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페아줌마는 늘 갑옷을 두르고 출근했다
새로 온 페페 아줌마는 당황스러울만큼 낯선 분위기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장 투피스로 빼입고,
짙은 화장에 귀걸이, 팔찌, 반지까지,
마치 중요한 모임에 나가는 차림새로 아침마다 출근했다.
일을 잘 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페페아줌마의 특이한 점은 하나 더 있었는데
저녁준비를 해 놓고 퇴근을 해야 할 시간이 지나도 늘
부엌에서 엄마를 붙잡고 수다가 늘어졌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0
페페아줌마는 편한 옷(아줌마는 화려한 핸드백에서 후줄근한 편한 옷을 넣어 다녔는데,
그 옷이 무슨 죄가 있다고 갈아입을 때마다 옷에게 짜증을 내곤 했다.)을 입고 바닥을 닦고 있었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빨간색 립스틱과 주렁주렁한 장신구들이 괴이하게 보여서
정말 희한한 아줌마가 왔구나, 라고만 여기고는 그 후부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줌마는
저녁준비를 마치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다른 아줌마들과는 달리,
늘 다시 곱게 화장을 고치고 옷을 갈아입는 등 퇴근준비도 한참이 걸렸고
퇴근할 채비를 마치고 나서도 엄마를 붙들고 늘상 수다를 이어갔기 때문에
나는 식탁에 앉아 저녁을 기다리며 페페아줌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막 퇴근해 들어와 서둘러 가족들에게 저녁을 먹여야 하는 엄마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끊으려 했지만,
페페아줌마는 쉬이 엄마를 놔주는 적이 없었다.
나는 붙잡혀 있는 엄마의 곤혹감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괜히 큰소리로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엄마 배고파!" 하고 퉁명스럽게 부르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유, 이정이 얼른 밥 줘야겠네요." 하며 과장스럽게 바쁜 움직임을 보였다.
보통, 페페아줌마는 좀 마땅찮은 표정으로 떠밀리듯 퇴근을 하곤 했지만 때로는
"이정이는 맨날 배가 고프구나. 하긴, 한참 클 때지.
우리 애들도 클 때에는 허구헌날 소고기에 진수성찬으로다가......."
하며 말을 이어가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그런 날은 저녁을 기다리던 할머니가 나와서
"저녁 안 주니!" 하며 쯧 소리를 내어야만 아줌마의 수다는 멈추어졌었다.
페페아줌마가 고운 정장으로 갈아입고
부엌에 서서 떨던 수다는 언제나 '내가 돈이 많았던 시절' 에 대한 이야기었다.
"이정이 엄마, 이거 식기 나갔더라. 버려야지. 백화점 가면 비싼 그릇 있잖아?
그런거로 사. 남대문시장 같은데서 사지 말고. 비싼건 이도 잘 안 나가. 비싼 값을 해요.
내가 전에는 백화점에서도 최고급으로만..."
혹은,
"이정이 엄마는 바깥일 하는데도 좋은 옷은 없는거 같더라. 이건 어디꺼야?
나는 페페꺼만 입어. 이게 내 스타일에 제일 잘 맞더라구. 이정이 엄마도 늘씬해서
잘 어울릴 거 같던데, 언제 백화점 가서 입어봐요. 맨날 싼거만 입지 말고."
이런 식이었다.
우리는 강남에 살았고, 내가 바이올린을 그만두긴 했어도,
아빠의 월급은 늘 빠듯했고, 장남인 아빠가 건사해야 할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동생은 아파서 여러번의 수술비를 대야 했기 때문에
식기나 중요치 않은 것들까지 호기롭게 돈을 쓸 사정은 되지 않았고,
엄마의 옷은 대부분 10여년이 훌쩍 지난 것들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늘 정성스레 꾸미었고, 친구들은 너네 엄마가 최고 멋지다며 칭찬을 해주기도 했었다.
그런 엄마에게, 주렁주렁 귀금속을 차고, 페페라는 옷을 입은 채,
집안을 거만한 눈빛으로 둘러보거나, 엄마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뻐기는 페페아줌마의 언행은
참기 힘든 모욕감으로 다가오곤 했다.
나는 페페아줌마의 거들먹거림이 길어지는 날이면,
엄마의 눈치에도 아랑곳 않고
"나는 이 집도 충분히 좋은데?"
"내 눈엔 엄마가 제일 예쁘구만..." 하며
혼잣말이라기엔 꽤 크고 명확한 목소리로 페페아줌마를 향해 한마디씩 던졌으나,
페페아줌마는 들은 척도 안했다. 어차피 아줌마의 그 시간은
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화려했던 시절과 부티나는 마인드를 들어줄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듯한 의지였다.
하루는 엄마와 우리집을 무시하는 듯한 페페아줌마의 말들에 너무 블쾌해서
페페아줌마가 집을 나서자마자 엄마를 붙잡고 화를 내었다.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매일 저 난리야? 듣기 싫어 죽겠어!
엄마도 그만 좀 하라고 따끔하게 말 좀 해!"
라고 신경질을 내었다. 내가 화난 탓도 있었지만, 엄마가 속이 상할 것이 염려되어
되려 더 난리를 친 마음도 있었다.
엄마는 의외로 평온한 목소리였다.
"안쓰럽게 생각해. 불쌍한 사람이야.
예전에는 정말 잘 살았나본데, 남편이 도박에 빠져서
사업도 다 말아먹고, 지금도 정신 못 차리나보더라."
페페아줌마가 잘 살든 못 살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만,
왜 그리 작정하고 우리집을 무시하는듯한 말을 하는지,
왜 자꾸 엄마 옷차림이나 화장품을 가지고
싸구려네, 어쩌네, 잔소리질인지,
나는 페페아줌마가 걸레질을 할 때마다 귀에 버겁게 달려 위태롭던
아기 주먹만한 귀걸이가 떠올라서 부아가 났다.
"도박이 그렇게 무서운거더라.
도박으로 집 날리고, 회사 날리고, 다 날려서
하루는 술을 마시고 자기 손가락을 잘라버렸대.
그런데 좀 지나니까
손에 고무줄을 묶어서 거기에 화투 꽂고 하더란다.
너네는 정말, 도박이며 도박하는 인간이며,
곁에 뒤서도 안돼. 차라리 중병이 낫지 도박은 주변도 다 망하게 하는 병이라더라."
엄마는 페페아줌마가 등장한 이후로
나와 동생에게 하루걸러 하루, 도박의 무서움을 강조하곤 했다.
주변에 화투를 치는 어른들이 없어서, 잘은 몰랐지만
TV를 보면 남자어른들이 껄껄대며
화투장을 찰지게 소리내며 노는 것을 종종 본 적 있었다.
그게 그리 무서운 놀이였다니,
나는 사실 엄마의 말을 다 믿지는 않았다.
아니, 엄마보다는 페페아줌마의 과장스런 말투를 믿지 않았다.
"그런게 어딨어. 그 아줌마 또 거짓말 치는거지 뭐.
예전에 부자라는 것도 다 거짓말일걸?"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니야. 아줌마가 보여줬는데 정말 옷이 다 페페더라."
"페페가 비싼거야?"
"모르지 엄마는. 백화점에서 파는 거라던데, 엄만 백화점에서 옷 안 사잖니."
집에 일하러 오는 아줌마도 수두룩하게 갖고 있는 백화점 옷을
가서 구경해본 적도 없는 불쌍한 우리 엄마.
엄마가 안쓰러워질수록, 나는 페페아줌마가 불쾌해졌다.
가끔 아줌마와 마주치면 아줌마는 내게
"이정이 머리 잘랐네? 핑클퍼머를 좀 넣으면 더 이쁠텐데."
라는 식의 아는체를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꼭 한마디씩
"핑클퍼머 선도부에 잡히거든요?"
라던지,
"저는 이게 좋아서 하는건데요?"
라는 식으로 꼭 한마디씩 쏘아붙였다.
아줌마는 아랑곳 않고 내 등을 향해
"어유, 예전에 우리 애들은...." 하며 또 자랑을 시작했었는데
나는 쿵! 하며 방문을 닫아버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고,
아마도 아줌마는 닫힌 방문을 붙잡고서라도 자랑을 하고 있을거라 생각하며
혼자 이죽거리기도, 씩씩거리기곤 했다.
어른이 되고나서, 어디선가 TV에서
노름꾼이 도박을 끊고자 손목을 잘라버리고는,
의수를 낀 채로 도박을 계속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아, 어쩌면 페페아줌마 말이 다 거짓말은 아닐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매일이 불쾌했던 아줌마였으나,
오죽하면 그리 우리를 붙잡고 화려했던 과거자랑을 일삼아 했을까 싶으니
그 시절의 엄마처럼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투피스를 차려입은 모습으로, 끝도없이 자랑을 하는 페페아줌마 앞에서
그랬군요, 그렇네요, 하고 조용히 대답하는 엄마가 참 안쓰러웠다.
아줌마가 당당해뵜고, 엄마는 그리 작아보였다.
그러나 지금 돌아켜보면, 아줌마의 영광스러웠던 과거가 모두 사실이라면,
아마도 아줌마의 자존감은 그 당시
바닥으로 곤두박질 쳐 있었을 것이다.
자존심 강한 성격에, 그렇지 못한 자존감을 어떻게든 끼워 맞춰 사느라
매일 일 삼아 자랑하는 것에 온갖 공을 들였을테고,
자신의 형편과 마음이 괴로우니, 그 말들을 견디어주어야 하는 이들까지는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맥락없이 자랑을 일삼아 늘어놓는 이들을 보면,
페페아줌마가 떠오른다.
자존심과 자존감이 나란하지 못할 때에,
그 격차로 인한 괴로움이 저리 터져 나오는가 싶기도 하다.
페페아줌마는 마지막 날까지도
사뭇 당당하고 거만한 태도로 인사를 건넸다.
다른 아줌마가 오기로 했다는 엄마의 조심스런 통보에
"아유, 나도 이런 일 못하겠더라구. 내 살림도 내가 손까딱 안해봤는데,
남의집 살림이 나한테 가당키나 하겠어.
남편이 이제 좀 정신을 차리려나, 사업을 다시 시작하려는거 같아서
나도 그거 뒷바라지나 해야지 하던 참이었어요.
이정이 엄마 사정이 딱해서 내가 먼저 말을 못 꺼냈는데
잘됐어 잘됐어. 집이 좀 크고 해야 살림 재미도 더한데,
그것도 내가 좀 마뜩찮기도 했고."
페페아줌마는
고운색 페페를 위아래 투피스로 차려입고,
보글보글 퍼머머리 아래로 길게 늘어진 귀걸이를 달랑대며
기어이 불쾌한 마무리를 한마디 던지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이정이 엄마 꼭 페페 가봐. 거기 옷들이 좋다니까!"
아줌마의 퇴장으로
나는 환호를 질렀고, 동생은 덩달아 박수를 쳤으며,
할머니는 진즉에 내보냈어야 했다며
도박쟁이 남편만 탓할게 아니라, 정신머리 없는 마누라가 저 집을 더 말아먹게 생겼다고
쯧 소리를 여러번 반복해서 내었다.
엄마도 별 말은 안했으나, 버릇없다고 우리를 혼내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내심 기쁘고 반가운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페페아줌마에게 가장 시달린 것은 엄마였다.
나는 할머니 앞이라서 내색하기 힘들 엄마를 대신해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와 이제 잘난척 안 들어도 된다!!" 하고는
어느날보다도 맛있게 밥 한공기를 싹 비워냈다.
영권이 아줌마 남편보다도, 더 골치아픈 남편이 페페아줌마 남편이었다고 엄마는 말하지만,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어떤 아줌마들보다 페페아줌마가 가장 불행한 마음을 품고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 불행은 마음 속에 잠잠이 두는 것이 버겁도록 거대해서
우리가 언짢아 하는 것을 알면서도 주워담을 방도를 찾지 못한 탓이었으리라.
어쩌면 아줌마의 페페 투피스는 자신의 불행을 들키지 않을 갑옷이었을테고,
번쩍대는 장신구와 백은 좌절시키는 것들에게 겨눌 무기었을지도 모른다.
아줌마의 마지막날, 마치 큰 경사가 난 양
소리지르고 박수치고, 응원 대신 가시박힌 말들을 쏟아내었던 우리를 되짚어보면,
페페아줌마도, 준구아줌마나 영권이아줌마처럼
삶이 고단했을 사람인데,
본인의 마음을 다잡지 못한 죄로 사람들의 미움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가장 슬픈 인생은
누가 뭐래도 페페아줌마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