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두부조림이 먹고 싶은 날
하루를 마무리하는 늦은 밤. 시간은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말이었는데도 아침부터 여러 가지로 바빴던 나는 조금 피곤한 상태였다. 저녁 약을 먹고 이제 씻으려는데 휴대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당근'이었다. 얼마 전에 올렸던 네이비색 카디건에 대한 알림이었다.
-팔렸나요. 지금 지하철 안인데 신림역 도착 전에 연락이 오면 좋겠네요. 지금 이대역에서 신림역으로 가고 있어요.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인사 한 마디 없이, 그것도 오늘 구매할 수 있냐는 양해의 말도 없이 다짜고짜 저렇게 메시지가 오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직 안 팔렸어요~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했다. 이제 씻고 자려고 했는데 나가야 하나. 예의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이 사람에게 팔지 말까. 혼자 고민하던 차에, 답장은 아주 빨리 왔다.
-오늘 살 수 있을까요. 지금 홍대역 지나고 있어요. 신림역으로 가거든요.
-도착하시면 몇 시쯤 되시나요?
-얼마 안 걸릴 것 같은데요. 20분 안 걸릴 것 같아요.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어요.
우리 집은 역세권이 아니다. 다시 옷을 입고 역까지 걸어가려면 15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밖에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집에서도 내내 부산히 움직인 터라 다시 역까지 걸어 나가는 것이 조금 고민이 됐다. 하지만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답장을 보냈다.
-지금 준비하고 나가면 조금 기다리실 수도 있어요. 괜찮으시면 준비하고 나가겠습니다.
그 사람은 괜찮다고 했다. 나는 다시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모자 하나 눌러쓰고 한 손에는 카디건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귀찮기도 했고 기분도 썩 좋지 않아서 그냥 가지 말까 했지만 사실 그 카디건은 올린 지 꽤 오래된 물건이라 빨리 처리하고 싶었다.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데 신림역 3번 출구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나는 '보라색 모자를 쓰고 있어요.'라고 대답하고 조금 빨리 걷기 시작했다. 10시가 되면서 모든 술집과 음식점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때문에 신림역 거리가 마치 크리스마스의 명동거리 같았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3번 출구에 도착했는데, 내 보라색 모자를 알아보고 나에게 다가온 사람은 우리 엄마뻘의 한 아주머니였다. 꼬깃꼬깃 접은 천 원짜리 다섯 장을 나에게 건네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시거든요. 내일부터 간호해야 할 것 같은데 병원에서 걸치고 있을 만한 옷을 찾고 있었어요. 사이즈가 저한테 맞을까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그녀의 메시지를 받고 사실 아주 어린 학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일 약속이 있어서 급하게 옷을 찾는가 보지?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도착했는데. 왠지 굉장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제야 좀 전의 상황들이 이해가 됐다. 나는 우물쭈물하며 사이즈는 넉넉하니 충분히 편안하게 맞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죄송한 마음에 급히 인사를 드리고 가려고 했다.
"집이 어디예요?"
"저는 여기서 좀 걸어야 해요. 세무서 쪽이거든요."
"어머. 나도 그쪽인데."
그녀는 내 말을 듣고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서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워낙 불편해하기도 하고 특히나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 혼자 계속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친근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학생이에요?"
"아니요. 30대 직장인이에요."
"어머. 대학생인 줄 알았는데. 어쩜 그렇게 젊어 보여요? 그럼 우리 딸하고 비슷한 나이쯤 되겠다."
"따님 분이 30대이신가요?"
"네. 우리 딸은 31살인데 자꾸 혼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대더니 결국 집하고 멀지도 않은 곳에 방을 구해서 나가버렸어요. 아가씨도 혼자 살아요?"
"네. 저도 혼자 살고 있어요. 직장이 여기랑 가까워서요."
"혼자 살면 무섭고 힘들지 않아요?"
"저는 혼자 사는 거 좋아요. 딱히 힘들지도 않고요."
"먹을 걸 제대로 못 챙겨 먹잖아. 우리 딸도 맨날 햇반 같은 것만 먹고 반찬을 싸줘도 그냥 사 먹는 게 더 좋은지 안 먹으려고 해."
"저도 엄마한테 반찬 챙겨주지 말라고 해요. 남기면 버려야 하는데 엄마가 해준 음식은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마음이 영 안 좋아서요. 그래서 오래 두지 말고 빨리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음식을 받아오면 조급해지고 부담도 되고 그렇더라고요. 당연히 엄마가 해준 음식이 제일 좋긴 하죠."
"그렇구나. 우리 딸도 그런 마음이겠구나. 나는 딸이 셋, 아들이 하나 있는데 자식들 넷이 전부 독립해서 살겠다고 해요. 나가서 사는 게 그렇게 좋나. 왜 다들 나가겠다고 하는지.."
"처음엔 독립한다고 하면 서운해하시는데 나중엔 편하다고 좋아하시더라고요. 저희 부모님도 그러셨어요. 신경 쓸 일이 줄었다고요."
"그건 그렇긴 해."
이런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집에 도착해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집까지 모셔다 드린 것이다. 우리 집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쳤지만 엄마의 마음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정말 우리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구나. 얼른 들어가요. 고마워요."
나는 그녀에게 꾸벅 인사를 했고 그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시계를 보니 약 15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단 15분 만의 만남이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엄마를 보았고 그녀는 나에게서 딸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에게 더 미안해졌다.
사실 30대면 성인이 되고도 한참은 더 됐는데 다 클 대로 커버린 성인이 출가해서 살겠다고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엄마 없인 하루도 못 자는 어린애도 아니고 엄마가 해준 밥 없이는 숟가락조차 들지 못하는 아이도 아닐 것인데, 다 큰 30대의 성인이라도 그녀에게는, 엄마에게는 아직도 여리고 어린아이인 것이다.
엄마가 생각났다. 전화할 때마다 밥은 먹었냐고 묻는 엄마가 생각났다. 주말에 집에 가면 집에 반찬은 뭐가 있냐고 묻는 엄마가 생각났다. 김치는 얼마나 남아있니, 그때 준 김치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너 밥 제대로 안 챙겨 먹니, 그러다 정말 쓰러진다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가 생각났다.
나와 엄마는 늘 애증의 관계라고 생각해왔다. 엄마가 미치도록 밉다가도 엄마가 미치도록 불쌍하고, 엄마를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가도 엄마를 끝끝내 용서할 수밖에 없는 내가 정말 싫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 때문에 자주 본가에 찾아가지 못했다. 엄마를 보면 마음이 답답하고 아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엄마가 보고 싶다. 오늘 15분도 채 되지 않았던 누군가와의 만남이 그토록 피하고 싶던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근데 그렇게 떠오른 엄마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도 그런 마음이었겠지. 내가 집을 나간다고 했을 때 말로는 다시는 보지 말자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결국 내 끼니부터 걱정했겠지. 그래서 내가 응급실에 갔을 때도 그렇게 달려왔던 거겠지. 내가 병원에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눈물을 보였던 것도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이겠지. 내가 퇴원하는 날 피자를 먹고 싶다고 했을 때 뭐라도 먹고 싶어 해서 다행이라며 또 눈물을 보였던 것도, 다 그런 마음이었겠지.
엄마가 해준 두부조림이 먹고 싶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알고 내가 집에 가는 날이면 늘 식탁 위에 말없이 올려져 있던 그 따뜻한 두부조림이, 오늘은 정말 너무너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