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수육
사춘기를 맞이한 엄마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알아서 할게!"
첫째에 이어 둘째도 시작되었다.
"알아서 한다고!"
첫째가 그 얘기를 입에 달고 살기 시작한 무렵에
나는 미련스럽게도
따박따박 논리적으로 따져 물었다.
언제, 어떻게, 무엇을, 알아서 할 것인지.
제법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따지고 들었으나
논리를 가장 무기력하게 만드는 무논리 권법으로
그저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로 마무리되는 대화는
답이 없었다. 이보다 벽창호는 없었다.
'알아서 한다' 는 말은
'별 대책 없으나, 잔소리는 듣기 싫어.' 라는 말임을
나는 이제 안다.
또한, ‘내 인생에서 엄마의 지분을 줄여나갈테야.’ 라는 의지임을
씁쓸하지만 알게 되었다.
첫째는 급식을 잘 먹지 않는다. 이유는 다양하다.
급식봉사를 하느라 바빠서, 친구들이랑 노느라,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등등.
간혹 급식실에 갔다가도
습관이 되었는지 그 시간엔 음식이 땡기지 않아 몇 입 먹지 않는다고 한다.
밥 좀 잘 챙겨먹으라 해도 당췌 말은 안 듣고,
하루종일 편의점 라면이나 핫바 따위로 배를 불리며
알아서 한다고 벅벅대는 모양이 꼴배기 싫어서
간식도 도시락도 챙겨주지 않고, 나 몰라라 내버려둔 적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만에 아이가 아팠다.
먹는 것이 부실하여 그런건지 알 수는 없으나
정말 며칠을 몸살로 앓고 일어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먹는 것만큼은 을이 되기로 하였다.
알아서 한다고 툴툴대도 악착같이 쫓아다니며
간식을 먹이고 도시락을 쥐어준다.
제 몸 챙기는 것에 게으른 아이를 둔 엄마는
어쩔 수 없다. 치사하고 드러워도 더 열심을 내어야 한다.
대학시절, 나에겐 인생 2회차를 산 듯한 베프가 있었는데
별 것 아닌 싸움 끝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하고 슬퍼하는 나에게
툭. 던진 얘기가 있었다.
"다시 연락 올거야. 그 오빠가 너한테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공들인건 쉽게 못 놔. 물건도 사람도 그래."
사귀자고 몇 달을 쫓아다니더니, 사귀고 나서는 왠지 소홀해진듯 해서
그게 그리 서운했었다.
어느새 내 쪽의 맘이 더 무거워진듯 했기에
"아닐거야 아닐거야. 예전같은 맘이 아니더라구."
라며 도리질을 치면서도
은근 내 친구의 말이 맞기를. 연락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었다.
정말 며칠 후에
친구 말대로 연락이 왔다.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다며.
다시 연락이 온 이유가
친구의 말대로 '공을 들인 상대' 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론(?)은 내 맘에 오래 남아
살면서 종종 끄덕였다. 공들인건 쉽게 놓지 못하는구나 싶었다.
사람도 그랬고, 일도 그랬다. 정말 그 친구 말처럼
온 힘을 다해 마음을 쏟아부은 무언가에게는
쿨할 수가 없었다. 걱정이 삼백근이고 안달이 구만리었다.
아이들을 키워보니
걸음마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말문을 틔우기 위해, 아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야 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에도 쉼없이 대꾸를 해줘야 했다.
밥을 먹는 그 본능적인 일조차도
수유에, 이유식에, 숟가락질 젓가락질까지
아이가 알아서 하는 일은 없었다.
첫째는 내가 처음이라 유별을 떨어서 그런가 했으나
둘째도 그랬다. 둘째는 저절로 큰다는 말은
그저 어른들의 위로였다.
본인들은 저절로 큰 줄 안다.
태어났으니 별 탈 없이 살아지는 줄 안다.
나도 그랬으므로
아이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은 기억조차 못하는 모든 순간에도, 나는 있는 힘껏 공을 들였으므로
그들의 인생에 내가 더 걱정이 많은 것이리라.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내 인생보다는 아이들의 하루를 우선하며 살았으므로
아이들의 인생을 나의 것보다 더 안달내는 것이리라.
건강하길 바래서 해온 것들이 많아서,
행복하길 바래서 쏟은 것들이 많아서,
그것들이 무의미해질까봐
부질없는 잔소리를 해대가며 미련을 떠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오늘도 쿨하지 못하다.
피곤해서 입이 깔깔하다며
아침을 대충 먹고 간 아이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양지 한 덩이를 사 온다.
전에 국거리를 삶을 때 쪽쪽 찢어서 입에 넣어주니
맛있게 먹어줬던 일이 떠올랐다.
아침에 먹였어야 할 영양까지
꼭꼭 채워 먹여내야 내 맘이 놓일듯 하다.
요며칠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잠이 부족했던 탓에
눈이 천근만근 몸이 뭉근하게 내려앉지만
엄마가 가져올 간식을 믿고, 점심을 또 대충 먹었을 아이 생각에
수육을 삶고 부추를 데치고 양념장을 만든다.
알아서 한다는 아이는
엄마가 알아서 싸다준 간식을 흡입하는 것으로
저녁 도시락을 먹는 때까지 힘을 낼 것이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공들이지 않은 상대에게도 미련을 떨어가며
연락이 오지 않으려나 기다렸던 내가
이제 와서 자식한테 쿨해질리가 없다.
손님 대하듯, 이웃집 아이 대하듯 자식을 대하라는
맘카페나 육아서의 글들을 읽으며
난 참 못났네, 자책하는 것 대신
이렇게 미련을 떤 덕에
내 새끼 입에 고기 한 점이라도 들어가지- 라고
스스로를 응원해주기로 한다.
이 글을 슬슬 마무리하는 중에
엄마에게 톡이 왔다.
오후에 과일을 가져다 주러 들렀다가
피곤에 절은 내 얼굴이 눈에 밟혔던게다.
"이정아, 어디 보약이라도 지으러 갈래."
라는 엄마의 말에
"뭐하러. 필요하면 내가 알아서 먹어. 신경쓰지 마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아.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알아서 하는 자식이었다.
이 나이가 되고,
제법 스스로의 공도 큰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인생도
엄마 공이 더 큰가보다.
양지수육
어릴적, 국거리 고기를 삶는 엄마 곁에서 참새새끼마냥 고기를 받아먹었던 따뜻한 기억이 있습니다. 소금만 살짝 찍어도 얼마나 야들야들 맛있던지, 그 기억에 저도 아이들에게 종종 국거리 고기를 찢어서 입에 넣어주곤 하지요.
소고기 수육은 그냥 소금콕콕 찍어 먹어도 별미지만, 부추와 양념장을 곁들이면 영양만점의 간식이 됩니다. 물론 밥반찬으로 먹어도 훌륭한 음식이구요.
1. 양지(사태나 다른 부위도 상관 없습니다.)와 양파, 대파, 통마늘, 후추 등을 넣고 푸욱 삶아냅니다. 돼지고기 수육과 마찬가지로 젓가락을 찔러넣었을 때 푹 들어가는 정도면 충분히 익은거에요.
2. 부추는 거의 튀겨내듯 데쳐주세요. 삶은 고기의 온도만으로도 충분히 익혀진답니다.
3. 데친 부추와 얇게 썬 소고기수육 위에 고춧가루, 설탕, 간장, 다진파마늘, 맛술, 참기름, 깨소금을 잘 섞은 양념장을 얹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