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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밤을 줄테니, 너의 뽀뽀를 다오

생선전

by 이정

결론은

실패다.

꼬셔본지 벌써 한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성공을 해본적이 없다.




큰 아이는 입시로 인해

몇 년째 진을 빼는 중이다.

제법 즐겁게 잘 해내더니

날짜가 다가올수록 아이가 심상찮았다.

제발 좀 자라는 나의 말은 안 들은지 오래.

타고난 성실함으로

여전히 책상에 새벽까지 앉아있기는 하나,

아무래도 요즘은 앉아서

걱정회로만 돌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속을 끓이느라 마음이 점점 무너지는듯 하여

나는 선언했다.

집에 와서는 공부하지 마!

맘부터 챙겨!


아이의 강한 반발이 있었으나,

하루 한두시간이라도

좀 벗어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통사정을 했다.

이렇게 네 마음을 갈아넣기만 해서는 될 것도 안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꽤 오래동안 대치상태를 지나 항복을 받아냈다.

사실 아이도 이런 마음상태로 하루종일 지쳐 돌아와

다시 책상에 앉는다고 공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1년여 시간동안 깨달았다고 했다.


그 날부터 우리 둘은

매일 밤, 소파에 뒹굴대며

드라마 하나씩 벽돌깨기를 시작했다.

함께 할 시간이 없으니

점점 소원해지던 사이는

드라마를 보며 부쩍 예전으로 돌아왔다.

한시간짜리 드라마를 보면

한시간 반은 걸렸다.

보다가 떠오르는 하루의 이야기나 생각을 주고받다보면

자꾸만 일시정지를 눌러놓고

수다를 떨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런 시간은 사실,

첫째와 나란히 앉으면 기를 쓰고 중간에 비집고 들어오는건 물론이거니와

뭐라도 언니에게 엄마 맘이 쏠리는듯 하면 앙앙 울어대던 껌딱지 둘째가

어느새 훌쩍 자라 허락해준 덕이기도 했다.

언니가 학교에 학원에 묶여있는 동안

본인은 엄마와의 오붓한 시간이 길다는 것을 둘째도 알고 있었으므로

기꺼이 둘만의 밤을 허락하겠노라 해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10여년을 훌쩍 보내고 나서야

매일매일 오붓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둘째가 태어난 이후,

엄마의 한쪽만 차지해야 했던 첫째에겐

꽤나 낯설어진 시간일테다.


우리는 소파에 누워

서로 발마사지도 해주고,

낄낄대며 간지럼도 태운다.

육탄전이 되어 장난을 치다가

내 새끼발톱이 뒤집힌 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이내 낄낄대었다.

긴 소파가 있는데도 굳이 짧은 소파에 둘 다 몸을 밀어넣고

좁다고 저리 가라고 서로 밀어내면서도

둘 다 멀어질 생각은 없다.

다리를 포개고 머리를 디밀며

그런 채로 TV를 본다.

옆에 있는 블랭킷을 놔두고

굳이 이불 하나를 가지고 티격태격 싸우며

몸을 함께 구겨 넣는다.


폭싹 속았수다를 볼 때에는

서로 서운한 이야기도 슬쩍 내놓아보았고,

미생을 볼 때에는

불합리한 선배나 사회를 느낀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나는 나대로 아이가

이만큼 커졌구나, 새삼 느끼고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가

이런 일들을 품고 살았구나, 알아가는 중일게다.




아이가 입시를 시작한 후로는

내가 더 이상 부모가 아닌 학부모가 된 기분이었고

그 기분은 아주

별로였다.

아이가 새로 사귄 친구들 이름보다

아이가 하고 있는 과목의 진도를 더 빨리 외우게 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슬픈 일이었다. 엄마가 더이상 엄마이지 않은 기분이었다.

아침 먹는 10여분, 라이딩하는 20여분, 한밤중 돌아와 인사하는 10여분 빼고는

얼굴을 마주 볼 시간이 없으니

꼭 필요한 이야기만으로 우리의 시간은 빼곡히 채워졌었다.

우리의 대화는

모의고사 점수가 어땠고, 선생님 의견이 어땠고,

내일 스케줄은 어떤지, 오늘 컨디션은 어떤지.

그런 것들만으로도 숨이 찼다.

숙제하듯 해치워내는 대화였다.


물론, 꼭 공부 때문만은 아니었을게다.

사춘기에 흠뻑 담군 마음도 컸을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사춘기만으로도 버거울 아이는

남들보다 더해진 스트레스마저 쌓여갔다.

엄마 말고는 풀만한 곳이 딱히 마땅찮았을 것이다.

어느덧 눈만 마주치면 공부얘기를 주고 받게 된 엄마와의 사이는

또다른 버거움이었을테고, 그러니

엄마한테라도 양껏 짜증을 내보았을 것이다.


내가 이럴 것 같아서 반대했었지.

아직 한참 어린 나이에

굳이 그럴 것 없다고 말렸었지.

아직은 공부 말고도 배우고 익히고 겪어봐야 하는 것이 많다고

오래동안 허락을 안했었지!

그러나 아이의 고집은 나보다 세었고

부모라도 자식의 뜻을 굽힐 자격은 없었다.


여하튼 이제 우리는

이런저런 간식을 꺼내놓고,

내 몫으로는 맥주 한 캔까지 앞에 두고,

몇 년만의 꽁냥을 부리고 있다.

야참보다 맛있는 시간이다.

맥주보다 청량한 밤이다.

그러나

어느새 밤잠은 늘어나고 아침잠은 줄어든

이 나이의 엄마는

졸리다.

아이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아니

이제 아침잠이 줄어서 싫어도 일찍 눈이 떠지는 나는

하루종일 멍하게 지나기도 한다. 낮에 하려던 일들이 늘어지기도 한다.




아이와 부대끼며 TV를 보다가 나는

애교를 시켜보기도, 포옹을 요구하기도, 뽀뽀를 강요하기도 하는데

거절할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자꾸 한다.

엄마가 잠도 줄여가며 같이 드라마를 봐주는데

그 정도는 해야 하는거 아니냐며 생땡깡을 부린다.

어느새 자라서

안팎으로 어른인 척 노력하는 아이가 못내 짠했었다.

내 앞에서만큼은

아직 아가여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큰 아이가 네 살 때

둘째가 태어났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퇴근하는 남편 덕에

나는 정말이지 독박이었는데

첫째는 원래 유별나게 한시도 날 가만두지 않는 아이었었다.

끝도 없는 질문과 숨넘어가는 요구로

설겆이 10여분도 허락하지 않는 꼬맹이었었다.

그런 아이가 갑작스레 둘째와 엄마를 나누려니

네 살짜리가 힘들었을게다.

최선을 다해서 첫째가 허전하지 않도록

나름대로는 안간힘을 썼었다.

이제 막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고 신이 나나 했는데

돌연히 동생과 엄마를 나눠써야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애를 쓰고 기를 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갓난쟁의 옆의 네다섯살 아이는

엄마 눈에 다 큰 아이처럼 보인다.

그 시절 내가 썼던 글을 읽다 보면

돌쟁이 둘째 옆의 꼬맹이 첫째 사진을 올려놓고

'다섯살이 되더니 아가티가 사라졌다.' 라고 써놓았다.

이 얼마나 말같지도 않은가.

이런 말도 안되는 마음은

아이에게도 은연중에 전해졌으리라.

너는 언니니까, 너는 다 컸으니까, 를 느꼈으리라.


그 당시 내가 어디선가 본건지 읽은건지

동생을 본 아이의 돌연한 퇴행은

동생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표현이라 했다.

그 후부터

첫째가 유달리 혀짧은 소리를 내면

걱정이 되었다. 속이 상했다. 그래서

별다른 반응을 안해주기도 했고,

왜 자꾸 아가처럼 말해? 라고 묻기도 하였다.

아이는 민망했을 것이다. 하면 안되는건가 싶었을 것이다.

아가짓을 좀 심하게 했다고 그런 질문을 받기엔

첫째는 겨우 너댓살이었다.


마트를 다녀올때나 외출을 나갈 때에는

한 손에는 아직 걸음마가 서툰 둘째 손을 잡아야 했고,

다른 한 손에는 장바구니나 짐을 들어야 했다.

자연스레 첫째는 내 옷자락을 잡게 했었는데

서운했을 것이다. 허전했을 것이다.

옷자락을 잡다가, 동생 손을 잡은 내 옆에서 혼자 걷는 나이가 되었고,

조금만 뒤쳐지면 우리 둘 뒷모습을 보며 걷는 일도 잦아졌다.

아직도 내 팔짱을 끼고 다니는 둘째와 달리

일찌감치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첫째를 보면

때마다 미안했었다.


엄마가 그 때는 아이 둘이 처음이라

숨이 찼었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자꾸 큰 딸 하려고 하지 말고

엄마 앞에서는 아가가 되어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

애교 떨면 해주지!

안아주면 해주지!

뽀뽀해주면 해주지!

이제 와서 뒤늦게

애저녁에 멈춰버린 아가 짓들을 하라고

첫째의 옆구리를 자꾸 찔러대는 것이다.


말했듯이

성공한 적은 없다.

애교는 어찌저찌 어설프게 받아봤으나

포옹이나 뽀뽀는

얼척이 없다는 표정으로 되돌려 받았다.

엄마가 잠까지 줄여가며 시간을 주는데

요만큼은 해달라고 졸라보지만

이미 다 큰 아이가 되어버린 첫째에겐

먹힐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하라고 하면 더 못 하는게 사람 심리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옆구리를 찌를 생각이다.

엄마 앞에선 아가가 되어도 좋아- 라는 말 대신

안아줘. 뽀뽀해줘.

내가 먼저 치대 볼 예정이다.

엄마 나이에도 저러는걸 보니

내 나이면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싶도록 만들 작정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이에게 갑작스런 용기가 나서

어릴적 아가의 마음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해보니 참 좋네, 아이의 마음이 아가피부처럼 잠시나마

보들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반의 성공.

나의 밤은 소득 없이 지나가지만

아침엔 나의 뽀뽀를 이제 제법 받아준다.

깨울 때 종종 하던 나의 뽀뽀를

고개를 홱홱 돌려가며 허락하지 않던 아이가

이제는

으응- 정도로 반발이 숨죽었다.


그러면 되었다.

자식에겐 투자의 반만 얻어도

남는 장사다.

밤잠이 모자라 어깨가 축 쳐진 채 아이를 깨우다가도

나의 뽀뽀에 돌려버리는 고개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걸 느끼면

그러면 되었다 싶다. 모자란 잠이 넘치도록 보람차다.


오늘 밤의 야식은 생선전이다.

도시락에 생선을 싸긴 수월치 않아

생선이나 해산물을 좋아하는 아이가

맘에 걸렸었다.

잔뜩 부쳐놓고

둘이 냠냠 야식으로도 먹고

하루이틀 후에는

도시락으로도 싸줘야겠다.


어쨌든 시작한거, 너가 그리 원했던 거,

마지막까지 완주해보자.

그래도 반드시

마음은 챙겨가야해.

너 행복하려고 시작한 길인데,

마음을 갉아가며 걸어가는건 너무 슬픈 일이잖아.


영아.

엄마 기다리고 있어.

어서 와서

편히 쉬렴.





발행직전 소식.

어젯밤 드디어

뽀뽀까지 성공했다.

멈칫멈칫 하다가 피식 웃으며,

아이가 기꺼이

어린 마음으로 돌아가주었다.


고맙다 영아!

너의 마음도 그 순간, 보드라웠기를-




생선전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나 부치던 전이지만, 아이의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며 자주 부치게 된 메뉴입니다. 자주 해보니 이보다 쏠쏠한 메뉴도 없답니다. 부쳐서 냉장고나 냉동실에 넣어두면, 여차할 때에 꺼내 올려도 왠지 풍성한 식탁이 되거든요. 더불어, 맥주안주로도 더할 나위 없지요.


1. 해동한 대구전꺼리를 물기가 없도록 키친타올로 앞뒤모두 꾹꾹 눌러주세요. (동태전보다는 확실히 대구전이 부드럽고 맛있답니다.)

2.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해줍니다.

3. 찹쌀가루를 생선에 골고루 묻힙니다. (밀가루보다는 찹쌀가루라 더 얇게 묻는 느낌이더군요.)

4. 잘 푼 달걀물에 푸욱 적셔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 팬에 부칩니다.

5. 냉장고나 냉동실에 넣어뒀던 생선전을 다시 먹을 때에는, 살짝 간한 달걀물을 다시 입혀 부칩니다. (새로 한 것처럼 폭신한 식감이 살아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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