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큰 탓이로소이다.

by 친절한 손원장

천주교의 미사 전례는 크게 복음 말씀을 듣는 ‘말씀의 전례’와 예수님의 성체를 모시는 ‘성찬의 전례’로 나뉜다. 그런데 좋은 말씀을 듣고 성체를 통해 구원을 받기 전에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해” 그 전에 가장 먼저 반드시 하는 예식이 있다. 바로 “참회 예식”이다. 참회 예식에서 모든 신자들은 자신의 가슴을 세 번 내리치며 “내 탓이오”를 외친다. ‘생각과 말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으므로 나를 둘러싼 모든 나쁜 일들은 나의 잘못’이라는 고백을 하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좋은 말씀을 듣고 성체를 통해 구원을 받을 준비가 된다.


2년 전 일이다. 학부모의 과도한 갑질로 이제 갓 20살을 넘어선 교사가 학교에서 목을 매 숨졌다. 그 과정에서 그 누구도 ‘내 탓이오’, ‘내 자식 탓이오’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아닌 누군가를 비난할 대상을 찾는다. 감정적인 한국 사람들의 특징과 공명하여 비난의 수위는 점점 증폭하게 되고, 그 시스템에서 가장 힘이 없는 약자가 모든 것을 감내하게 된다. 학부모, 동료, 윗 사람 누구에게도 보호를 받지 못했던 그 선생님은 삶을 등짐으로써 그 모든 일이 자기 탓이 아님을 밝혔다.


수 많은 환자를 상대하는 병원을 운영하다 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생긴다. 수술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고, 처방전이 잘 못 나갈 수도 있고, 이상한 환자를 만나 응대가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고, 대기 순서가 바뀔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꼭 일부 사람들이 스스로는 완전 무결한 사람인 양 타인의 잘못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사람들의 심리는 내가 받은 불편을 감정적으로 보상 받고자 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스스로 참회하는 말을 듣고 정신적으로 이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그런 식의 탓이 시스템의 정반합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Human error를 가지고 혹독하게 지적하는 진상 보호자를 만나게 되면 시스템에 발생하는 구멍을 메꾸기 위한 노력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스템도 결국 사람이 구성하는 것이라,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그걸 감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스템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시스템에서 사라져서 시스템이 망가지게 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선량한 다수이다. 또한, 별 것 아닌 문제들을 메꾸기 위한 불필요한 비용들이 수반되는 것은 덤이다.


아무리 큰 문제라도 대부분의 문제들은 대화와 양보로 해결할 수 있다. 아무리 작은 문제도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한 쪽이 죽을 때까지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아무리 힘이 있는 사람도 그 보다 더 힘이 있는 사람을 만나서 죽어야 문제가 끝난다. 그런 일이 몇 번만 반복되면 이 사회는 순식간에 ‘모두가 모두의 적인’ 곳으로 바뀌게 된다. 물론 개인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남을 비난하는 태도로 과연 해결이 될까? 나는 우리 사회에 ‘나는 전혀 잘못이 없고 다 너의 잘못이다’라는 생각이 팽배해지면서 시스템이 점점 병들어가는 듯 한 느낌이 들어 정말 걱정이다.


개인의 삶을 생각했을 때도, 남을 탓하는 방식의 문제 해결은 스스로의 삶에 구원과 발전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모든 문제에 내 잘못이 전혀 없는 경우는 없다. 나를 둘러싼 모든 문제는 내가 잘못한 부분이 반드시 있다. 약자를 찍어 눌러야 마음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수 밖에 없다. 온 세상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행복했을까?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만나도 비슷한 문제는 반복된다.


오늘도 진료가 시작하기 전에 내 가슴을 3번 내리친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큰 탓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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