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이름이 열리던 날
큰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였다.
두툼한 국어사전을 앞에 두고, 나와 남편은 열심히,
흔치 않지만 너무 특이하지 않고, 특별하지만 너무 튀지 않는,
그런 이름을 찾기 위해 며칠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다.
내가 제안하는 이름마다 "안돼. 커서 놀림 받아." 라는 남편을 보며
나는 깔깔 웃었다.
"당신도 어지간히 이름으로 놀림 받았구나?"
사실, 초등시절에 이름으로 놀림 받지 않았던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 시기의 아이들은
온갖 별명을 짓는 것에 기가 막힌 창의력을 휘두른다.
별명을 짓기에 이름만큼 만만하게 좋은 소스도 없다.
외모나 능력을 가지고 놀리는 것보다 죄책감도 없으니 마음껏 놀리기 십상이었다.
그랬다. 나도 당했었다.
남자아이들은 내 이름을 가지고 이빨이라고 불렀다가,
내가 바락 소리를 지르면 이빨마녀라고까지 하며 별명을 불러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다하게 괴롭히는 것도 아니련만,
그 시기의 나는 그것이 왜이리 싫었는지
남자아이들이 떼지어 다니며 내 별명을 부르면
기어이 팔을 휘두르며 막아댔다. 지구 끝까지 쫓아갈 기세로 달려 들었지만
빈약한 달리기 실력으로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남자아이들을 잡을 재간이 없었다.
'이름으로 별명짓기'가 나에게만 향했을리 없었으나
그 당시의 나는
나만 맨날 당하는 것 같았다. 남자애들이 온통 내 이름만 놀려대는 것 같았다.
짓궂은 남자아이들로 인해 이빨마녀가 되어 살던 국민학교 4,5학년 시기.
아줌마는 내가 샤워를 하고 있으면 종종
동생을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들어와서 때를 밀어주었다.
처음에는 아프다고 싫다며 성화였지만 나는 이내
오늘은 아줌마가 내 때를 밀어주지 않을까, 하며 기다리게 되었다.
아줌마가 나의 팔다리며 등과 목의 때를 밀어주는 그 시간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아줌마와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줌마, 나는 내 이름이 너무 싫어. 바꿨으면 좋겠어."
"이정이 이름이 얼마나 예쁜데 이름을 바꿔?"
"애들이 자꾸 이빨이라고 놀려. 막 이빨마녀라고도 그래."
아줌마는 빙그레 웃으며
때수건에 물을 적셔 내 등을 살살 문질렀다.
"그래도 이정이 이름은 진짜 이쁜거야.
아줌마 이름은 얼마나 웃긴데."
"응? 아줌마 이름은 뭔데?"
안그래도 이름을 물어도 안 가르쳐주던 아줌마다.
물어볼 때마다 괜히 머쓱해져서 때로는 서운하기도 했던 참이었다.
"아줌마 이름은 사실 매주야."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나는 잔뜩 속이 상하다는데
또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아줌마가 야속하면서도
너무 어이없고 웃겨서
깔깔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메주야!"
"진짜야. 아줌마 이름은 매주야.
매화 매자에, 구슬 주자야."
안그래도 학교에서 한자교육을 받던 때였다.
한자에는 뜻과 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매화 매, 구슬 주, 라는 아줌마의 얘기는
제법 신빙성 있어 보였다.
"진짜야?"
"응 진짜야. 그러니 아줌마는 얼마나 놀림을 받았겠어."
"아줌마 너무 속상했겠다."
"그럼. 아줌마도 이정이만할 때에는 진짜 속상했지.
그런데 지금은 좋아. 뜻이 너무 좋잖아."
"매화랑 구슬? 그러네. 뜻은 진짜 예쁘네."
"그럼. 뜻도 예쁘고 누구보다도 특별하잖아.
아줌마는 내 이름보다 더 특별한 이름을 본 적 없어."
아무리 '메주'가 아니라 '매주'라지만
아줌마의 학교생활은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우리 반에도 아줌마만큼 특이한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공주라는 이름을 가진 그 친구는
내가 봐도 안쓰러울만큼 남자아이들의 놀림대상이었다.
한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친구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우리나라 이야기만 나오면 아이들을 그 아이를 가리키며 낄낄댔다.
생각해보니, 나보다 이상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많았다. 하루종일 놀림을 받는 애들도 제법 되었다.
그에 비해,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아이들이 다같이 박장대소 하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졌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심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줌마인데
그런데도 자신의 이름이 좋다고 하다니,
나는 더 이상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이 민망해졌다.
그 날 저녁시간,
나는 엄마와 할머니에게 엄청난 뉴스인양 떠들어댔다.
"아줌마 이름이 메주래. 하하하. 진짜 메주래!"
"너 또 아줌마한테 이름 가르쳐달라고 졸랐구나!"
"아니야! 그냥 아줌마가 가르쳐준거야. 나 안 물어봤어."
"사람 이름이 어떻게 메주니? 그냥 아줌마가 한 말이지."
"아니야! 매화 매자에, 구슬 주자래!"
엄마는 피식 웃으며 말도 안된다는 표정이었고,
할머니는
"그 이가 배운 사람이라니까. 한번 봐라. 분명할테니."
라는 알쏭달쏭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엄마와 할머니 둘 다
아줌마의 이름을 안 믿는 것이 분명했으나,
아줌마의 그 진지했던 표정과 말투를 봤다면
엄마와 할머니도 분명히 믿었을 것이라고 나는 자신했다.
그 날부터 아줌마는 내게 메주아줌마였다.
처음에 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괜히 한번씩
"메주아줌마!" 하고 불러보곤 했는데
아줌마는 그런 나를 보며 "왜에에?“ 라며 늘 나보다 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웃음을 너무 크게 터뜨리지는 않으려고 참느라
내 입 끝은 근질근질하게 올라갔는데
"웃어도 돼. 아줌마는 이제 하나도 안 부끄러워."
라며 아줌마는 내게 아주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었다.
나는 그런 아줌마가 멋져 보여서,
나도 남자애들이 이빨마녀라고 부르면
아줌마처럼 어른스런 미소를 지으며
"왜?"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거나,
"불러도 돼. 나는 내 이름 안 부끄러워." 라고 해야지 라고 다짐하곤 했다.
나의 메주아줌마.
나는 여전히
매화 매, 구슬 주, 가 정말 아줌마의 이름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아주 말이 안되는 일은 아니기에
엄마와 할머니가 틀렸다고, 내가 맞을수도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진실이어도 거짓이어도 상관없다.
만약 아줌마의 이름이 거짓이었다 하더라도,
그 거짓은 진실보다 내게 가치있었다.
아줌마가 알려준 그 이름은
그 시절 나를 별명따위에 속상하지 않도록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너그럽고 지혜롭게 이겨내는 법을 알려주었고,
그 방법은 정말 효과가 있어서
아이들은 화내지 않는 나를 놀리는 것에 금세 시큰둥해졌다.
게다가 나는 어느새
이빨마녀라고 불리더라도 내 이름은 제법 근사하다고
진심으로 생각이 들기 시작할 지경이었다.
메주 아줌마가 알려주고 가르쳐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소소한 일부터 심각한 일까지 늘
에상치도 못할 대답으로 나를 위로해주곤 했다.
나는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아줌마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종종 떠올리며
아이들이 그 시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할 때마다
메주아줌마 흉내를 내보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해도 메주아줌마처럼
기발하지도, 차분하지도, 여유롭지도 못했다.
메주아줌마가 지금도 내 곁에 있다면, 혹은 좀 더 긴 시간 함께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줌마에게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을까.
아줌마가 우리집을 떠날 때까지
나의 때를 밀어주는 시간은 우리 둘만의 이벤트 같은 것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아줌마에게 하고싶은 말이 생기면
"아줌마, 나 오늘 때 밀어줘." 라고 먼저 부탁을 하기도 했고,
그러면 아줌마는 알아들었다는 듯, "그래, 할 일 얼른 다 끝내." 라며 눈을 찡긋 해주었다.
학교에, 학원에, 공부에, 바이올린연습까지,
나는 국민학생 치고 아주 빡빡한 하루를 보내야 했기에
메주아줌마와의 다른 일상들은 자세하지 않다.
늘 자신의 이야기를 아꼈던 아줌마의 성격도 이유였겠지만,
메주아줌마뿐 아니라, 준구아줌마 이후로는
아줌마들에 대한 기억들이 세세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나는 더이상 집에서 아줌마들만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 커지면서, 아줌마들이 내게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라면서,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메주아줌마는 나에게 중요한 이었음을 깨닫는다.
아주 사소한 고민부터 비밀까지, 혹은
상처가 될 수 있었던 경험들조차
나는 메주아줌마로 인해 한결 마음을 위로받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그 시절의 국민학교도 지금의 초등학교만큼이나
아이들간의 관계가 녹록하지만은 않았으나,
늘 바쁜 엄마아빠 대신, 내게는 그래도 메주아줌마가 있었기에
내 마음은 푸근히 보호받으며 지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