 있어서 아주 위험하다고 한다. 살면서 금연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지만 이번엔 정말 큰맘 먹고 나의 몸을 위해 금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산부인과뿐만이 아니다. 작년 말쯤부터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 나의 우울은 다시 나를 집어삼킬 듯했다. 그렇지만 병원에 다시 가는 건 정말 너무너무 싫었다. 항우울제를 다시 복용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약에서 겨우 벗어나나 싶었는데 다시 병원에 가야 한다니. 그것만큼은 절대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진료받을 때마다 겪었던 교수님과의 끔찍한 시간, 교수님의 표정과 말투로 인해 상처받았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나에게 병원은 정말이지 도살장과 같은 곳이었다. 그랬던 내가 다시 병원을 찾았다. 집 앞에 신경정신과가 새로 생겼는데 평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찾아간 것이었다.
선생님은 여자분이셨는데 차분하고 따뜻한 음성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원래 나는 병원에서 잘 울지 않고 덤덤하게 말하는 편인데도 선생님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다정하고 따뜻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내가 다시 느꼈던 불안과 우울에 대해서 솔직히 말씀드리고 전에는 먹지 않았던 새로운 약을 처방받았다. 약만 처방받았을 뿐인데 곧 다시 괜찮아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병원을 나오면서는 마음이 든든했다.
그동안 나를 너무 방치해두었다.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안 좋은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몸은 나에게 오래전부터 아프다고 나에게 신호를 보내왔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왔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이것도 일종의 자해일 수도 있겠다. 나를 아껴주지 못한 나에 대해 크게 반성했다. 작년에 운동을 시작했다가 두 번이나 다리를 다쳐서 어떤 것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었는데 이제 가벼운 산책이나 러닝은 해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고 싶지 않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살고 싶다. 더 이상 나를 방치해두지 말아야겠다.
쓰고 보니 병원 진료 기록이 된 것 같지만, 오랜만에 타자를 두드리며 글을 쓰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렇게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분명 뭐든 좋아질 거야.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