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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권이 아줌마와 페페 아줌마 1

그녀들은 왜 그리들 비극적이었을까

by 이정

메주 아줌마를 마지막으로

이후의 아줌마들 기억은 내게 선명하지 않아졌다.

더 이상 마음을 주는 것에 기운을 잃어서였을까.

아니면, 일일히 아줌마들을 관찰하고 가까워지기에

나의 '집 밖의 삶'이 너무 바빠진 탓이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 나의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

엄마에게 종종 아줌마들에 대한 이야기를 묻곤 했다.

놀라웠던 것은

어느 시점부터 나는 오고갔던 아줌마들의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아주 어릴적의 기억은 그리 세세히 저장해 두었으면서,

중등시절의 아줌마들은 마치 만난적도 없었던 것처럼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어도 떠올려지지가 않았다.


그나마 영권이 아줌마는 겨우 기억에서 떠올렸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영권이 아줌마'가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영권이 아줌마에게 닥쳤던 '일'이 떠올랐다.

엄마는 어떤 아줌마를 물어도 결국

"아니, 영권이 아줌마가 기억이 안 나?" 하며 자꾸

영권이 아줌마 얘기를 꺼내는 것을 보니

엄마에겐 제법 마음에 들었던 아줌마였던듯 하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이 갑갑한지 엄마는

자꾸 내게 영권이 아줌마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는데

전라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고, 음식솜씨가 아주 좋았던,

키가 훤칠하고 머리가 아주 짧았던,

까지 엄마가 여러번 반복해도 나는 기억이 깜깜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아빠가

"그, 우리집 다니다가 남편 상 치뤘던 이?" 하는 순간,

나는 영권이 아줌마의

아주 짧은 숏컷(가수 현미의 헤어스타일과도 비슷했다고 기억한다.)과

낯설어서 좀 무섭게 들렸던 괄괄한 사투리가 단박에 떠올랐다.


뻘만 가득하던 내 기억은

순식간에 밀물을 맞이하듯,

현관문을 성큼성큼 들어서던 키가 아주 컸던 풍채와

엄마와 김치를 담그며 하하 웃던 아줌마의 목소리가 우수수 떠올랐다.

엄마는 음식솜씨가 아주 좋아서

아줌마들이 재료를 손질해두면 엄마가 와서 마무리를 하는 식이었는데,

영권이 아줌마만큼은

엄마가 옆에 붙어 레서피를 물어가며 식사를 준비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경상도가 고향인 엄마의 음식은

일정부분 전라도 음식과 비슷한 부분들이 있는 것이 늘 의아했는데,

그것이 영권이 아줌마 영향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깨닫기도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영권이 아줌마는 내게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나는 중학생이 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바이올린을 그만두는 대신, 그 연습량만큼 공부에 투자하기로

엄마와 철썩같이 약속을 했으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운명을 내버린 나는

정말이지 갈피 못 잡고 사방을 뛰다니는 , 고삐풀린 망아지였다.

국민학생 때 놀지 못했던 것을 원 풀이라도 하듯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여기저기를 쑤시고 돌아다니며

떡볶이를 먹고, 스크린 잡지를 뒤적이고, 홍콩영화를 보았다.


천녀유혼과 영웅본색은 나에게

미치도록 절절한 사랑을 알려줬는데,

주윤발파, 유덕화파와 함께 삼국시대를 이끌었던 장국영파의 활동은

학교보다 집보다, 내게 더 중요한 일상이었다.

학교에서는 시간을 쪼개가며

장국영파들과 각종 정보를 주고받고, 새로나온 사진을 교환하느라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집에 와서도 인사는 하는둥 마는둥

얼른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유덕화 사진을 주고 받아온 장국영 사진이라던가,

홍콩에서 발매되었다는 음악을 담아놓은 공테이프라던가,

그런 것들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며 감상하느라

아줌마는 물론이거니와, 가족들 얼굴도 볼 틈이 없었다.


그러니, 내게

새로운 아줌마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저 별 탈 없이 일상이 돌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내가 장국영에 몰입하는 데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되었다.

아줌마가 퇴근 할 때에,

방문을 열고 나와 꾸벅 인사하는 것 정도가

그 시절의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갑작스러운 아줌마의 공백을 가장 무서워 했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줌마 이야기가 나오면

"아유, 아침에 나가야 하는데 갑자기 못 온다고 하면,

시어머니는 서슬이 퍼렇지, 늬 동생은 아직 어리지,

아주 내가 피가 바짝바짝 말랐다." 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시간이 켜켜이 쌓여도, 그 시절의 불안한 마음은

어디선가 뾰족이 튀어나오곤 하는 듯 하다.


엄마의 기억에 의하면,

영권이 아줌마 이전에도 '별별 이들' 이 많았다고 하는 걸 보니

일머리 좋고, 털털하고, 음식솜씨가 제법이었던 영권이 아줌마는

엄마에게 유독 구세주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

준구 아줌마 얘기를 꺼내도, 메주 아줌마 얘기를 꺼내도,

"너, 영권이 아줌마는 기억이 안 나?" 라고 묻는 것일테다.


엄마에게 아주 든든했던 영권이 아줌마는

안타깝게도 긴 시간을 우리집에 머물지 못했다.

아줌마가 급작스레 우리집으로 출근을 하지 못 했던 날,

그 날만큼은 내게도 기억이 생생한데

그 날 아침의 식탁 위는 정갈함 없이 어수선 했고,

엄마는 아빠에게 우는 소리 중이었으며,

동생은 이 상황을 눈을 굴리며 살피고만 있었다.

늦어지는 아침이 맘에 들지 않는 듯,

끙 소리를 내며 자리를 잡고 앉은 할머니에게 아빠는

"어머니, 오늘 어머니가 여정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좀 봐주셔야겠는데요...."

라며 주저주저 말문을 열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으니, 동생은 막 국민학교를 입학했을 때였을 것이다

국민학교 1학년한테 뭐 그리 손이 갈 게 많다고,

할머니는 살림이나 육아를 돕는 것에 박한 분이셨다.

"또 그만 둔다디?"

날카로운 할머니의 반응에

나는 엄마가 안쓰럽고, 할머니가 야속해서

할머니를 흘겨보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동생은 난데없이 죄인이 되어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렇다네요...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보려는 엄마를 대신해 아빠는

"그 집 남편이 죽었대요."

라고 대답했다. 아빠 옆에 추스려 앉던 엄마는 얼른 아빠를 꼬집었는데,

내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비밀이 너무 많았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는

할머니도 날을 세우지는 못했다.

해결이 된 것인지, 문제를 뒤로 미룬 것인지 모를

영 불편한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는

얼른 동생 방에 들어가서

"왜 죽었대? 너 뭐 들은거 있어? 왜? 왜?" 하며 물어댔다.

그 즈음에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동생이 더 빠싹했다.

"몰라. 엄마가 안 가르쳐 줘."

동생에게도 별 소득이 없자, 나는 도대체 호기심을 참아내지 못하고

아빠를 배웅하고 돌아온 엄마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엄마, 왜? 왜 죽었대? 왜?" 하고 숨이 넘어가도록 물었지만

엄마는 학교나 가라며 나를 현관문 밖으로 밀어내었다.


등굣길에서도 친구에게 호들갑을 떨면서

"우리집 아줌마 남편이 죽었대!" 라며

둘이서 원인이 무엇일지 추리를 해보던 것이 기억난다.

"교통사고였을까? 살인사건이었을까? 아프단 말은 들어본 적 없으니 병이었을리는 없어!"

영권이 아줌마의 불행 앞에서

철딱서니라고는 없었던 나는 그저

내 인생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스며든 것에 신기했다.

무언가 대단한 사건의 목격자가 된 것 같았고,

소설 속 인물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얻게 된 듯 했다.


그 날이었을까, 혹은 며칠 후였을까.

아줌마가 구해지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하는 엄마 옆으로 다가가

나는 집요하게 물어댔다.

엄마는

뭐 좋은 일이라고 그리 성화냐고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내가 네 앞에서 괜히 아줌마 애길 꺼냈다며 후회를 하기도 하다가,

"목이 부러져서 죽었대."

라며 내게 항복을 했다.


영권이 아줌마 남편은

눈을 뜨면 소주부터 찾는 알콜중독자였다.

그건 나 또한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영권이 아줌마는

'술독에 빠져죽을 인간' 이라며 엄마에게 자신의 남편 흉울 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권이 아줌마의 큰 목소리는 때로는

방문을 뚫고 내 방 구석까지 닿곤 했기 때문에

늘상 입에 달고 살았던 '술독에 빠져죽을 인간' 이라는 말은

나도 수시로 들었었다. 다만,

술을 좀 많이 드시는구나- 정도였지 알콜중독자라고는 알지 못했다.


우리집에 오지 못했던 그 날도

영권이 아줌마의 남편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오던 참이었다고 했다.

영권이 아줌마의 집은 4층짜리 빌라였는데

비틀대며 계단을 걸어올라 오다가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고 했다.

술독에 빠져죽을 줄 알았던 그 아저씨는

예상 외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목이 부러져서 죽었다.

한 번 말문이 트이니, 술술 묻지도 않은 것들까지 엄마는 털어놓으며

"차라리 잘됐어! 버는 족족 술값으로 써버리던 인간! 으이구!"

하며 화를 내고, 또 안타까워 하고,

그래도 마누라를 패지는 않았다며, 준구아줌마를 기억 속에서 불러오기도 했다.


영권이 아줌마의 그 후 이야기는

얼마전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 집이 무서워 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남편이 널부러져 있던 거실을 볼 때마다,

섬뜩한 마음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장례를 치루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그만두게 되어 미안하다고 엄마에게 전화해서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며 고향으로 내려갈거라 했다고 한다.


나는

목소리도 키도 아주 컸던 영권이 아줌마의 내 기억이 맞는 것인가 싶었다.

어린 눈에 본 것이라지만,

설사 남편의 혼이 나타난다 해도

삿대질을 하며 '술독에 빠져 죽은 인간' 아니,

'술쳐마시다 목부러져 죽은 인간' 이라고 호통을 칠 것 같았던 그녀였다.

사실, 일을 그만두기는 커녕

다시 우리집으로 출근하며 "그 인간 없으니 속이 다 후련하다!" 고 하하 웃을 듯한 아줌마였다.


아, 그녀도 여자였구나. 난데없이 미안해졌다.

고단한 삶에, 남편의 술주정을 받아내느라

목소리도 커지고 성격도 괄괄해졌겠지.

그 큰 아줌마가 남편의 술주정 소리가 고요해진 집 안에서

옹동그리고 구석에 앉아 두려움에 떨었을 밤들을 떠올리니

몇 십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녀가 안쓰러워졌다.

엄마에게 물으니, 그 때의 그녀는 나보다도

열 살은 어린 여자였다. 결혼을 일찍 한 것인지

아이 둘은 이미 꽤 커서 남편과 둘이 지냈었다고 한다.


"술에 쩔어 사는 이도 남편은 남편이라고,

죽어서 무섭기도 하고, 혼자된 게 무섭기도 했겠지."

대장부인척, 그러나 여린 속이 있던 그녀는

그렇게 비극적인 사건을 전하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엄마는 몇 번의 아줌마를 거쳐

페페 아줌마를 집으로 들였다.

엄마의 표현이 따르면,

알콜중독자인 영권이 아줌마의 남편보다

더 대책없고 말썽꾼인 남편을 둔

아줌마였다고 했다.

그 시절 아줌마들은 모두가

비극 한 두개쯤은 인생에 들여놓고 사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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