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습을 닮은 우리 정치

by 친절한 손원장

우리나라 정치를 표현하는 기막힌 구절이 하나 있다.


“최악과 차악 중 하나를 선택.”


국민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데, ‘덜 나쁜’ 걸 고르도록 강요되는 이유가 뭘까? 정답은 정당 중심의 정치 체제에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이다. 당의 방침인 당론을 거스를 수 없고, 당내 권한인 당권에서 밀려나면 정치 인생은 끝난다. 그러니, 당의 눈치를 살살 살펴 공천을 받는 것이 정치인 개개인의 가장 큰 목표이지, 국민의 눈치를 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최근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들을 무리하게 감옥에서 빼 내주고, 코스피의 PBR이 10 (현재 1.0) 이라고 하는 사람을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경제부 총리에 앉혔다. 국민보다는 당의 눈치를 더 본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자신을 보위해 준 당의 인사들을 내치면, 당 내 정치와 당권 장악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게 된다. 결국, 어떤 정치인이든 국민은 안중에 없다. 자기가 속한 당만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정치의 시스템이 그렇다.


지난 7월 (2025년 7월) 미국에서 소위 스테이블 코인 법안 (Genius act) 가 통과될 때, 국민들의 금융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니 CBDC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의 금지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해 법안 자체를 좌초시킬 뻔했던 의원들은,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 소속의 소위 “프리덤 코커스” 의원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일을, 몇몇 의원들, 그것도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 마지막까지 반대를 한 것이다. 결국, 법안 자체가 좌초되기 직전,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으로 CBDC의 금지 조항은 다른 법안에 붙여 처리하기로 타협하게 된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대통령과 당이 당론으로 정한 내용에 반기를 들고 개인의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전국적인 무게감이 있는 몇몇 인물 빼고는, 정치 생명을 거는 일이다. 그런데 미국은 왜 그게 가능할까? 그건, 유권자가 선거에 나설 후보자를 경선으로 직접 뽑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치인이 눈치를 봐야 할 것은 당의 입장이 아닌, 자신을 후보자로 뽑아준 유권자이다. 당의 유력 인사 때문에 본인들을 뽑아준 유권자의 기대와 다른 행보를 보인다면, 그 정치인은 다음에 그 자리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중시하는, 미국 다운 정치 체제이다.


우리가 그렇게 욕하는 우리나라의 정치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성과 깊이 맞닿아 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능력 없는 자보다 배신자를 더 경멸한다. 능력이 없어도 당에 충성하면 결국 한 자리하게 되고, 능력이 있어도 당론과 다른 ‘잡음’을 내면 다음 선거에 안 보이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욕해야 하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일 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의 체제에도 장점은 있다. 바로,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효율적이고 신속한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선진국의 문턱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역할로 넘어가야 하는 우리나라에게, 남들을 빨리 따라잡을 때나 쓰던 효율 중심의 정치 체계는 그 수명을 다했다. 국민들의 교육 수준 및 정치 참여 수준도 많이 올라간 만큼, 충분한 숙의를 통해 개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방식으로의 정치 체계 개편이 필요해 보인다.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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