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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 아줌마 3

프레스토로 부자가 될테야

by 이정

나의 국민학교 시절은 8할이 바이올린이었다.

이제 겨우 가난에서 벗어나던 시절의 우리나라는

IMF때 박세리가 그랬듯,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남매의

전세계적 호평에 열광하며

음악키즈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에

음대를 졸업했으나, 자신의 꿈을 접고 결혼을 했던 엄마와

하필 어릴때부터 절대음감이었다는(엄마의 주장에 의하면) 내가 어우러지며

나는 5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게 되었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지점이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가르치려고 했는데

내가 너무 거부해서 바이올린으로 바꾸었더니

아주 좋아했다는 엄마의 기억은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바이올린이 정말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리 하기 싫은데도 불구하고, 아웃풋은 꽤 좋아서

제법 큰 콩쿨들에서도 입상을 하고, 교수님들 오디션에도 척척 합격을 하여

엄마의 꿈인지 나의 꿈인지 모를 그 꿈은

이어지고 자라나며 내 어린시절을 삼켜가기 시작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연습시간은 늘어났고, 왕복 2시간 가까이 되는 유명한 교수님에게 사사를 받으며,

나는 시간과 노력을 바이올린에 바쳐야 했고,

부모님은 버는 족족, 내 뒷바라지에 바쳐야 했다.

콩쿨이라도 잡히면, 하루 여섯시간의 연습량을 채워야 했는데

그 시간은 지옥 같았지만, 지옥이어서는 안되었다. 불만 한 번 터뜨리는 일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기억이 닿지 않는 곳에서부터 새겨진 '바이올리니스트의 운명' 은

그렇지 않은 삶을 상상조차 못하도록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나가던 누군가가 툭 치기만 해도

"저는 정경화같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라는 말이

우르르 쏟아져나올 준비가 늘 되어있는 아이었다.

너무나 당연했기에 그것에 대하여 진심인지 아닌지 판단조차 하지 않았으나 종종,

묻지도 않았는데 "저희 김일성 아바이 동무는-" 이라며

멘트를 쏟아내는 북한 아이들을 TV에서 볼 때마다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정말 바이올린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만큼 연습을 해야하니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옆 반의 수아는

피아노 연습하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고,

나와 나란히 콩쿨에도 나가고 중창단에도 참여하는 같은 반 지은이 또한

나의 불만에 그닥 동의하지 않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며

나만 이토록 바이올린이 싫은거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연습부족이나 꾀를 부리는 것에 혼이 날 때마다

늘 부족하고 죄스러운 딸이 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은 불변의 원칙이었기에

그것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마음을 품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원칙에 내 마음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집은 바이올린을 지원할만큼 넉넉한 집이 아니었다.

어린시절, 종종 옆집 아줌마에게 관리비를 꾸러 가던 엄마는

남편의 월급으로 감당할 수 없는 나의 레슨비를 위해

시어머니와 어린아이 둘을 두고 학원을 차려 돈을 벌어야 했고,

누구보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연습을 대충 할 때마다, 교수님께 질책을 받을 때마다, 콩쿨에 나가기 싫어할 때마다,

그러니까 거의 매일,

엄마는 나에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우리집 형편에, 바이올린 뒷바라지는 힘든데, 그래서 모두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너는 도대체 왜 그러는거냐고.

나는 바이올린을 원한다고 한 기억이 없기에

고마워할 필요가 없었으나,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나의 욕심으로 부모님이 고생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미안할 필요가 없었으나, 미안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여겼다.

엄마가 "이럴거면 그만 둬!" 라고 혼을 낼 때마다

잘못했다고, 그만두지 않을거라고, 싹싹 빌었기 때문에 아주 틀린 마음은 아닌듯 했다.


너무 싫었으나, 그만두기 겁이 나는 그 마음은

알고보면 바이올린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날 때부터 주입되어진 운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다 큰 어른에게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그 나이에는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 바이올린을 그만 두라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너는 우리집 식구가 아니라며 고아로 내모는 것과 같았고,

난데없이, 너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며 난민증을 발급해주는 기분과 다를바 없었을 것이다.

좋고 싫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갑자기 내가 아니어지는 그 상황은

그 시절의 나에게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을 뿐이었다.


동네가 동네인지라, 5학년이 되자 우리반에는

예술중학교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여럿 생겨났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는

어릴때부터 준비해온 아이들이 대부분을 이루었으나,

5학년이 되면서, 미술이나 무용을 시작한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민이도 그 중에 하나였는데,

어느날 유민이는 반 아이들에게 고개를 높이 쳐들고 선언하듯 말했다.

"나, 미술로 예원 갈거야."

유민이가 그림을 잘 그렸었나, 나에겐 기억이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민이에 대한 정보는 단 하나,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사는 아이었다는 것이었다.

유민이의 생일초대를 받아 놀러갔던 날,

TV에서 대통령들이나 타던 자동차 같은

크고 각진 검정색 차에 기사아저씨까지 와서 우리를 태워갔었다.

유민이네 집은 3층이나 되는 큰 저택이어서

숨바꼭질을 하면 술래가 모두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해서 우리는 다른 놀이로 바꾸어야 했다.

그런 유민이가 미술을 시작했다고 하니

왠지 모르지만, 아주 잘 해낼 것 같았다. 아이들도 그랬는지 모두 우와우와, 감탄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쉬는 시간에 남자아이 하나가 내 앞에 떡 하니 자리를 잡았다.

폼새가 작정하고 온 모양이었다.

앞뒤 정황 없이 그 아이는 아주 걱정스런 표정으로 대뜸

"너는 바이올린을 하면 안 돼." 라고 말했다.

뜬금없는 이 말에 나는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바이올린이나 그런건, 벤츠 타고 다니는 유민이 같은 애가 해야 하는거야.

너네 차는 프레스토잖아. 프레스토 타는 애는 예술중학교 못 가."

그 즈음, 아빠는 회사로부터 하늘색 프레스토를 출퇴근용으로 받았다.

간혹 출근길에 나를 학교 앞에 내려주곤 했었는데, 아마도 그것을 본 모양이었다.


그 대화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혹스러운 발언에 내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그 때의 내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그런 쪽에는 무지한 아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맹한 구석이 많은 아이었다.

유민이네의 커다란 검은 승용차가 벤츠라는 거구나, 를 먼저 생각했고

우리 아빠의 프레스토는 별로 좋은 차가 아닌가봐, 라고 알아들었다.

그 남자아이가 악의를 가지고 말했을리 없었다. 대놓고 나를 따라다니던 남자애였기 때문이다.

남들이 놀리는 내 이름으로 그 아이는

가요를 개사해서 세레나데를 만들어 불렀고,

다른 남자애들이 괴롭히기라도 하면

나서서 막아주고, 덮어놓고 내 편을 들어주곤 했었다.

아마도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인생이 버거워질까봐 염려 되었던걸까.

그러니 화가 나기는 커녕, 이 아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파악하는데 집중했던듯 하다.

있는 줄도 몰랐던 세상의 한 쪽 문이 갑작스레 열려서,

눈이 부셔 잠시 앞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에는 머리를 바삐 움직이느라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으나,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동안에도

그 아이의 목소리는 내 귓가를 맴맴 돌며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나는 그 괴로움의 이유를 찾을 틈도 없이

엄마아빠가 혹여라도 눈치챌까봐 걱정부터 되었다.

아빠의 프레스토가 집에 오던 날,

해사했던 엄마의 웃음과 한껏 올라갔던 아빠의 어깨가

마음 아프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공부도 엄청 못하는 게, 지네 아빠 차도 벤츠가 아니면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자꾸만 자존심이 상하고,

자존심이 상하는만큼 그 아이는 물론, 유민이까지 꼴보기 싫어지던 며칠을 보낸 후,

나의 등을 밀어주는 메주아줌마에게 나는 슬쩍 운을 띄웠다.

"아줌마. 프레스토는 나쁜 차야?"

"프레스토가 왜 나쁜 차야. 아줌마는 프레스토 아들래미도 없다."

"그런데, 우리반 어떤 애가 나한테...."

나는 아줌마에게 터뜨리듯 그 아이의 얘기를 쏟아내며

울었다. 예상치 못했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 때에는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억울함과 서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원치도 않은 바이올린인데,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작한게 아닌데,

바이올린 때문에 왜 그런 말을 그 아이에게 들어야 하는지.

어쩌다가 나는 이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안그래도 연습에 치여 힘이 들고, 가계부를 쓰는 엄마의 한숨에 맘은 무겁고,

게다가 이제는 학교친구들에게까지 자존심이 구겨져야 하는건지.

그런데 엄마가 이럴거면 그만두라고 혼을 낼 때마다

나는 도대체 왜 열심히 하겠다며 엄마의 옷자락을 눈물로 잡고 매달리게 되는건지.

그간의 혼란스럽고 버거웠던 마음이 눈물로 터져나왔던 것일테다.


"이정이 네 바이올린 비싼거 아니야?"

"응. 엄마가 비싼거랬어."

비싼 바이올린을 사기 위해 엄마가 얼마나 살림을 아껴야 했는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터였다.

"아줌만 잘 모르지만, 유민이라는 애 물감보다 네 바이올린이 훨씬 비쌀걸?"

메주아줌마의 대답은 이번에도 황당해서 나는 울다말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 웃음에 아줌마는 신이 났는지

"물감이랑 파레트랑 스케치북을 다 합쳐봐라. 네 바이올린 값보다 비싼가.

벤츠랑 프레스토가 뭐야, 그것보다 더 차이가 날껄?"

울다가 웃으면 안된다며 나를 놀리는 아줌마와 낄낄대다 보니

마음이 좀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아줌마에게 일러바친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졌다.


"이건 비밀인데, 아줌마네도 원래 엄청 부자였다?"

"진짜? 유민이네보다 더?"

"글쎄. 유민이가 얼마나 부자인지는 모르지만, 아줌마네도 동네에서 제일 가는 부자였어."

"그런데 지금은 돈이 없어졌어?"

"원래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그래."

아줌마는 알쏭달쏭 와닿지 않는 말을 하였다.


"지금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하나도 안 중요해 이정아.

아줌마 봐봐. 진짜로 있다가도 없는게 돈이라니까?

돈보다 능력이 많아야 정말 부자가 되는거야."

"능력이 있으면 다 부자가 돼?"

"그럼! 부자 별 거 아니야.

쓰는 돈보다 버는 돈이 많으면, 그러다보면 저절로 되는게 부자야.

아줌마도 너처럼 바이올린 능력을 키워놨거나

기술이라도 하나 배워놨으면

다시 부자가 될 수 있을텐데 아줌마는 그걸 안해놨네."

"에이, 바이올린 한다고 많이 버나 뭐?"

"이정이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면 벤츠값보다 훨씬 더 많이 벌걸?"

갑자기 벤츠가 별 것 아니게 느껴졌다. 괜시리 유민이에게 주눅들었던 마음이 살살 펴졌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진짜 그렇게 많이 버나?"

"그럼! 음악가가 최고지! 너네 선생님 레슨비도 엄청 비싸다며.

엄마아빠는 널 벤츠 태워주는 대신에

부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주고 계신거야.

그러니까 너가 더 부자야."

말했듯, 나는 세상물정에 약은 아이는 못되었다.

아줌마 말을 내 눈높이로 이해하려고 애써보니,

우리동네 미술학원 선생님보다 나의 레슨교수님이 돈을 더 버는 것은 확실했다.

엄마는 내가 미술학원에 갈 때마다 돈이 많이 든다며 앓는 소리를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줌마의 말이 모두 와닿지는 않았으나,

왠지 모르게 구겨졌던 나의 자존심은 호기로워졌다.

"그러면 아줌마, 내가 돈 많이 벌면 아줌마도 벤츠 사줄게."

"어유, 벤츠 있어도 아줌마는 운전도 못해.

벤츠 같은거 필요 없으니까 너가 나중에

레슨교수님 같은 사람이 되면, 아줌마 바이올린 가르쳐줘.

또 아니? 아줌마도 바이올린으로 돈 좀 벌 수 있게 될지."

"그래! 그런데 지금도 내가 가르쳐줄 수 있어!"

"아줌마는 지금 돈이 없어서 바이올린을 사지도 못해.

나중에 이정이가 아줌마 바이올린도 사주고 레슨도 해줘."

"알았어! 내가 다 해줄게!"

"와! 아줌마가 이정이 덕에 부자 할머니 될지도 모르겠네!"


나는 메주아줌마 덕에 며칠만에 마음이 좀 맑아졌다.

조숙한 척 훈수를 두던 그 남자애보다

내가 훨씬 대단한 세상이치를 알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더 이상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름도 이상한 벤츠보다, 아빠의 프레스토가 훨씬 더 좋았다.

바이올린을 하는 사람에게 프레스토(아주 빠르다는 음악용어)만큼 어울리는 차가 또 어디 있을까.

프레스토의 속도로 하루 빨리

나도 부자가 되고, 엄마아빠도 부자로 만들어 주고, 아줌마도 부자할머니로 늙게 해줘야지!

주차를 할 때마다 기스가 날까봐 안달을 하는 엄마도 더이상 안타깝지 않았고,

주말만 되면 정성들여 세차를 하는 아빠도 이제는 안쓰럽지 않아졌다.


그 아이의 말은 어른이 된 후에도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아이의 말보다

당혹스러운 그 얘기를 듣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던

어린 나의 모습이 깊이 새겨져서

떠오를 때마다 마음 한쪽이 쓰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던 시절,

물어물어 내 연락처를 알아낸 그 아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나를 아주 좋아했다는 것은 기억하나

자신의 그런 발언은 전혀 기억에 없는 듯 했다.

우리는 국민학교때의 온갖 추억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떠들었으나

나는 그 아이에게 그 일만큼은 묻지 않았다.

여전히 다정한 성격이었고, 배려많은 어른이 되어 있었던 그 아이는

그 아이는, 그저 어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한참 생각했던 나만큼이나

그런 말이 나로 하여금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할지 몰랐던 탓이었을 것이다.

나는 괜찮았다.

그 날의 기억에는 메주아줌마와의 때미는 시간이 늘 따라붙었기에

서럽지만, 동시에 뿌듯하게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부모님께도 털어놓을 수 없던 속내를 터뜨릴 수 있는 곳이 존재했다는 기억은

사는내내 나의 어린시절을 푸근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고마웠던 메주아줌마.

어린 나는 메주아줌마와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아줌마가 운전을 할 줄 모른다면

유민이네처럼 벤츠에 기사까지 대동하여 지낼 수 있도록

바이올린도 가르쳐주고, 부자가 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아줌마 나이에 얼마나 바이올린을 잘 켜게 될지

좀 걱정스럽긴 했지만

내가 아주 부자가 될테니 괜찮았다.

예쁘장한 메주아줌마가 엄마처럼 화장도 곱게 하고

목걸이 귀걸이도 하고

하들하들한 꽃무늬 원피스도 입고 다니게 해주고 싶었다.

동네에서 제일 가는 부자였다는 메주아줌마가

옛날엔 그랬지, 하며 아련한 표정을 짓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약속이 깨진 것은

정말이지 어느날 갑자기였다. 다른 날들과 하나 다를 것 없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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