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엄마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갖고 싶은 것이 뭐니?“ 나는 갖고 싶은 것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다시 물었다. “이미 다 가져서 그런거니,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은 거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최대한 빈 손이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어야 더 가볍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그만큼 버리고 떠나야할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마음을 엄마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준비를 하고 아끼는 것들을 아끼지 않을 준비를 했다. 내가 언제든, 어디서든 떠날 수 있게 그런 이기적인 준비를 했었다. 잘 지내고 있느냐는 물음에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다는 대답도 하고 장난스런 웃음도 함께 붙여가며 상대를 안심시켰다. 그때는 그런 완벽한 준비를 하면서도 내심 누군가가 알아채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루는 종이 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줄줄이 적고 책 사이에 꽂아두었다. 누군가 발견할 수있게 잘 보이는 곳에 잘 보이도록 꽂아두었다. 그것 또한 나에게는 준비였다.
이 모든 것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지난 날의 나를 살린 것들이 너무나 많다. 어떤 날은 내 눈빛만으로 알아챈 친구 덕분에 살았고 어떤 날은 작은 존재의 온기 덕분에 살았다. 그들 덕분에 지금 이렇게 살아있고 그때를 견뎌준 내 덕분에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제, 그때는 전부 놓아버리고 싶었던 것들을 꼬옥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 사랑하는 사람과의 입맞춤,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아빠의 목소리. 그 어떤 것 하나도 잊고 싶지도, 잃고 싶지도 않다. 그들에게서 잊혀지는 것도 두렵다.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 그렇게 기억하며 오래오래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