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나는 프랑스에서 5년간 건축공부를 하고 4년간 공동주택 설계를 경험한 뒤, 귀국 후 경력을 살려 역시 공동주택 설계에 특화된 설계사무소에 취직했다. 한국의 공동주택시장에서는 아파트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몸담은 사무소 역시 아파트를 주로 설계하기에, 실무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답사, 스케치 등을 통해 개인적인 스터디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반포 아크로리버파크가 그 첫 번째 답사 대상이었다. 에이엔유디자인그룹에서 설계했고 대통령상을 수상하여 여러 책자에 소개된 프로젝트이기에 전부터 답사하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아파트에 비해 좀 특별하다. 한강변에 위치하여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보통 아파트보다 더 자유로운 디자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정북방향의 거실배치는 무조건 피해야 하지만 한강뷰덕에 가능해졌다. 그런 이유로 기존 단지계획과는 다른 유연한 동배치가 가능해진 것이다. 입면 디자인은 사진상에서 볼 때 아파트건축의 틀 안에 머물면서도 과도한 재료와 색의 사용 없이도 활기를 띄는 모습이었다.
사실 한국의 아파트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특징을 가진 건축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층수이다. 프랑스의 공동주택 건물은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10층을 넘지 않는다. 일드프랑스의 경우, 파리 17구의 바티뇰 같은 신지구를 제외하면 대개 4층에서 7층에 머문다. 나 역시도 실무동안 다뤘던 건물은 7층이 최대였다. 그러나 한국아파트는 최소 12층, 최대 40층 이상 올라간다. 건물은 층수가 다르면 법규가 다르게 적용되고 입면디자인의 결이 달라지므로 완전 다른 건축이라 해도 무방하다. 두 번째로는 평면의 자유다. 프랑스 공동주택은 크게 1층, 기준층, 옥탑층으로 나뉘는데 이 세 부분의 평면이 각각 다르고 가끔은 기준층끼리도 평면이 다른 경우가 있다. 디자인보다 시공성과 사업성을 더 중요시하기에 같은 평면이 쭉 올라가는 한국 아파트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는 가능한 다양한 주거유닛을 확보함과 동시에, 입면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평면의 변경을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입면의 자유다. 프랑스의 공동주택건물은 층 혹은 베이마다 창의 모양과 크기가 유연하게 바뀌고, 보우윈도우, 돌출발코니, 로지아 등 다양한 건축적 요소가 사용된다. 이에 반해 한국아파트는 성냥갑이랑 말이 나올 정도로 매스의 돌출이나 후퇴 없이 아래부터 위까지 일직선으로 쭉 올라간다. 거기에 층간 창모양의 변화가 없기에 입면이 무표정하게 된다. 이를 가리기 위해 과도한 색과 재료를 사용하여 가끔은 눈이 찌푸려질정도의 디자인도 보게 된다(가끔은 트랜스포머가 연상된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공동주택은 마치 퍼즐 맞추기를 하듯이 도시구조를 비틀지 않는 선에서 조화롭게 배치된다. 이와 달리 한국아파트는 도시구조보다는 각 동의 향과 조망을 최대한 살리는 배치를 갖는다. 이 다른 점은 법규 탓도 있지만 거주자의 기호를 반영한 사업성 증대도 한몫한다. 향과 조망이 좋지 않으면 상품성이 떨어지기에 주변환경과 어우러지는 배치보다는 이 두 가지를 더 우선시하여 건축계획을 한다. 또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유럽의 도시구조에 비하면 한국의 도시구조는 신생아 수준이고 그마저도 정비가 필요한 실정이기에 주변의 콘텍스트를 고려하기보다는 새롭게 판을 짜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이는 어쨌든 내가 프랑스를 떠나기 전 봐왔던 아파트를 기준으로 한 생각들이고 요즘 아파트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다른 점을 느끼기 위해 답사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남동쪽 앵글의 작은 광장에서 단지로 진입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건물 1층바닥이 도로보다 낮았다. 그래서 건물 앞의 초록이 무성한 오솔길을 걸어 다닐 땐 비밀정원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단차이와 식재를 통해 도로-보도-식재-오솔길-식재-아파트로 이어지는 외부공간구성이 흥미로웠다. 예전 아파트는 담을 쌓아 단지를 성지화시키거나, 낮은 돌 쌓기를 통해 소극적인 공간구성에 그치고 말았었다. 이에 반해 아크로리버파크는 공간을 여러 겹으로 나누어 단지와 공공장소를 나눔과 동시에 시각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이어지도록한것이다.
오솔길을 따라 걷다 중앙정원으로 들어가는 계단으로 진입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와 했다. 가까이에 숲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정은 지금까지 봐왔던 아파트고층에서 내다뵈지는 서있기 뻘쭘한 허허벌판이 아닌, 포근한 작은 숲이었다. 크기도 아담하게 적당했다. 여기서 사색을 하거나 이웃과 담소를 나누는 게 자연스럽게 상상됐다.
중정을 빠져나오자 테니스장이 펼쳐졌다. 그러고 나서는 가장 큰 단지공원인 서리광장으로 이어졌다. 단지 내 공간들이 스무스하게 이어졌다. 서리광장은 도로 위에 언덕처럼 만들어진 페스티벌광장과 이어진다. 페스티벌광장 아래엔 한강으로 통하는 기존도로가 있다.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올림픽대로의 자동차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 점이 꽤 놀라웠다. 하지만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단지 내 식재가 이를 완화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단지 내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가족들이 나와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놀이터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아이들은 계속 단지전체를 통과하는 동서축을 타고 자전거를 타거나 뛰어다녔다. 사람들도 이 축을 통해 단지를 이동하고 있었다. 이처럼 아무리 큰 단지라도 이를 관통하는 축이 있다면 이 축을 통해 공간적으로 단일성을 갖게 된다.
입면도 꽤 흥미로웠다. 확실히 내가 알고 있던 아파트의 무뚝뚝한 얼굴이 아니었다. 예전 우리나라 아파트는 창을 통해서 평면구성이 너무 솔직히 드러나서 건축물로서의 특징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를테면 가장 큰 창은 거실이고 중간 큰 창은 방이고 제일 작은 창은 주방이다. 얼굴만 봐도 속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이랄까. 이런 사람은 흥미가 떨어지듯이 입면의 긴장이 없는 건축은 도시경관을 지루하게 만든다.
아크로리버파크의 입면을 보면 작은 창에 어두운 색의 보싱을 추가되어 큰 창과 시각적으로 정렬되어 있다. 이는 입면에 규칙적이고 정제된 특징을 부여한다.
그다음 내 시선을 끈 건 코어였다. 나는 우리나라 아파트를 볼 때마다, 왜 코어를 입면에서 노골적으로 부각하지 늘 생각하고 했다. 여기서 코어는 나머지 부분처럼 기단을 갖음으로써 건물전체에서 따로 놀지 않게 되었고 이로 인해 기단이 쭉 이어지면서 건물의 무게중심이 잡힌 느낌이 든다. 솔직히 이거 보면서 속이 후련했다.
기단 얘기를 더하면, 예전아파트는 건물의 타입과 층수에 상관없이 모든 동에 같은 높이의 기단을 부여해서 마치 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같은 사이즈의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이곳에서는 각 건물은 타입과 층수에 따라 각자 다른 높이의 기단을 갖고 있다. 판상형은 2-3개 층, 탑상형은 5-6개 층으로 각기 다른 높이의 기단이 존재한다. 마침내 아파트건축이 무표정한 단지건축에서 벗어나 각 건물에 그만의 특징을 갖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강화유리와 경량철골을 사용한 2차 외피디자인도 인상적이었고, 매스의 요철을 이용하여 각 면마다 다른 입면을 적용시킨 것도 소란스럽지 않게 정제되게 잘 표현된 것 같다. 특히 탑상형의 파인 틈도 재밌었다. 틈이 틈처럼 느껴지지 않고 높은 빌딩 두 개가 나란히 서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지그재그 돌출발코니가 유일하게 나의 눈에 거슬린 요소였다. 전체적으로 규칙적이고 정제된 입면에 변칙적인 요소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엔 이보다 좀 더 과감한 요소를 사용하거나 혹은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극적인 요소는 그저 눈에 살짝 거슬리고 끝나는 느낌이다. 뭐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도 기존의 아파트들이 가졌던 무뚝뚝하거나 과도했던 입면과 확실히 차별화된 정제되고 세련된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확실히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공간적으로나 입면적으로나 내가 알전 예전 아파트건축과는 많이 달랐다. 비록 표면적인 분석에 그쳤지만 실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