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양 집사님 2

사춘기 한 가운데에서

by 이정

무뚝뚝한 양집사님도 시간이 흐르며

나와도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어갔다.

생각보다 집사님은 말수도 많고, 농담도 많은 사람이었다.

집사님은 처음부터 내게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줌마라기 보다는 친이모에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가끔 사투리 가득한 잔소리를 던지거나,

이것저것 내게 퉁박을 주더라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누구보다도 우리를 가족으로 여기고 있고,

지금껏 만나온 아줌마들 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묵직한 분이라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아빠와는 분명 달라서

사춘기 한복판의 나도

집사님에게는 부모님 대하듯 퉁명스럽지는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으로 쑥 들어가지 못하고

집사님 안부를 묻거나, 뭐하고 계신지 괜한 참견으로 인사를 대신하곤 했고,

부엌에 물이라도 뜨러 가게 되면,

음식을 하고 있는 집사님 곁에 가서 뭐라도 한마디 걸고 방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루종일 잰걸음으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집사님은

음식을 할 때에나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었는데

그럴 때 가서 말을 걸다보면, 대화가 제법 오래 이어지곤 했엇다.

집사님의 이야기는 대부분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하여, 막둥이 엄마에 대한 애잔함,

그리고 결국은 깐깐한 친할머니에 대한 야속함으로 마무리 되곤 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늦게 본 막내딸을 얼마나 애닳아하시며 돌아가셨는지

가끔은 눈물까지 그렁대며 이야기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엄마에게 잘해라.' 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중2, 중3. 나의 천둥같은 사춘기가 시작되던 참이었다.


"하이고... 늬 할머니는 진짜 희한타." 라고

내 귀에 대고 소근소근 하면, 나는 귀가 간지럽기도 하고 집사님이 눈치를 심하게 보는게 웃기기도 해서

"그냥 말해도 돼요." 라며 하하 웃곤 했는데

그러기라도 하면 집사님은 방문 닫고 계신 할머니가 듣기라도 할까봐

펄쩍 뒤며 손사래를 치느라 손에 묻은 다진마늘이며 간장이 사방 튀었다.

그런 집사님을 보는 게 나는 너무 웃겨서 일부러 더 크게 깔깔 웃었는데

집사님은 "아이가? 또 저러네 또!!" 하며 방으로 들어가버리라고 나를 발로 밀어내곤 했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집사님은 너무 귀여웠고, 내게 그런 속엣말을 해주는 것도 좋았고,

집사님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내 자신도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퉁명스러운 것이 더 어울려져 버린 내가

이렇게 싹싹하고, 유쾌하고, 다정하게 굴 수 있다는 것은

내게도 꽤나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음식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엄마가 무언가를 해주면, 알아듣지도 못할 거면서

어떻게 만드는지, 무엇이 들어가는지를 꼭 묻곤 했었다.

집사님 옆에 붙어 있으면 이야기 중간중간 음식 만드는 팁들을 섞어 넣으시곤 했는데

"이정아. 대파는 깨깟이 씻으래이. 뉴스에 나왔는데 파에 농약이 글케 많다카더라."

했던 말이나

"양념은 미리 만들어야 한대이. 안그러면 국물에 고춧가루가 둥둥 떠다니기 십상이래이."

하던 팁들은 아직도 내 귓가에 남아서

파를 썰 때마다, 양념을 만들 때마다

집사님 목소리나, 그 때의 표정, 혹은 부엌 작은 창으로 들어오던 햇살 같은 것들이

내 곁을 맴맴 돌곤 한다.


교복치마의 허리를 둥둥 말아올려 치마가 짧아질수록,

몰래 뿌린 무스로 앞머리가 올라갈수록,

나는 엄마와 쉼 없이 부딪혀야 했고, 좀 조용해지나 싶다가도

아빠가 퇴근을 하고 나면 2차전이 시작되곤 했다.

요즘 말로 '걸크러시'에 빠져 있던 때였다. 강수지나 하수빈 등의 가수를 질색할 나이었다.

나의 치기어린 쎈 척은 부모님 앞에서도 달라지지 않았고,

엄마아빠는 나의 끝간데 없는 변화에 허둥대던 때였다.


그러나 그 즈음, 부모님보다 더 많이 부딪혔던 사람은

다름아닌 할머니였다.

스스로 '할머니'이기를 원치 않는 분이었다.

내게 푸근한 정을 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매일 아침 화장을 곱게 하고,

짧은 퍼머머리를 양쪽에 실핀을 여러개 꽂아 잔머리 하나 안 흘러나오도록 고정한 채

꼿꼿하게 앉아 신문을 정독하거나, 어려운 책을 줄을 그어가며 읽던 할머니는

본인에게 깐깐한 만큼, 남들에게도 쉬운 분이 아니었다.

나는 '할머니' 이기를 거부하는 할머니의 속내를 알고는

괜히 가만 있는 할머니에게 가서

"할머니도 이제 경로당 가야지?" 라고 하거나

보고 계신 TV채널을 '가요무대' 같을 걸로 돌려버리면

할머니는 진심으로 화가 나서 내 등짝을 내리치고

가버리라고 꼬집거나 밀쳐버리곤 하셨다.

그리고는

"나는 그런 늙은이들하고는 안 어울려!" 라고 바락 소리를 지르시거나

얼른 TV뉴스같은 채널로 돌려버리셨는데,

나는 장난인지 오기인지 심술인지 모를 맘으로

"할머니도 늙었는데 뭘!" 하고 도망가거나 다시 '가요무대'로 채널을 돌려놓고 심술궂은 웃음을 짓곤 했다.


나는 성악설을 믿으면서도, 인간의 본성은 약자에게 너그러워진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에서, 나에게 약자는 엄마였다.

사춘기를 핑계삼아 엄마와 수시로 전쟁을 치루면서도

나는 허구헌날 엄마를 울리는 할머니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요구에 한마디도 못하고 물러서는 엄마를 보면,

냅다 뛰어가서 내가 대신 악다구니를 쓰곤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잡아당기고 입을 틀어막기도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내 입을 통해서라도 속을 터뜨려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사정을 들어본 적 없고, 엄마의 눈물만 받아내었기에

어쩌면 할머니 입장에서는 나같은 손녀가 억울하고 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물로 범벅된 속상함을

하루가 멀다하고 털어내는 엄마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더 깊은 속내에서는

울고 있는 엄마 앞에서 버겁고 난감했기에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는 내게 적이었다.

아빠에게 호되게 혼나고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서라도

반복되는 이 상황을 멈추고만 싶었다.


할머니와 전쟁을 치루고 나면,

집사님은 나무람인지 응원인지 모르게 갈팡질팡 내게 말을 걸었다.

넌지시 할머니가 너무했다고 하다가, 그래도 내가 잘못했다고 하다가,

이내 엄마가 안됐고, 그런 엄마를 지켜보고 있을 외할머니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마치 집사님 속에 외할머니가 들어오기라도 한 듯 하여

혹시 또 있을 갈등에 전의를 불태우곤 했다.

집사님 말대로, 이토록 엄마가 울고 지내는 것을 외할머니가 지켜보고 있다면

기함하실 노릇이었다.

버르장머리 없다 하시겠지만 그래도

엄마를 대신하여 싸워줄 내가 있다는 것에

분명 안도를 하실거라 믿었다. 그러니 나는 더더욱 멈출 수 없었다.


여름방학이었던 어느 날,

엄마가 준비한 점심메뉴로 할머니가 타박을 시작하셨던 날,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할머니가 방 안에서 전화기를 통해

작은아빠에게 엄마 흉을 보는걸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점심으로 오징어 덮밥을 먹으란다.

내 이가 성치 않은걸 알고 일부러 저걸 만든게지.

흥. 내가 먹을줄 알아? 엎어버리고 말거야."

할머니가 점심메뉴를 묻기에 엄마는 오징어덮밥이라고 했고,

그건 내가 졸라 정해진 메뉴였다.

엄마가 얘기했을 때에는 "그래?" 하고 별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던 할머니인데,

내가 부르러 가보니 엄마 흉이 늘어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작은아빠에게 했던 자신의 다짐을 반드시 지킬 요량이었는지

식탁으로 나오며 "나 못 먹으라고 부러 이걸 만들었니?" 라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돌연한 할머니의 반응에 엄마는

할머니에게 갈 그릇을 든 채로 굳어버렸고

나는 기어이 엄마 손에서 그릇을 뺏어들고

싱크대에 버려버렸다.

"엄마! 이제 할머니 밥 차려주지 마!

그리고 허구헌날 못되게 굴거면 할머니 이 집에서 나가!"


할머니의 고함, 엄마의 비명.

나는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씩씩대었고

집사님은 부랴부랴 내게 달려오셨다.

"와그라노. 니 와그라노."

할머니에게 버릇없다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내심

내 편을 드는 듯한 표정이었던 집사님이었는데 그 날은

내 어깨를 탁탁 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버릇없이 따박따박 달려든 적은 있었어도 이렇게 선을 훌쩍 넘은 적은 없었다.

분에 차서 날이 선 나를 집사님은 잔뜩 울상을 지으며

할머니에게 가서 빌자고 잡아끌었다.

"아, 싫어요!!"

나는 처음으로 집사님에게 소리를 질렀다.


눈치를 살피러 거실에 나가보니 집 안은 엄마가 훌쩍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아... 엄마가 자꾸 우는게 싫어서 내가 나선건데

내가 또 엄마를 울려버렸구나.

맥 빠지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집사님은 엄마 옆에 앉아

"여정이 엄마. 괜찮아요 괜찮아. 그만 울어." 라며 달래고 있었는데

조용히 물을 떠서 후다닥 방으로 도망가는 내 뒤를 기어이 다시 따라왔다.

"니 할머니한테 잘못했다 해라.

니 맘은 안다만, 그게 엄마 위하는게 아니다.

하늘에서 외할머니가 얼매나 속을 끓이시겠나.

막둥이는 서러워서 울고, 손녀는 버릇없이 굴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솔직히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집사님은 나의 투쟁을 찬성하지 않았던 거구나.

내 맘을 이해하나, 내 행동을 옳다 생각한 건 아니었구나.

이제껏 우왕좌왕 맘을 살피던 집사님의 반응을

내가 잘못 짚고 있었다는 생각에 후회가 몰려왔다.

생각해보니 정말, 외할머니가 하늘에서 날 보며 울고 계실 것만 같았다.


그 날 밤, 나는 아빠에게 크게 혼이 나고,

내키지 않았지만 할머니에게 무릎 꿇고 사죄를 했다.

모두가 미웠다.

엄마는 도대체 날더러 어쩌라고 때마다 하소연하며 날 붙잡고 우는건지.

아빠는 가운데서 잘 해결하지 못해놓고 버르장머리만 운운하며 날 혼내는건지.

할머니는 외할머니나 다른 할머니들 같지 않게 이기적이고 심술 맞은건지.

저마다의 잘못이 있는데 혼나는 건 늘 나 혼자였다.

버르장머리라는 말은 카드게임 조커처럼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을 다 혼낼 빌미를 만드는 단어였다.

할머니와 달리, 푸근하고 따뜻했던 외할머니가 그리웠다.

맛있는 과자가 선물로 들어오면 옷장에 넣어두고 잠궈버리는 할머니 말고,

쓸 돈도 없으면서 기어이 치맛폭을 주섬주섬 뒤져 쌈지돈을 내 손에 쥐어주던 외할머니가 그리웠다.

안 그래도 혼날 일 투성이인데, 거기에 더 크게 혼날 꺼리를 더하는 할머니 말고,

엄마가 잔소리라도 하면 얼른 나를 뒤에 숨겨 내 편을 들어주던 외할머니가 내 곁에 있었으면 했다.


외할머니가 그리워서 숨죽여 훌쩍대며 "할머니, 할머니." 하다가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외할머니를 불러서는 안되었다. 오늘의 일을 알려서는 안되었다.

혹여, 정말 지켜보고 계신다면 집사님 말대로 마음 아파 하실게 분명했다.

외할머니에게는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었다.

외할머니가 없었으니 다행이다. 외할머니가 다른 사촌들 보러 가느라

오늘의 나는 보지 못했기를.

아, 그렇다면

나도 과히 잘한 건 없는거구나.

억울하고 분하기는 해도, 외할머니 앞에 떳떳하지 못한 걸 보니

내 행동이 분명 잘못된 것이었구나.


나는 사춘기를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예고없이 치받는 성질을 잘 다스리지는 못했지만,

집사님은 때마다 외할머니의 마음을 내게 전해 주었다.

그러면 나는, 엄마탓 아빠탓을 멈추고 잠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외할머니에게 자랑스러운 행동이 아니었다면 그건 일정부분 내가 잘못한 것이 맞았다.

유독 거친 사춘기를 지났던 내게

외할머니가 날 지켜보고 있다고 믿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러한 외할머니의 존재를 끊임없이 깨우쳐주는 집사님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나도 내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던 시기,

집사님은 존재만으로

나를 붙들어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집사님이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에

나는 온통 두려워졌다.

나의 치기를 잠재워 줄 누군가가 나에게는 필요했다.

나뿐만 아니라, 안그래도 자주 우는 엄마를 위로해줄 사람이

우리 가족에게는 꼭 필요했다.

심지어, 데면데면 했던 할머니까지도 집사님의 부재를 마땅찮아할 판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간곡한 만류에도 집사님은

면목 없어 못 오겠다며 기어이 나타나질 않았다.

keyword
이전 23화양 집사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