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란 오래된 스티커와 같아서
별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한시간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학교에 다녀왔으며,
주산학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전 날, 예술중학교 입시지정곡이 발표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곡을 받아 연습을 시작했다는 것이 좀 달랐을까.
새로 받은 Bach의 곡은
어려웠고 선뜻 맘이 가지 않았으나, 선택지는 없었다. 정해진 것이니까.
저녁을 먹고나서 숙제와 여타의 공부를 하고
바이올린 연습을 하려고 악기를 펴고 있을 때였다.
퇴근하고 오신 아빠가 늦은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너랑 할 얘기가 좀 있어."
달칵, 아빠는 전에 없이 방문을 잠그셨다. 나는 아빠와 낯선 분위기에 갇혔다.
아빠는 신문을 방바닥에 크게 펼쳐놓으셨다.
양전면 스프레드로 가득 실린 르포기사의 제목은
'음악조기교육, 80프로가 후회한다.' 였다.
우리 학교만이 아니었나보다. 대한민국 내 또래는
너도나도 어릴적부터 바이올린을 켜고, 피아노를 치며, 플룻을 부는구나, 생각했다.
기사의 크기만큼이나 헤드라인은 크고, 굵었다.
딱딱한 고딕체의 글씨는 내 눈에 단단히 박혀
아빠가 이 신문을 펼친 의도를 파악할 정신이 없었다.
아빠는 사실, 내가 바이올린을 하는 것에 늘 반대였다.
연습을 하고 있으면 종종 들어와
"지고이네르바이젠, 그거 너 켜봐라." 하며
아주 흐뭇하게 미소를 짓곤 하셨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와의 언쟁이 안방 문 틈을 비집고 나오는 때가 가끔 있었다.
뜬금없이 내게
"꼭 바이올린만 하고 살아야 하는건 아니야."라고 한다거나
"너는 허구헌날 바이올린만 켜는게 좋으냐?" 하는 아빠를
서둘러 꼬집는 엄마를 눈치챈 적도 많았다.
아빠의 의견은 늘 조용하고 조심스러워서
엄마의 크고 단호한 주장에 묻혀버렸을 뿐이었다.
"이렇게 많이 후회를 한단다. 넌 정말 바이올린이 좋은거야?"
아무도 내게 이렇게 물어본 적 없었다.
아니, 물어본 적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의도는
궁금함이 아니라, 그렇다는 내 대답을 바라는 기대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나는 내가 정말 바이올린을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대하여
솔직하게 털어놓아본 적 없었다. 아니, 솔직하려고 마음을 들여다본 적조차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할 필요를 느꼈을 때에는 이미
나는 정해져 있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6학년 담임선생님은 국어전공 선생님이셨다.
5학년때부터 같은 선생님이었는데 EBS에 출연하시는 분이셨다.
선생님은 나를 꽤 예뻐하셔서, 2년 동안 보조역을 맡기시며 함께 촬영을 한 적도 있었고,
내가 쓴 동시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보자는 제안도 해주시는 등
이정이는 글을 쓰면 잘 쓸텐데, 이정이는 작가가 되어도 좋을텐데, 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시던 분이었다.
이정이는 영리하구나, 하며 그 시절 막 생겨난 올림피아드를 추천하시기도 했고,
바이올린 말고 다른거 하고 싶은건 없어? 라시며 나를 난감하게 만드시기도 했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엄마아빠에게
내가 바이올린을 할 노력으로 다른 것을 하면
더 낫지 않겠냐는 의견을 여러번 전하셨었나보다.
몰랐다. 내가 알아서는 안되었었겠지.
선생님의 의견은 나한테 새어나가는 틈조차 없이 쌓이다가
아빠의 생각에 힘이 보태어졌을까.
아니면 내 눈 앞의 이 헤드라인이 아빠에게 용기를 주었을까.
그간의 노력이, 돈이,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길테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빠는 말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으나,
꿈의 뜻이 뭔지도 모르는 5살에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지금은 내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걸 원하는지
알아보고 겪어봐야 하는 시기여야 한다며 단호한 표정이었다.
내 나이 열 두살,
열 두살 인생에서 8년동안 믿어온,
기억이 닿는 내 인생 모든 것을
올바른 방향이 아니었다고 아빠가 말하고 있었다.
옳다고, 이것만이 유일하다고 배워져 왔는데
사실은 숨어 있었다며 수많은 것들이 사방에서 우수수 고개를 내밀었다.
바이올린을 안 해도 된다는 말은처음이었다.
바이올린을 그만두어도 내게 다른 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도 처음이었다.
북한 아이들에게 '김일성은 사실 탐욕스런 돼지야.' 라고 누군가 알려준다면
나같은 기분일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꽤 오랜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아빠는
"이게 마지막 기회야. 예중에 들어가고 나면 돌이키기도 힘들어." 라고 마무리 지으려고 하길래,
나는 아빠의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얼른 외쳤다.
"그만둘래!"
그리고 끝이었다.
내 8년이 사라졌다.
아빠와의 한시간여 대화는 나의 8년보다 힘이 셌다.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저녁 연습을 건너뛰었다.
괜히 눈치가 보여 마루로 나갈 수도 없고, 다른 짓을 하며 노는 것도 안될 듯 하여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교과서를 뒤적이며 잠들 시간만 기다렸다.
안방은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나를 더 두렵게 만들었다.
아빠가 방문을 걸어잠그던 달칵, 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아
엄마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머리를 싸매고 몸져누운 엄마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내가 왜 미안해야 하는건지 화가 났다가,
왠지모를 통쾌함이 몰려왔다가, 또 엄마가 불쌍해 보였다가,
나의 마음은 한동안 갈팡질팡 놓여지지 않았지만
나의 일상은 아주 빠르게 바이올린이 없는 생활로 익숙해져 갔다.
너무. 좋았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좋았고,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어도 시간이 남는다는 것이 좋았고,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연습을 하지 않는 것도 좋았다.
그래도 엄마의 심난한 표정을 볼 때마다,
한 켠으로 치워진 바이올린과 보면대를 볼 때마다,
그 보면대 위에 놓여진 Bach의 악보를 볼 때마다,
이렇게 좋아도 되는걸까 멀미가 나는 것처럼 속이 메슥거렸다.
내 방에서 바이올린을 치워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긁어부스럼 만드는 짓이 될까봐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메슥거림을 견뎌내어야 했다.
메주아줌마는 바이올린을 그만둔 것에 대해서 아는 듯 했으나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바이올린을 한 적 없는 아이인 것처럼 그리 대했다.
그래서 메주아줌마가 "이정아, 등 때 밀어야 하지 않아?" 라고
욕실 문을 노크했던 날,
나는 바이올린 얘기를 내가 먼저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재고 있었던 중이라
좀 머뭇대었던 것도 사실이다.
평소와 달리 말수가 적어진 내게
"요즘 이정이가 고민이 없나? 오늘은 할 얘기가 별로 없나?"
라는 메주아줌마의 질문에도 나는 "응 없어." 라고만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하며 조용히 때를 밀어주던 메주아줌마는
"그런데 어때? 바이올린 그만두니까 좋아?" 라고 먼저 운을 떼어주었는데
나는 나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가 난감해서 머릿속을 굴리고만 있어야 했다.
"마음이 좀 안 좋아?"
메주아줌마의 말투와 표정은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워서
나는 무슨 대답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계속 대답을 않으면 내가 화가 난 것이라고 아줌마가 오해할 것 같았다.
"모르겠어. 바이올린을 안 하는건 너무 좋은데, 마음이 좀 이상해."
"음...그런건, 허전하다고 하는거야."
"맞아, 허전해. 그리고 가끔은 좀 슬프기도 해."
"어떤게 슬픈데?"
"모르겠어. 슬프지 않은데 바이올린을 볼 때마다 좀 슬퍼."
메주아줌마는 말했다.
원래 이별은 슬픈거라고.
소중하든 소중하지 않든,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헤어진다는건 늘 슬픈거라고.
오랫동안 같이 있었던 것과 헤어지는 것은 더 슬픈 일이라고.
그것과 같이 있었던 나와도 헤어져야 하는 것이라서
세상의 모든 이별은 슬프지만, 오래된 것과의 이별은 더더욱 슬프다고.
나는 메주아줌마의 어려운 말들이
나를 어른으로 대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메주아줌마의 기대에 맞게, 나도 어른스러운 대답을 해주고 싶었으나
나는 그저
우리집에 잠시 있었던 강아지 똘이만 떠올랐고,
베란다에서 고이고이 키워 암탉으로 키워내었던 병아리만 떠올랐다.
그래 그랬지. 똘이가 고모네로 갈 때에도
병아리를 마당 넓은 이모네로 보낼 때에도
나는 많이 울었었다. 집안 구석구석에서 그 아이들 모습이 떠올라 한동안 우울했었다.
"똘이처럼?"
"그렇지, 똘이처럼.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좀 괜찮지 않아?"
"응. 보고 싶으면 고모네 가면 되니까."
"바이올린도 그렇지 뭐. 그리우면 한 번씩 켜보면 되지.
지금은 헤어지는 중이라, 정 떼는 중이라 마음이 그런거야.
오랫동안 바이올린이랑 있었으니, 좀 더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괜찮아져."
그랬다.
나는 바이올린과도 이별을 해야 했고,
바이올린을 하던 나와도 이별을 하고 있었다.
바이올린과의 이별은 금세 괜찮아졌으나,
바이올린을 켜던 나와의 이별은 그 후로도 종종 떠올랐다.
나 없이 학교중창단이 환호를 받을 때에,
함께 음악을 하던 친구들이 모두 예중에 붙었다고 반친구들에게 박수를 받을 때에,
나는 가끔씩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이 근질대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으며 뒹굴대고,
친구의 생일파티를 거절하는 일 없이 죄다 참석하다가도,
예전의 내가 자꾸 튀어나와 내 뒷덜미를 잡았다.
1,2초 정도 이렇게 놀아도 되나 죄책감과 낯섬이 스치다가
아, 나 이제는 바이올린 안 하지! 라며 다시 현재의 나로 돌아오면
혼자서 마음이 머쓱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예전의 나와 헤어지느라 슬픈거라던 아줌마의 말이 떠올랐다.
아줌마 말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은 점점 짧아지고 옅어져서
마치 붙였다 떼었다 하며 접착력이 떨어지는 스티커처럼
슬픈 마음에도 힘이 없어지는게 느껴졌다.
이러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떨어져서
찾아내지도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러다가 영영 사라져버린 스티커는 한두개가 아니었다.
바이올린이 내 방 한 켠에서도 치워지고,
3-6시간의 연습시간을 채우던 예전의 내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되면서
메주아줌마의 말들도 희미하게 지워져버렸으나,
내 인생이 아주 큰 변화를 겪어야 하거나
남자친구든 지인이든, 누군가와 헤어져야 할 때마다
다시 떠올라 나에게 속삭여주었다.
이별은, 그것과도 헤어져야 하는데다가
그것과 함께 한 내 시간과도, 내 마음과도, 내 매일과도 헤어져야 하니
힘든거야. 원래 슬퍼야 하는거야.
이 정도는 해야지. 그게 그것에 대한 예의지. 그동안의 나에 대한 위로지. 하며.
메주아줌마는 내가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얼마 안 되어
내게 실전테스트를 해보는 것인양,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알고 있었다.
내가 메주아줌마를 아주 많이 따르는 것을 알고 있었던 엄마는
전 날 밤, 내게 조심스레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시골로 이사간다고 하였다.
어디인지 들었으나, 들어본적도 없는 낯선 지역이었다.
아줌마 시어머님이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돌봐주러 가야한다고 했다.
이 곳에도 아줌마가 돌봐주어야 할 내가 있는데,
나는 앞으로 속상한 일이 닥치거나, 걱정스런 고민이 생기면,
누구에게 물어보고 위로를 받아야 하나,
덜컥 겁이 나면서, 아줌마의 선택이 배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 내 등 때는 누가 밀어줘?"
"아줌마가 너 때 밀어주는 사람이니. 이제 너도 컸으니 너가 밀고,
필요하면 엄마가 밀어주면 되지."
나는 그제서야 확실히 알았다.
혹시 아줌마가 몰래 엄마에게 내 마음들을 옮겨 말하는게 아닌가 싶어
신경이 쓰였던 적도 있었다.
엄마는 나와 아줌마의 그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더 많이, 더 자세히 아줌마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걸.
아쉬운 마음까지 더해져 아줌마가 야속하기도 했다.
아줌마는 마지막 날,
내가 바이올린을 그만두었을 때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학교에서 돌아온 내게 "이정이 왔니?" 하고 반겨주었는데
나는 벌써 아줌마가 멀어진 것 같아서 평소처럼
뒷꽁무니를 쫓아다니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들어대지 못했다.
머뭇대는 내 마음이 너무 갑갑하여 기어이
방문을 열고 괜히 쿵쿵 소리를 내며 아줌마에게로 가서
"아줌마 이제 안 와?" 하고 뾰족하게 물었다.
아줌마는 손에 묻은 물을 툭툭 털어 바지춤에 닦더니
포옥 안아주었다. 아줌마의 포옹은 처음이었는데
반찬냄새나 세제냄새같은 것들의 사이를 뚫고 뜨끈한 향이 훅 올라왔다.
"아줌마 시골 갔다가, 이정이가 크고나면 다시 올게.
이정이가 어떤 어른이 됐을지 너무 궁금해서 아줌마가 보러 와야겠어."
"시어머니를 올라오시라 그러면 안돼?"
"아줌마 집에는 같이 살 방도 없고, 부모님더러 오라고 하는건 예의가 아니지."
아줌마의 냄새를 이제야 처음 알았다는 것이 슬퍼서
기어이 아줌마 앞에서 눈물을 보일까 맘이 다급해졌다.
아줌마를 홱 밀쳐내고는 더 크게 쿵쿵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줌마 퇴근시간은 6시.
나는 하루종일 마음을 갈팡질팡 대다가
엄마와 아줌마의 마지막 인사인듯한 대화소리가 들리길래
얼른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서둘러 샤워기를 틀고, 훌훌 옷을 벗고, 마구 씻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있으면 아줌마가 들어와서 마지막으로
때를 밀어줄지도 모르다 생각했다.
하루종일 하고싶은 얘기도, 듣고싶은 말들도 많았는데,
괜히 툴툴대느라 아무것도 나누지 못했는데,
때를 밀어줄지도 몰라, 때를 밀어주러 들어올지도 몰라.
물줄기 사이로
"어유, 얘는 인사해야 하는데, 왜 갑자기 샤워를 하고 있대?"
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욕실 문을 똑똑 두드리며 "이정아 씻어?" 하는
아줌마 목소리도 들렸다.
들어오길, 들어오길, 평소처럼
소매와 바짓단을 둥둥 걷어부치고
"오늘은 때 안 밀어도 돼?" 하며 들어와주길 바랐다.
그게 아니라도, "왜 대답이 없어?" 하고 문을 열고 물어봐준다면
"아줌마 때 밀어주고가-" 라는
마지막과 어울리지 않는 요구라도 해 봐야지. 생각하며
일부러 안 들리는 척 대답을 안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노크 후에 너무 잠잠해서, 씻는둥 마는둥 뛰어나와
"메주 아줌마 갔어??!!" 묻는 내게
"아니 넌, 아줌마한테 제대로 인사도 안하고 왜 그 시간에 샤워를 하니?"
라는 엄마의 질책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줌마는 그렇게 갔다.
나의 아줌마들 중에 유일하게
나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해주려고 했던 메주아줌마는
6학년 꼬마의 어줍짢은 잔머리 앞에서
마음을 접고 떠나가야 했다.
아줌마가 아주 미워졌다고 오해하는 것은 아니겠지.
마지막 인사도 하지 않는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로 기억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잊어버리지는 않겠지.
나는 아줌마에게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 때마다
배운 것을 성실하게 복습했다.
샤워를 할 때에도, 친구와 싸웠을 때에도,
장래희망 칸에 습관처럼 바이올린을 쓰려다가 멈춰질 때에도,
이별은 원래 힘든거야.
아줌마와도 헤어져야 하고, 아줌마와 함께 했던 나와도 헤어져야 하니
힘든건 당연한거야.
그렇게 아줌마가 해 준 말을 복습하다 보면
마음이 좀 괜찮아졌다.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한 오래된 스티커처럼
슬펐다 괜찮았다를 반복하다가 보면, 그 어느 날이 되어
아무도 모르게 뚝 떨어져서 찾아내지도 못하게 될거야.
그렇게 괜찮아질거야. 내게는 메주아줌마가 해준 말들이 남아 있으니
괜찮을거야. 제법 괜찮게 살아갈거야.
그러니 메주 아줌마,
안녕.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정말 꼭 찾아와주길.
메주아줌마가 떠나고, 나는 메주아줌마를 다시 만날 어른을 꿈꾸며,
나의 어린시절도 떠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