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카레
나는 타고나길 제법 강심장이었다.
큰 대회의 발표나, 겁없는 결정을 석석 잘 하는 아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몇백억이 걸린 프레젠테이션에 그닥 떨지 않았고,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한참 윗사람에게도 브레이크 거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인생의 모토인양 '죽지는 않아-' 라며 뭐든 덤벼드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나에게
남편은 종종 "꼭 죽어야 멈추는거야?" 라며 피식 웃기도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세상 쫄보가 되었다.
혹여 아이들 인생의 복선을 놓치고 사는건 아닌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누구나 겪는 일임을 알면서도 아이들에겐 예외사고가 일어나는건 아닌가, 예민해졌다.
자꾸만 불안불안 걱정이 많아졌다.
언제부터였을까, 겁대가리 없이 살아온 내가 소심해진 순간이.
그러다 말겠지 지켜보기만 하던 어느 아이에게
첫째가 3년을 내리 집요한 괴롭힘을 당했을 때였나.
이런 선생님도 있는거겠지 넘어가다가
둘째를 불안과 강박으로 가도록 놓쳤을 때였나.
나의 겁대가리 없음 탓인 듯 하여 허둥대게 되었다.
(이 얘기들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언젠간 이 곳에 털어놓을 사건들이기도 하다.)
인간을 가장 불안과 공포로 내모는 요인은
'미지의 것' 이라고 한다.
어쩌면, 나의 삶은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으니 겁날 것이 없었으나
이제 내 품을 제법 떠나버린 아이들의 생활은 내가 다 알 수 없으니
불안한 것이로구나 싶기도 하다.
나는 아이들의 말을 다 믿지 않는다.
나의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리기에 시야는 좁고, 생각은 짧다. 판단과 상식도 모호하다.
아이들이 내게 열심히 상황설명을 해주더라도, 그건 내 아이의 입장만 전달될 뿐이다.
별 일 아닌 상황을 만나도 때로는, 이상한 결론을 쉬이 내려버리는 것이 아이들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툭 하고 던지는 말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애써 마음 구석으로 밀어두려고 애쓴다.
내가 예민해지면 아이들은 더이상 그 상황을 무심히게 넘어갈 수 없단 걸 알기 때문이다.
긴장을 한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심상찮게 느껴질테니 말이다.
그저,
별 일 없을거야.
라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닐수도 있고, 다른 것이었을수도 있어. 별 일 아닐거야. 별 일 없을거야.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가.
나는 아이들이 잠들거나 등교를 하고나면
이것이 복선인가. 아니면 그냥 해프닝인가. 답도 없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곤 한다.
돌이켜보면 99프로는 정말 별 일 아니었으나
그렇지 않았던 1프로를 떠올리며 우왕좌왕하는 맘으로 어찌할바 몰라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들이 반복하여 보내는 싸인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건 좀 면밀히 들여다봐야겠다 맘을 먹어도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의 주관적인 해석이나 느낌만으로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제법 디테일하게 질문을 하는데
대부분 아이들은 그런 것까지는 캐치하지 못했으므로 내 질문이 길어지면 이내,
"아 몰라." 라며 대화를 꺾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면 난 또 얼른 아이의 맘을 다독이기 위해
"그래, 별 일 아닐거야. 그런 일은 어디든 있어. 별 일 없을거야. 괜찮아." 라면서
얼른 평온한척 표정을 추스리며 아이에게 주문을 걸듯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혀 괜찮지 않다. 별 일 아닐것 같지 않다. 그 때부터 나는
정황과 논리를 재어가며 아이의 이야기에 생긴 구멍들을 메꿔본다. 상상력을 동원해본다.
그러나 자칫 재는 과정에서 생긴 오차범위는 전혀 다른 결론으로 내려지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재어봐도 미더운 답이 나온 적은 별로 없다.
그저, 마음만 우왕좌왕해질 뿐이다.
첫째가 네살때였나, 다섯살 때였나.
혼자서도 늘 꿀잠을 자던 아이가 새벽에 깨서
기겁을 하며 울어댔다.
"엄마, 사자가 쫓아와요. 사자가 나를 앙 물었어요!!!"
다독다독 괜찮아 괜찮아, 아이에게 읊조리며 곁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 다음날 밤에도 잠드는 시간이 되니
"엄마, 또 사자 오면 어떡하지. 나 자는거 무서운데 어떡하지."
잊혀지지 않는 악몽으로 아이가 겁을 내었다.
이삼일쯤 후였나. 신문에 카레에 관한 기사가 나왔는데
카레에 들어가는 강황성분은 불안을 지워주어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다는 기사였다.
아이를 재우며 말해주었다.
"너가 좋아하는 카레 있잖아. 카레를 많이 먹으면 무서웠던 기억이 사라진대. 진짜야. 뉴스에 나왔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말해주느라 이렇게 설명한지라
아마도 아이에게는 카레가 마법의 음식처럼 느껴졌을테다.
동앗줄을 만난듯, 눈을 반짝이며 아이는
"엄마, 나 내일 카레 해주세요. 나 무서운 꿈 괜찮아지게 내일 아침 카레 해주세요."
그래그래 다독이며 아이를 재웠고 아이는 마법의 카레를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카레 한 번에 효능이 번뜩 발휘되는 것은 당치도 않으나,
플라시보 효과라도 믿어보자 하는 맘에 아이를 재우고 부랴부랴 카레 재료를 사러 갔었다.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마트로 내달렸다.
그리고 카레를 먹고 난 그 날 밤,
"엄마 진짜 나 안 무서운거 같아. 내일도 카레 주세요!"
엄마의 말이 절대진리었던 그 시절의 아이에게 카레는, 그렇게 마법의 음식으로 굳건해졌다.
아이들은 이제 컸고,
마법의 효능 따위는 먹히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 품 안에서 악몽을 이겨내던 때를 지나
내 눈과 귀가 없는 곳의 세상에서
혼자 이겨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이의 상황은 나에게 점점 미지의 것이 되고
아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복잡다단해지니,
예전처럼 카레 정도로 해결될 일은 없다.
설사, 내게 도울 방도가 있다 하더라도
끼어들지 말아야 하는 때가 이미 와버렸다.
그래도
또래에 비해선 종알종알 수다가 많은 아이들이
앞으로도 내게 멈추지 않고 털어놔주길 바란다.
아이들 말 한 마디에 좌우로 휘날리는 엄마이지만,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앞으로도
괜찮을거야, 별 일 아닐거야. 로 다독여줄 것이다.
내 맘은 전혀 괜찮지 않고, 별 일 아닐 것 같지 않더라도
더더욱 단호히 말해볼테다. 괜찮을거야. 별 일 아닐거야.
털어놓았으니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걱정되고 불안한 몫은
아이들 대신 내가 도맡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아마도 아이가 어른이 되어버려도
나는 달라진 것 없는 쫄보일지도 모른다.
나의 엄마를 보면 그렇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되도록 엄마에게는 티를 안 내려 하지만
티가 안 날리 없다. 내 표정은 엄마 뱃 속에서 만들어져서일까,
내 눈꼬리 하나만 봐도 엄마는 내 상태를 얼른 알아낸다.
그걸 아는 나는, 속상한 일이 있을 때에는 엄마에게 하는 전화가 뜸해진다. 만나는 속도를 더디 한다.
괜시리 말을 섞었다가는 단박에 알아낼 것이다. 만나는 순간 다 알아챌 것이다.
그렇게 갈팡질팡 하다보면 어느새 문제는 해결되어 있기 십상이고,
그제서야 엄마를 찾아가면 엄마는 말한다.
"연락이 오래 없길래, 전화도 못해보고 걱정만 했었어."
아, 나도 저렇겠구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버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면
5분조차 손에 잡히지 않는 아이의 하루를
나는 24시간을 기원하며 살테니,
아이의 삶은 더더욱
미지의 것이 되어가겠구나,
아이가 내게 속얘기를 부쩍 줄여도
성인이 된 아이에게 꼬치꼬치한 질문은 더더욱 할 수 없을테니,
아이의 표정이나 목소리로 넘겨짚다가, 아니다 아니다 지워냈다가 하며
울엄마처럼 그리 살 수도 있겠구나.
나는 카레나 자주 끓여야겠다.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메뉴이니
잔뜩 끓여서 나도 열심히 먹어야겠다.
한숟갈 한숟갈 뜰 때마다
별 일 없을거야, 괜찮을거야, 내 자신에게도 성실히 말해줘야겠다.
겁대가리 없이 살아도, 큰 탈 없이 살아왔고
큰 탈이 나더라도, 그럭저럭 잘 이겨내고 지났으니
이리봐도 저리봐도 나보다는 나은 내 아이들은
더더욱 괜찮을거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두고두고 앙금이 되어버린 저 두가지 사건 말고는 정말 별 일이 없었고
설사 약간의 일이 생기더라도 누구나 겪을만한 일들로 자연스레 넘어갔으니,
괜찮을거다. 정말이지 별 일 없을거다.
그리고,
내일은 꼭
엄마한테 전화해야지, 시어머니한테도 전화해야지.
자식들이 자주 전화하길 바란다는 늙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TV에서라도 보면
나는 남편에게
"아니, 전화가 오는게 뭐 그리 반가울까? 난 너무 귀찮을것 같은데. 우리도 늙으면 기다려질까?"
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내가 그리 오만했다. 부모마음의 반도 몰랐던 주제에, 세상 철이 없었다.
안부전화에 불성실했던 나인지라, "무슨 일이야?" 라고 두 분 다 물어보겠지만,
그것은 내 탓. 그 질문에 좀 민망하고 어색해지더라도
종알종알 별 일 없는 일상을 전달해야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무 숨기고 감추느라 애쓰지 말아야겠다.
아이들 덕에
오늘도 조금 더 철이 들었다.
소고기 카레
누가 만들어도 맛있으나, 모두가 다른 맛을 내는 카레입니다. 우리집 카레의 킥은 버터, 우유, 그리고 하룻밤이에요.
찌개도 하루 냉장고에 넣어두면 훨씬 깊은 맛을 내지만 특히나 카레나 스튜 같은 음식은 더더욱 하룻밤새 그 맛이 달라지는걸 느낍니다.
돼지고기나 새우를 넣어 끟이는 경우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우리 가족은 소고기를 숭덩숭덩 크게 썰어넣고 진하게 끓여낸 카레를 제일 좋아한답니다.
1. 버터를 넉넉히 넣고 양파와 스테이크용 고기를 썰어 넣어 볶아줍니다. (이번엔 집에 조금 남은 레드와인이 있어서 넣어보았어요.)
2. 양파와 고기가 익으면 감자를 넣고, 샐러리를 잘게 썰어 듬뿍 넣습니다. (익은 당근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당근은 패스에요. 대신 풍미를 올려주는 샐러리는 카레를 끓이는동안 부드러워져서 샐러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큰 아이도 잘 먹는답니다.)
3. 재료들이 전체적으로 익었을 때, 물을 넣고 고형카레와 치킨스톡을 넣어줍니다. 우리집은 재료를 크게 썰어 넣는 편인데, 재료가 너무 많거나 커도 걱정하지 마세요. 푸욱 끓이다보면 재료는 카레에 녹아들고 작아져서 괜찮답니다.
4. 한시간가량 중불에 저어가며 진하게 끓이다가, 마지막에 우유로 적당히 간을 맞춥니다.
5. 다 끓여진 카레는 한 김 식혀 냉장고로. 내일 아침이면 몇 배 맛있어질거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