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집에 있는 칠판에 함께 그림을 그려보자고 했다. 주제는 일본 가족 여행.
큰 맘 먹고 일정을 비우고 돈도 많이 써서 다녀온 여행이었다. 아내도 고생해서 많은 준비를 하였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기를 기대했던 만큼 어떤 그림이 나올 지 궁금했었다. 나는 아이가 동물원 그림, 수족관 그림, 멋진 바다 등을 그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 걸? 아이는 대뜸 우리 네 가족의 웃고 있는 얼굴을 커다랗게 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물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주변에 작게 그리는 둥 마는 둥 하고 말았다. 나는 ‘일본’ 가족 여행 그림을 기대했는데, 아이는 일본 ‘가족’ 여행을 그렸던 것.
아내와 아이들이 방에 들어가 자고 조용해진 거실에 나와 아이가 그린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부모가 생각하는 아이들에 좋은 것과, 정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달랐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본 것 보다 엄마 아빠와 하루 종일 있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웃는 얼굴을 하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이지 다채로운 경험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부터 하게 된다. 뭘 해줘야 훌륭하게 클까? 혹시 남들은 해주는데 나는 못 해주는게 있나?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런 고민들은 다 아이들의 관점이 아닌 어른들의 관점이며, 지금을 위한 것이 아닌 언젠가 나중을 위한 것들이다. 아이들은 원하지도 않는 배려를, 그것도 지금 당장이 아니라 먼 미래를 위해 배려 당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애들을 풀어놓는게 과연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나도 부모님 손에 이끌려 참 많은 문제집을 풀었고 많은 학원들을 다녔는데, 누군가가 “니가 그 덕에 지금 좋은 학교 나와서 밥 먹고 살고 있는거야” 라고 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내 기억에 남는 건 분필 가루 날리던 시커먼 칠판이 아니라 아버지와 놀았던 강원도의 하얀 눈 밭이다. 그리고 우리 세대의 성공 공식이 다음 세대에도 통할거라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부모의 감상에 아이들이 뒤쳐진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은 뭘 해주려 하기보다, 아이들 눈을 한 번 더 보고, 아이들 말을 한 번 더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