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까운 지인들이 크고 작은 금융 사기를 당했다. 한 친구는 질이 나쁜 사람에게 속아 수 년 동안 일한 것을 모두 날리고 괴로워했다. 가족 같이 가까웠던 어떤 이는 하루만 돈을 빌려주면 몇 배로 불려준다는 말에 속아 본인이 아는 모든 사람에게 빌린 돈을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나는 이 모든 일들이 결국, “중요한 판단을 남에게 맡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중요한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틈을 보이면, 누군가는 그 틈을 반드시 비집고 들어온다. 그 누군가는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화목한 가정을 위협하는 불륜 상대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끝도 없이 오르며 우리를 유혹하는 주식이 될 수도, 너에게만 알려준다고 속삭이는 부동산 투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갈팡질팡하지 않으면, 즉 틈을 보이지 않으면 우리 삶에 비집고 들어올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주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내가 투자한 시간 뿐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갖는 자원은 시간이다. 시간을 통해 우리는 경험을 쌓고 지식을 얻는다. 지식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기억은 판단의 근거가 된다. 우리가 누군가의 판단을 믿고 때로 비용을 지불하며 그의 견해를 얻는 것은, 그 사람이 투자한 시간이 만들어 낸 결과를 믿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판단을 믿지 못해 남의 말을 믿는 것은, 스스로 보낸 시간들을 믿지 못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사기를 당하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픈 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손해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의 시간이 아프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내 삶과 상관도 없던 나쁜 사람에게, 혹은 오르고 내리는 주식에 내 삶을 의탁했다는 창피한 사실이 따갑게 나를 찌르기 때문이다.
10년 전 결혼 초기에 아내는 “내 육아의 목표는, ‘아이의 정신적 독립’이야” 라고 말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훌륭한 직업을 가져서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랬던 나는 이제 그 말의 무게를 알 것 같다. 스스로 아름다울 수 있는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 이 길고 힘든 육아의 종착역일게다. 그리고 그건 육아의 종착역이기 전에 나의 종착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